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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란

작가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꼭 들르는 전시장이 있다. 국보83호 반가사유상이 계신 곳이다. 단순하고 간결한 모습의 이 불상은 여럿이 함께 전시된 유물들과 달리 한 공간에 홀로 있다. 반가(半跏)한 자세로 왼쪽 다리 무릎위에 오른쪽 다리를 올리고 오른 뺨에 오른 손가락을 살짝 댄 모습은 생로병사를 고민하며 명상에 잠겼던 싯다르타를 연상케 한다. 그런데 다른 전시물 앞에서와 달리 이 불상 앞에서는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바라본다.

반가사유상에서는 두 가지의 느낌이 있다. 몸은 가냘프지만 욕망에 저항하는 것 같고 얼굴은 사유(思惟)에 침잠해 있다. 더구나 알 수 없는 저 미소를 통해 전해오는 이 신비감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앞에서 보면 깊은 무아에 빠져 있는 것 같고 옆에서 보면 무상한 인생의 슬픔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한 발 물러서 보면 깨달음의 기쁨이, 한없는 인내가 밀려오는 것 같다. 그런가 하면 모든 것을 받아들인 듯, 내려놓은 듯 한 여유가 강력한 대조를 이루는 이 아이러니. 지독한 금욕 속에 피어나는 탐닉, 무거운 고뇌 속에서 성취되는 충만, 끝없는 인내 속에 다가오는 희망의 예감. 이것이 진정 사유의 고유한 초월성인가.

얼굴은 사유(思惟)를 육화(肉化)한다. 신비한 미소는 하나의 사유 속에 다른 하나의 사유가 뻗어가는 초월적 운동을 상응케 하고 있다. 그것은 생각하고 있어도 생각하고 싶은 충동. 생각 속에 일어나는 생각의 충동이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다 저 미소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자꾸만 그에게 내 얘기를 하고 싶어진다. 왜 일까. 흔히 사람들은 '생각'하면 로댕(Rodin)의 조각 '생각하는 사람'을, '미소'하면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의 '모나리자의 미소'를 쉽게 떠 올린다. 그런데 두 작품에선 왠지 인위적인 무거움이 느껴진다. 로댕의 조각은 사유(思惟)를 남성 우월주의로 표현했다 하고, 모나리자의 미소는 불가사의한 매력은 있지만 남성우월주의에 대한 비판이 내재된 작품으로 구상·초상의 양가성은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에 반해 우리의 반가사유상은 모든 종류의 울퉁불퉁을 넘어 남성성과 여성성의 경계를 지워버린 무(無)의 충만을 보여주고 있다. 의미와 경계를 모두 다 내려놓은 순백의 세계이다. 순백의 세계는 누구든 들어갈 여백이, 받아들일 관용이 있다. 그곳은 아픔과 상처를, 고백을 들어주고 어루만져 줄 수 있는 무한의 여지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침묵 속에 전해져 오는 조용한 이 전율. 하나의 작품에서 위안을 받을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그런데 의문이 생긴다. 정확히 말하면 반가사유상은 무생물이며 하나의 불교작품인데도 그 앞에 서면 왜 이토록 그에게 빨려 들어가는가 하는 점이다. 대체 그에게 어떤 힘이 있는 걸까. 1천500년 전, 불상을 제작한 한 장인을 생각한다. 그는 어떤 마음으로 미륵불을 만들었을까. 뛰어난 작품임에도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세계인들이 입 모아 반가사유상을 최고의 작품으로 환호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뛰어난 예술성은 물론이요, 지극함을 향한 영혼의 손길을 느낄 수 있어서 아닐까. 즉 사유를 변화시키는 것은 마음인데 그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메신저가 반가유상이라는 말 아닐까. 반가사유상은 미소를 짓는 듯 마는 듯, 말하는 것 같다. 누구든 언제든 내게 다가오라고. 무슨 이야기든 실컷 해보라고 또 울고 싶으면 실컷 울어보라고. 언제나 너를 응원하며 희망을 품어주겠노라고 말하는 것 같다.

3월이 내일 모레다. 봄은 왔건만 요즘 한국사회는 정신적, 물질적으로 극심한 혼돈 속에서 방황하고 있다. 특히 젊은이들은 장기적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으로 희망을 잃어가는 형국이다. 그러나 종내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걸어갈 것이다. 우리 민족에겐 1천500년 전 부터 살아있는 반가사유상의 미소가 우리 마음속에 유전자처럼 살아 있지 않은가. 오늘도 반가사유상은 신비스런 미소를 건네며 때로는 보이지 않는 위안으로, 명령으로 다가오고 있다. 어떤 명령이냐·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말고 잠시라도 성찰과 사유의 시간 속에 침잠해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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