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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란

수필가

아무리 낡거나 명이 다한 살림이라도 휴지 버리듯 '휙' 내던질 수 없는 게 사물에 대한 사람의 정리다. 더구나 그것이 아끼는 경우 더 그렇다. 이번에 새 둥지로 옮기면서도 그랬다. 오래 망설였던 사물이 낡고 늙은 책장이었다. 왜냐면 책은 내놓거나 쌓을 수도 있지만 책장은 놓일 공간이 있어야 하는데 문제는 그들이 놓일 자리가 마땅치 않은 데 있다. 장난감블록처럼 쌓거나 덜어 낼 수 없는 굳어진 공간이니 어떻든 거기에 맞춰야 하는 한계가 있다.

아이들은 언제 적 책장이냐며 이참에 헌 책장도 버리고 책도 확 줄이자 한다. 책과 책장이 빠지면 그만큼 공간이 생기지 않느냐는 거다. 그 말도 틀린 건 아니다. 그렇지만 아직은 쓸 만한데 낡았다고, 좁다고 내놓는다는 건 아니지 싶었다. 게다가 고교 때부터 지금까지 만만치 않은 세월을 내 곁에 있었던 애틋한 사물이 아닌가. 아니 사물이라기보다 오랜 친구 같은 존재이다. 또한 내 놓을 책들도 책 자체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나빠진 시력으로 인한 불편함 때문이니 사실 꼭 버려야 할 이유에는 닿지 닿는다는 생각이 컸다.

아무튼 결정을 내렸고 실행되었다. 먼저 적지 않은 책들을 떠나보냈다. 반면 책장은 새 둥지의 작은 방과 거실로 나누어 모두 옮겨졌다. 6칸짜리 헌 책장은 작은방에 들여 놓았다. 간신히 한 사람 누울 자리만큼의 빠듯한 공간이다. 그런데 왠지 답답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책을 다 꽂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늘 꽉 차 있던 때와 달리 책들이 빠진 자리에 빈 공간이 생긴 것이다. 십 년 만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시간이 갈수록 개운하고 홀가분한 느낌마저 든다. 왜 여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을까. 채워야만 되는 줄, 그게 보이는 책장의 정석 인줄 아예 정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나 싶다.

아주 어쩌다 빈틈없이 채워진 그 모습이 답답하다는 생각도 살짝 들기는 했다. 하지만 이내 그게 책에 대한 사랑이라 치부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무작정 베스트 책이나 명작전집을 사서 꽂아두기도 하고 다 읽기도 전에 다시 새로운 책을 구입했다. 점점 늘어나는 책들에서 뿌듯함도 차올랐다. 그저 그가 내 곁에 있다는 것에만 의미를 두었던 것 같다. 사랑한다 생각했지만 어찌 보면 책에 내가 소유당한 시간이 많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소유했다고 착각했고 그 착각은 빡빡하게 채워진 책장에서 뿌듯함으로 이어져 내심 '척' 했을 것이고 '척'에 갇혀 있던 시간이 아니었을까 돌아본다.

책은 각자의 이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괴테는 파우스트에서 메피스토펠레스의 입을 빌어 '모든 이론은 회색이다 그러나 살아있는 생명의 나무는 푸르다'고 했다. 그는 이론 즉 지식만을 최고의 가치라고 하는 데 대해 경계했다. 그러나 이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생명이 푸르도록 받쳐 주는 뿌리 역할을 하는 게 책의 힘이라는 걸 부정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불확실성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행동과 이론의 조화가 꼭 필수요인이란 걸 포함한다는 걸 강조하고 싶은 것이란 생각이다. 왜냐면 책은 이론은 산자에게 무한으로 열린 불확실성 지평 속에서 이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한 안간힘이다. 따라서 이론은 이 안간힘을 의미화 하려는 개념적 반성의 시도일 게다. 그러니까 감각과 이성, 경험주의와 지성주의를 대립적으로 간주 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이 둘 사이를 왕래해야 할 것이다. 어느 것도 절대시는 없다. 그만큼 세상은 불확실성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책장에 빈 공간이 생기니 책과 책 사이가 헐렁해졌다. 팽팽한 고무줄을 느슨하게 내린 그런 마음이랄까. 꼿꼿하게 서 있기만 했던 책들이 이제서 자유롭게 몸을 구부린다. 그렇다 그들에게도 '꼭'이라 거나 절대시라는 건 없는 것. 세상은 얼마나 많은 것들이 의문투성이고 얼마나 많은 것들이 여전히 어렵고 모호하며 불확실하던가. 빈 공간에서 퍼뜩 드는 생각이 있다. 사고(思考)의 운동은 중요하지만 사고가 유효하려면 움직이는 만큼 멈출 수 있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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