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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란

우리 동네로 들어오는 길엔 여러 개의 길이 있다. 그 여러 길 중에서 내가 즐겨 다니는 골목, 작은 빌라 앞엔 한 그루의 은행나무가 있다. 여느 나무처럼 표 나지 않게 서 있는 이 나무는 그리 우람하지도, 수령이 아주 오래 되지도 않아 보인다. 9년 전 이곳으로 오고부터다. 언제부터였는지 나의 눈길이 이 나무에 가기 시작했다. 나무 옆을 지날 때면 잠시라도 멈춰 서서 바람에 찰랑이는 잎 새를 바라보거나 말을 건네듯 가만히 나뭇가지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바라보는 것으로 시작한 눈길이 이젠 나무에게 말을 건다. 아침이면 잘 잤냐고 바람 부는 날은 아픈데 없냐고 찰랑이는 네 모습이 아름답다고. 어찌 보면 그저 그런 말일지도 모를 말들을 건네지만 나무는 말이 없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나는 어렴풋이 나무의 침묵이 신성한 말이란 걸 느꼈다. 나무는 햇빛과 입 맞추며 그 힘을 바꾸고 비와 뺨을 비비며 그의 피를 꿈꾸고 바람의 푸른 힘으로 자기 생이 흔들리는 소리를 듣고 있는 듯 보였다. 햇빛과 비와 바람을 맞으며 삶의 에너지 자기생의 움직임을 확인하는 거라 말하는 것 같았다. 그것이 나무의 꿈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이 나무를 좋아하는 것은 나무의 기하학적 대칭성에 있다. 대개의 나무들은 엇나가며 올라간다. 물론 짝을 이루며 커가는 것도 있지만 대체로 그 성장 상태는 일정한 무질서 속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무질서도 가까이 혹은 멀리서 보면 일정한 질서 속에 있다. 그러니까 하나의 혼돈은 보다 큰 질서의 일부 일 수 도 있고 거꾸로 어떤 질서는 다가오는 혼돈의 잠정적인 형태일 수가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삶의 숨은 조화에 대한 암시성이라 할까· 뻗어나간 나뭇가지의 대칭성은 가을이면 그 노란 잎들로 하여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나무가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바라보는 나도 흔들리고 나무가 껍질에 쌓여 있듯 우리의 영육도 얇거나 각질을 갖고 있음을 헤아리게 된다. 하나의 생명이 싹으로 시작되고 햇살과 바람 속에서 무성해지다가 차가운 대기아래 마침내 앙상한 가지로 남게 되는 과정을 지켜보노라면 인간의 생로병사를 떠 올리게 된다. 가을나무 한 잎사귀처럼 우리는 삶에 매달려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를 바라보는 나는 이 나무와 무관할 수 없다. 나무와 나는 별개로 살아가면서 나와 서로 닿아있다. 이렇게 이어지면서 별개의 존재로 살아간다. 마치 내 이웃이나 타인들과 이어지며 또 따로 살아가듯이 아마도 세상은 이렇게 알게 모르게 이어져 있는 것들의 작은 망울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

망울들은 한 그루의 나무가 그렇듯 그 누구도 배제하거나 제외하지 않고 이어져 있다. 한 예로 숲의 흙 한 숟가락 분량에는 수 천 킬로미터에 이를 정도로 긴 얇은 실선이 있어서 그늘진 어린 묘목에까지 빛을 받는다 한다. 뿌리는 나무로 자라고 그것은 나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도 이어진다. 그러고 보면 넓고 깊게 사랑하는 것, 그것이 나무 꿈인 동시에 사람의 꿈일 것이다. 중요한 건 이 신비에 마음을 닫지 않는 일이다. 그래서 꿈은 질서 속에 사랑 속에 기하학적 질서 속에서 이미 암시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나무를 바라보는 것은 그 말없는 존속 때문이며, 말을 거는 것은 그 침묵을 듣고 싶어서다.

지금은 12월 중순 겨울의 문턱이다. 그토록 풍성하던 여름날의 잎들도 거의 져버리고 남아있는 것은 모두 누렇게 메말라 있다. 나의 은행나무도 모두 잎을 떨군 채 서 있다. 나무는 오늘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서있다. 나무는 내가 작별을 하든 안하든 내 생애가 다 해도 무심히 서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 생애의 마지막 모습은 어떨까. 아마도 언젠가 온 것처럼 그렇게 떠날 것이다. 그러나 나무와 달리 마음의 잎들을 모두는 떨구지 못하고 떠날 것 같다. 떠나는 것은 인간이지 자연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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