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3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홍성란 작가

집으로 들어오는 길가 공터엔 기와집이 한 채 있었다. 봄이면 흰 목련꽃이 골목을 밝히고 여름밤이면 달빛이 스며들어 밭가에 심겨진 콩 잎이나 옥수수 잎을 푸르게 물들였다. 그런데 무슨 연유인지 모두 사라지고 터만 덩그마니 남았다. 동네사람들은 가끔씩 지나간 추억을 이야기했지만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에서 차츰 멀어져갔다. 그렇게 이곳은 사람들에게서 서서히 잊혀져갔고 나 역시 별 관심 없이 지나쳤다.

그런데 언제 부터인지 내 발길이 이 공터 앞에서 멈춰 서게 되었다. 이상하게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습관처럼 공터를 들여다보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아무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데 왜 들여다보는 거지?"

그럼에도 발길은 멈춰지질 않았다. 그런 어느 날 이었다. 나는 한 목소리가 마당에서 달려오며 소리치는 소리를 들었다.

"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에요 보세요. 이곳엔 많은 것이 있어요."

정말 그곳엔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었다. 따스한 햇볕이 공터에 쏟아지고 있었고 아주 작은 풀꽃이 피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엔 이곳에 원래 있었을 다른 생명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마당 한편에는 활짝 핀 목련이 서 있고 작은 텃밭엔 시금치. 파, 상추가 한 줄씩 심겨져 있다. 밭고랑을 강아지 한 마리가 쫄랑거리며 주인 뒤를 따라다닌다. 그 위로 바람소리, 구름소리... 공터엔 모든 게 가득 들어찼다. 바람이 불 때마다 목련의 향기가 스며들고.

몇 달 후, 이사 간 친구 집을 찾아가다 언덕 아래 있는 한 공터를 만났다. 황량하고 쓸쓸함 위로 분주하게 먹이를 나르고 있는 벌레들을 만날 수 있었고 초록빛 새싹과 새들의 지저귐도 들을 수 있었다. 더 이상 그곳은 버려진 존재가 아니었다. 놀랍게도 그 안엔 우리가 잃어버렸던 고향이 자라고 있었다. 세상이 아무리 각박하다 해도 그 속엔 부정할 수 없는 다정함이 있었다. 더럽고 악취 나는 곳일지라도 옆에 풀이 자라고 갈대가 노래를 하고 이름 모를 꽃들도 피어나듯.

지금 공터는 겨울의 자궁처럼 햇빛 속에 정답다. 오늘도 나는 이곳을 지나다 한참을 서서 내 마음속에 넓게 자리한 초원을 바라본다. 비어있음에서 시작된 마음의 자리에 이렇게 예쁜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있다. 생각하면 인간의 희로애락 칠정오욕이 어디서 생기겠는가. 모두 이 내 마음자리에 따라 해석을 달리하고 행동이 달라질게다. 생명이 길어졌다고 하나 사람에 따라 의미가 다를 것이다. 마지막 이승의 강을 건널 때서야 후회의 눈물을 흘리는 이들을 종종 보게 된다. 살아있을 때 서로 정을 주자. 따듯한 말 한마디 부드러운 미소가 그립다. 누군가에게 또는 어느 것 하나에게라도 관심을 갖고 조금이라도 아껴주는 마음이 있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세상은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마음의 공터를 갖자. 보이는 것에만 갇혀 버리지 못한 마음의 쓰레기를 버리자. 그리하여 생명의 공터, 그 마음자리에 넘치는 따듯한 햇빛이며 초록의 빛과 꽃들이 피어나도록 하자. 서로를 다정하게 받아들이며 살아간다면 세상은 더 넓게 더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겠는가.

어쩌다 어깨만 스쳐도 "미안해요, 고마워요 말하며"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

[충북일보]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은 "충북체육회는 더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다음달 퇴임을 앞둔 정 사무처장은 26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방체육회의 현실을 직시해보면 자율성을 바탕으로 민선체제가 출범했지만 인적자원도 부족하고 재정·재산 등 물적자원은 더욱 빈약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완전한 체육자치 구현을 통해 재정자립기반을 확충하고 공공체육시설의 운영권을 확보하는 등의 노력이 수반되어야한다는 것이 정 사무처장의 복안이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학교운동부의 위기에 대한 대비도 강조했다. 정 사무처장은 "학교운동부의 감소는 선수양성의 문제만 아니라 은퇴선수의 취업문제와도 관련되어 스포츠 생태계가 흔들릴 수 있음으로 대학운동부, 일반 실업팀도 확대 방안을 찾아 스포츠생태계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행사성 등 현장업무는 회원종목단체에서 치르고 체육회는 도민들을 위해 필요한 시책이나 건강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의 정책 지향적인 조직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임기 동안의 성과로는 △조직정비 △재정자립 기반 마련 △전국체전 성적 향상 등을 꼽았다. 홍보팀을 새로 설치해 홍보부문을 강화했고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