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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란

작가

가끔 어머니가 해 주신 손국수가 먹고 싶은 날이 있다. 비가 오거나 입맛이 달아날 때다. 오늘은 마음먹고 반죽을 준비했다. 냉장고에 넣었던 밀가루 반죽 한 덩이를 꺼낸다. 비닐봉지를 열어 보니 반죽이 한결 부드럽다. 손국수의 성패는 반죽에 달려 있어서 반죽을 할 때면 늘 넉넉하게 시간을 두고 주무른다. 그래도 마뜩치 않으면 잠시 냉장고에 넣어서 기다림의 시간을 둔다. 성미를 죽이기 위해서다. 다행이 꾹꾹 눌러봐도 딱딱하지 않고 말랑말랑하다.

지금 반죽은 물질로써 아직 의미를 부여 받지 못한 몸의 익명성으로 드러나 있다. 사실 이 녀석을 주무르는 동안 힘들었던 건 밀가루가 품은 원소적 성질인 밀가루 '생내'의 좀체 수그러들지 않는 빳빳한 오기였다. 물방울은 물방울대로 돌아다니고 밀가루는 밀가루끼리 손을 잡는다. 이리저리 주무르고 둥글리며 달래 붙잡아 치대보지만 왠지 손을 내젓는다. 급기야 수그러들지 않는 오기는 저를 둘러싼 것들과의 불화를 불러왔다. 한 그릇 속에 있건만 두 살(肉)은 서로 자신만을 내세우며 툴툴거리고 등을 돌려 찔끔거리며 변두리로 나돌았다.

그 모습을 보니 인간세상도 그러하지만 이들의 세계도 별다르겠나 싶다. 밀가루에게도 물에게도 우리가 알 수 없는 무엇이 있는 걸까. 서로 다른 둘이 온전한 하나로 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구든 가정이 있다면 알 것이다. 한 사람과의 만남으로 연애와 결혼이 왜 다른지 몸으로 깨닫게 되지 않았던가. 나만의 생각과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고받았는지. 알량한 자존심과 뺏센 오기는 오랫동안 서로를 딱딱하게 만들고. 일상은 헝클어지고 침묵 속에 찬바람만이 불어 소통의 부재는 담처럼 높았었다. 우린 사람이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걸까. 이 물음의 답을 희미하게나마 깨닫기 까지 참 많은 날들이 지나간 것 같다. 돌아보면 지나간 그 시간과 모습들이 내 스스로의 반죽으로 이루어졌음이 분명한데 말이다.

그럼에도 반죽이 거느린 시간은 분명 다른 시간일 게다. 조급증이 불러 온 패스트푸드의 시간과는 질적으로 다른 느림의 시간. 철저히 자신의 원소적 성질을 내려놓아야 하는 실존 전체의 연속성에서 빛나는 시간이다. 연속성이란 자신의 내부에서 끊임없이 쭈삣거리는 이기심을 내려놓는 훈련을 말할 테다. 이를 테면 가정은 이승 속의 피안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딱딱한 것들이 서로 부딪히고 깨져서 피 흘리는 생생한 지옥일지 모른다. 그 지옥을 거쳐야 하는 게 삶이라면 표현이 과할까. 우둘툴했던 두 사람간의 관계가 매일 부딪히는 반복을 통해 결국은 인정하고 끌어안아 원으로 변환하는 게 또한 인생반죽일지 몰라. 하나가 된다는 건, 서로 다른 것이 한 그릇 속에서 저처럼 몸 바꾸어 말랑말랑할 때 까지 반죽하는 것이 아닐까.

밀가루 반죽엔 추억이 있고 아픔이 있으며 정겨움이 있다. 국수 꽁뎅이를 불에 구워먹고 어머니가 만드신 꼬들꼬들한 국수가 혀를 감치며 홀홀 목구멍을 넘어갈 때 우린 얼마나 행복해했던가. 이젠 그 행복을 향해 스스로 인생의 반죽을 해야 한다. 비록 친정엄마의 손맛엔 미치지 못할지라도 가족의 웃음소리는 이 밀가루 반죽에 섞여 있다. 한쪽에선 호박을 썰고 한쪽에선 밀가루를 주무르듯 말랑말랑 해진 그 안엔 미소와 관대함과 순진무구함을 품고 있다. 판판하고 넓은 나무 도마에 반죽을 올리고 홍두깨로 얇게 밀어 나간다. 점점 둥근 달이 환한 얼굴로 바닥에 떠오른다. 밀가루반죽에게 주어질 새로운 의미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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