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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란

숲이 산을 이루어 짙푸른 구름처럼 부풀어 있다.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 온 6월의 남한산성(南漢山城) 길이다. 역사의 흔적들이 푸른 숲처럼 다가오고 돌 하나, 흙 한줌 예사로 느껴지지 않는다. 긴 성곽 길을 따라 북문과 서문을 지나 수어장대(守禦將臺) 무망루(無忘樓) 앞에 섰다. 그런데 왠지 무망(無忘)이란 소리가 밖으로 나오지 않고 마음속으로 내려간다.

1636년 겨울, 조선은 유난히도 춥고 고독했다. 삶과 죽음의 등치 앞에서 위정자들은 한없이 무력했고 말과 말이 갈라졌으며 고뇌했고 고통스러웠다. 고립무원의 산성(山城)에서 성(城)을 벗어나지 못한 왕은 차디찬 바닥에서 굴복했다. 그리고 뼈아픈 역사를 써야만 했다. 얼마나 통탄스러웠으면 무망(無忘)이란 글자를 편액으로 남겨 놓았겠는가. 어찌 보면 성(城)은 인간에게 생존이고 자존이며 미래를 뜻하기도 한다.

기원전 3세기 무렵 중국은 거대한 만리장성을 축조했다. 비슷한 시기 로마에서도 토목공사에 힘을 쏟았다. 둘 다 대규모 토목공사였고 안보용이었다. 눈에는 쉽게 보이지 않는 공통점도 있다. 모두 수직공사였고 수평을 지향했다. 외양이 판이하지만 위로 쌓으면 장성(長城)이고 아래로 쌓으면 도로다. 로마는 땅을 1.5m~2m 가량 파내 다진 뒤 모래와 자갈 바위 포석을 겹겹이 쌓는 도로 건설 방식을 엄격하게 지켰다 한다. 성을 쌓기 쉬웠기에 만리장성 길이의 20배에 이르는 도로를 깔았다. 그런데 똑같은 안보용 토목구조물이지만 닫힌 성(城)과 열린 도로의 결과는 달랐다. 만리장성을 쌓은 진나라는 3대를 못 갔지만 로마는 천년을 갔다. 그러나 끝 무렵의 로마 역시 성(城)을 축조하면서 서고트족의 침입과 멸망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실제로 열린 사고와 닫힌 사고의 차이는 동. 서양의 흐름도 갈랐다. 서구가 15세기 이후 대항해시대를 열며 세계사 흐름의 주도권을 잡았던 데에도 로마의 안보 목적 도로로 상징되는 열린 사고가 깔려 있다. 르네상스 이후 찾아온 유럽 내 교역 활성화도 중세 암흑기 내내 잊고 있던 로마 도로의 기능이 살아나면서 더욱 탄력을 받았다고 한다. 명나라의 환관 정화가 이끄는 대규모 함대가 콜럼버스 보다 90여년 앞서 대양을 항해하고도 명맥을 잇지 못한 이유 역시 도전과 개척을 가벼이 여긴 탓일 것이다.

여기서 나는 단지 건축구조물의 차이나 조선의 성(城)이 지녔던 안보전략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열린 사고와 닫힌 사고에 따라 달라지는 인간의 성(城)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저마다의 성(城)을 세운다.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 스스로에 의한 자신의 성이다. 어떻게 어떤 성을 쌓느냐도 역시 자신에 의한 열린 사고나 닫힌 사고에 의해 달라진다. 사실 열린 사고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가까이에 있다.

우선 내 주변을 둘러보라. 내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과의 인간적 신뢰를 쌓는 것으로 부터 열린 사고는 시작 된다고 생각한다. 즉 성을 쌓는 게 아니라 소통의 길을 닦는 노력 그것이 첫걸음이라 생각한다. '성을 쌓는 자 망하고 길을 내는 자 흥하리'란 말도 있지 않은가. 아무리 굳건한 성이라도 성에 틀어 박혀있다면 생각이 열리지 않는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다. 높고 견고한 성일지라도 성에만 의지해 산다면 성(城)이 인간을 가두고 종내는 스스로 무너질 것이다.

성벽 길은 구불구불 하다. 굽이굽이 돌아가기에 깊고 멀리 가는 역사의 강물도 구불거리며 흘러왔고, 흘러 갈 것이다. 구불거리는 길은 산을 품고 마을을 품고 구불구불 간다. 자세히 보고 오래 봐야 하는 구부러진 길엔 세상의 많은 것이 담겨 동행한다. 아름다운 길에 직선은 없지 않은가. 인생에서도 그렇다 직선길이든 굽은 길이든 그것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결국 자신일 것이다. 남한산성(南漢山城)은 말한다. 멀리 널리 보라고. 미래를 향하여 도전하고 개척하라고. 6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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