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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란

수필가

인생은 멀리서 보면 아름답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란 말이 있다. 그림도 멀리서 봐야 더 아름답게 느껴질 때가 있다. 과천미술관 밖은 눈이 내리는데 그림 속 지베르니 연못은 여전히 여름이다. 클로드 모네의 수련 연작 중 2022 한국에는 처음 공개되는 명작 '수련이 있는 연못' 앞이다. 연못에는 움직이는 것들로 가득하다. 정지한 듯 보이나 순간이요, 다시 변화의 과정으로 움직인다. 그래서일까 한 곳으로 흐르는 물에도 똑같은 일렁임, 똑같은 색채가 없다.

인상파 회화는 지금도 전 세계 대중으로부터 가장 신뢰받는 장르다. 빛의 사냥꾼, 인상주의 창시자 중 한 명인 클로드 모네는 '빛은 곧 색채'라는 인상주의 원칙을 그야말로 죽을 때까지 고수했다. 그에게 그림이란 어느 순간이 주는 인상의 기록과 다름없다. 더 나아가 인상이라는 말 자체를 좋아했다. 당시 화가들은 대상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색채 그대로 그리되 인간의 눈에 감지될 때 일으키는 빛의 효과는 무시하는 풍조였다. 모네는 이런 관습에서 벗어나 시시각각 보이는 그대로를 정확하게 그리고 싶어 했다. 그러나 처음으로 '인상 해돋이'를 발표했을 때 화단과 대중으로부터 돌아온 것은 조롱과 혹독한 비판 일색이었다.

그의 젊은 날 삶도 중후한 외모와는 상반된 여러 부침이 있었다. 캐리커처를 잘 그렸던 유년을 시작으로 스승 외젠 부뎅을 만나 화가로서의 길을 안내받아 내공을 쌓으며 걸었던 길. 빛으로부터의 인상을 연구하며 끊임없이 노력했건만 30여 년 대중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해 좌절과 가난에 시달려야 했다. 설상가상 빚의 스트레스로 몇 곳을 전전하다가 건초더미 연작을 필두로 겨우 대중의 큰 호응을 받고서야 경제적인 기지개를 켤 수 있었다. 이어 포플러, 루앙성당 연작을 그렸다. 그런데 지베르니로 정착한 후 그에게 불행이 드리웠다. 아내와 큰아들의 죽음이다. 아내 까미유와 아들 장은 그의 그림에 여러 번 나온다. 얼마나 아내에 대한 사랑이 깊었으면 죽어가는 순간조차 지나치지 못했을까.

그러나 아무리 화가로서 남편으로 사랑과 열정에 의한 작업이었다 해도 아내의 죽어가는 모습을 그렸다는 건 여간한 사람으로서는 취하기 어려운 행동이다. 그는 절친 르노아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시시각각 변해가는 아내의 얼굴을 그렸다. 얼마나 그가 빛과 색에 몰두했으면그랬을까 일견 이해가 가는 단면이다. 이는 그만큼 클로드 모네가 지향하는 빛의 연구가 일관되게 이어졌다고 생각된다. 이후, 모네는 재혼녀 알리스와 6남매를 품고 새 출발을 한다. 명작 '양산을 쓴 여인'과 '지베르니의 나룻배'의 주인공은 의붓녀들로 그의 자애로움이 엿보이는 장면으로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보이듯, 고집스러웠지만 따뜻한 인성을 지녔음을 알 수 있다.

그러고 보면 그가 살았던 지베르니 정원에서의 40년은 모네의 삶에 특별한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수련이 있는 연못은 모네만의 작은 우주요 삶의 철학이 존재했던 장소다. 처음으로 평화로운 둥지를 틀었던 애정 어린 곳이었고 아내와 아들을 잃었으며 새로운 가정을 세웠다. 그렇게 죽을 때까지 한 인간으로, 화가로 열정을 불태웠던 한 영혼이 숨 쉬던 곳이다. 때문에 고집스러울 만큼 철저히 고수했던 빛과 색채의 아름다움에는 그가 삶에서 깨달은 인간과 자연의 철학이 흠뻑 채색되어 있다. 사랑과 미움 기쁨과 슬픔, 행과 불행 모두 현재이기는 하나 그것 역시 움직이고 변화한다는 의식 또는 과정이라는 것을 캔버스에 붓질한 것이리라. 아마도 이런 성찰이 있었기에 꺼져가는 눈으로 수련 연작 250여 편을 완성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자연과 인간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시시각각 변한다. 변한다는 건 영원한 게 없다는 것이며 그것이 자연의 순리요 진리다. 이 진리를 잊을 때가 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것들에서 이 잊음이 살아날 때가 있다. 누군가가 그린 한 장의 그림, 누군가의 몸짓,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들이 마음을 건드릴 때다. 그리고 그것은 시간이 갈수록 마음의 안식으로 이어진다. 클로드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 앞에서 그랬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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