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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란

수필가

'작품은 이해하는 게 아니라 느끼는 거'라는 말이 있다. 그림 보는 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공감이 가는 얘기다. 이중섭의 작품은 그런 의미에서 미술의 '미'자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다. 적어도 그의 그림에는 한국인의 정서를 건드리는 스토리가 있다. 그를 국민화가라 하는 것도 그냥 붙여진 게 아니라 그런 연유에서 일 것이다. 2022년 12월 서울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이건희 컬렉션 '이중섭전'을 찾았다.

2016년 덕수궁 현대미술관에서 열렸던 '탄생 100주년 이중섭전'과 비교하면 규모는 좀 작지만 그때와 비슷하게 연대별 재질 형식별로 방이 구분되어 있었다. 그가 40세의 나이에 요절했기 때문에 생의 연대가 단촐하다. 그러나 작품에 나타난 젊은 화가의 영혼과 삶은 단순하고 열정적이며 순결해서 감히 그의 생이 짧았다고만 생각하면 오산이리라. 누구든 어떻게 살았는가에 따라 생의 가치가 달라지지 않던가. 부유한 집 막내아들이었지만 시대적으로는 큰 혼란과 격동의 시기였다. 그가 동경에서 만난 일본 여인과 가정을 이루고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살았던 1년여의 짧은 시간들을 생각하면 가정적으로는 안쓰러웠으나 가난과 병마속에서도 자신만의 창의적 세계를 구축한 작가였음은 명확한 사실이다. 덧붙여 그가 국민화가로 기억될 수 있었던 데는 오산고보 시절 스승 임용련 선생의 영향이 매우 컸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그림은 우선 색보다 명확한 선이 인상적이다. 적어도 뭐를 그렸는지 금방 알 수 있다. 특히 우리의 삶과 친근한 주제가 많다. 평범하고 쉬운 것 같으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성이 있다는 건 오로지 이중섭만이 표현할 수 있는 창의성 때문일 것이다. 그의 트래이드마크처럼 생각되는 은지화 편지화 엽서화는 유일성을 중시하는 순수미술에서는 흔치 않은 시도이다. 이것들이 사적 기록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독자들에게 많은 호응을 받는 것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히 배어 있는 애절함과 사랑이 종이에 흥건히 적셔져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그리움이 보는 이의 마음을 촉촉이 적셨다는 데 그림이 주는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이번 전시에도 보였듯, 그의 그림에는 황소와 아이들과 바다. 물고기 게가 많다. 왜일까. 가장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절이기도 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였기 때문 아닐까. 2013년이다. 턱이 길어 아고리라 불리었던 중섭군과 발가락까지 사랑해서 아내를 발가락이라 부르던 그의 가족이 살았던 서귀포의 냉꼼만한 방을 찾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시대적으로도 6·25전쟁의 혼란 속이니 화가로서는 더 어려웠던 시기다. 1951년 제주로 거처를 옮긴 이중섭 가족이 너무 먹을 것이 없어 게를 잡아먹었다는 얘기가 전해져 있을 정도로 곤궁했던 것 같다.

시인 나희덕은 이때의 시절을 한 편의 시로 읊었다.

서귀포 섶섬이 보이는 언덕에 있는 초가 한 채/ 귀퉁이 고방을 얻어 살았던, 두 사람이 누우면 꽉 찰 방보다는 차라리 관에 가까운 그 방에서 게와 조개를 잡아 먹으며 살았다./해변에서 아이들이 묻혀온 모래알이 버석거려도 밤이면 식구들의 살을 부드럽게 끌어 안아 조개껍질처럼 입을 다물던 방./게를 삶아 먹은 게 미안해 게를 그리는 아고리와 소라껍질을 그릇삼아 상을 차리는 발가락군이 서로의 몸을 끌어안던 석회질의 방/ 게가 아이의 잠지를 물고 아이는 물고기의 꼬리를 잡고 물고기는 아고리의 손에서 파닥거리던 바닷가 그 행복조차 길지 못하리란 걸 그들은 알지 못한 채 살았다./ 그리고 1년 후, 아내와 아이들이 일본으로 떠나고 홀로 남은 이중섭은 그림에 그리움을 새겼다.

이중섭의 그림을 만날 때마다 나는 그에게서 화가이기전의 솔직하고 열정적인 한 인간을 만나는 느낌이다.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의 그리움과 절절함 그리고 죽을 때까지 놓치 않았던 예술가의 열정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무엇보다 그는 미술에 문외한인 내게 그림 감상에 가장 가까이 갈 수 있는 요인이 '느낌'임을 말하는 것 같다. 그의 그림에 한국인의 정서를 건드리고 발길을 멈추게 하는 독특하고 매력적인 무엇이 있어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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