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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란

수필가

휴일, 덕수궁 돌담길이 북적거린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길거리 가수의 노랫소리, 마술에 홀린 사람들의 탄성. 형형색색 액세서리를 만지작거리는 여인들, 젊은 연인들의 웃음소리, 가쁜 숨을 내쉬는 노인.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옷깃을 스칠 정도로 가깝거나 멀어봤자 몇 발자국. 하지만 말은 하고 있지만 그들의 시선은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다. 이 모두 하나의 풍경이요 풍경 속 일상이다. 일상은 가끔은 단순하고 지루하며 무심하다.

이런 일상 풍경을 복사한 듯 그려놓은 이국의 작가가 있다. 특히 현대 문명 속 미국인의 민낯을 표현했던 미국 출생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이다. 국내 처음으로 그의 전시가 서울 시립미술관과 뉴욕 휘트니 미술관의 공동 기획으로 서소문 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주제는 길 위에서이다. 그는 미국에서 가장 사랑 받고 있는 화가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그림이 건네는 의미일 테다. 그는 한국에도 꽤 알려져 있다. 그의 이름은 몰라도 한국 모그룹의 '쓱'이란 광고는 들었을 것이다. 이 광고도 그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호퍼의 그림을 주제로 소설과 시 그리고 영화 광고를 찍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그의 그림에 공감하고 감동하는가.

이번 호퍼(Edward Hopper)의 대부분 작품에는 사람보다는 사물이 더 많다. 딱딱하고 조금은 삭막한 느낌이다. 그래서일까 어쩌다 보이는 그림 속 사람들에게서 편안함이 잘 다가오지 않는다. 현대 문명 속, 홀로 생각에 잠겨 있는 사람들. 소외, 외로움, 상실이라는 단어가 떠 오른다. 고독의 냄새가 난다. 바로 그거다. 호퍼의 그림에서 현대인의 숙명적 외로움의 냄새가 난다. 남을 의식하지 않는 개인주의를 못마땅하게 보고 있는 게 아니다. 홀로이되 독립적 강한 주체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 어쩜 숙명적 현대인이 짊어지고 가야 할 과정일지 모르니 혼자라는 건 이제 낯설지 않다. 분명한 건 그 외로움과 상실감이 한국 사회에서도 흔하게 보는 모습이라는 점이다. 관객이 공감하게 되는 요인 일 게다.

특히 작품'푸른 저녁'과 '철길의 석양'에서 작가의 의도를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마도 호퍼만의 예술세계를 대표하는 두 작품이 아니었을까 싶다. 먼저 작품 '푸른 저녁'은 그의 그림에서는 드물게 7인이 등장한다. 미국에서만 볼 수 있는 게 아닌 요즘 우리 삶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흔한 풍경이다. 둘이 만나 커피를 마시면서도, 버스 속에서 차를 기다리면서도 까페인 듯한 공간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마주 앉아 있으나 시선은 각자 다른 곳을 보며 생각에 잠긴 모습이다. 심지어 주문을 받는 여인조차 다른 곳을 보며 말을 하고 있다. 왜일까.

이에 반해 '철길의 석양'에는 사람이 없다. 대신 사람이 자연을 향해 눈을 맞추고 있다. 자연 속의 인간이다. 굳이 여기 보라 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시선과 마음이 간다. 내가 먼저 자연에 눈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건 두 존재가 소통하고 있다는 얘기며 그림 속 자연을 하나의 존재로 일단 수용하고 보고 있기에 가능하다는 말이다. 내 경우 호퍼가 건네는 의미에 공감한다. 그러니까 작가는 그런 현대인의 쓸쓸한 영혼과 상실감을 그림을 통해 풀어 놓았고 나는 공감을 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림 일지라도 나를, 내 마음을 외로운 현대인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쓰다듬고 위로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호퍼의 예술이 관람자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일 것이다.

우린 서로에게 섬일지 모른다. 가까이 다가오면 다시 멀어지는 섬. 그러면서도 내가 먼저 다가가기 보다 다가와 주길 바라는 이기적인 영혼들. 어쩌면 우리는 인간을 대상화하고 있는 건 아닐까.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사는 현대인에게서 독립적, 독창적, 합리적 가치를 추구하는 영혼과 자신의 성에서 몸부림치는 고독한 영혼을 마주할 때가 있다. 가까이 있되 마주 보지 않는 영혼들. 외로울 수밖에 없다. 언제쯤 우리는 진심으로 서로를 마주하며 길 위를 걸어갈까. 호퍼의 그림에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길을 걷는 인간의 두 얼굴에서 나를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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