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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란 작가

5월의 부석사 비탈길이 초록빛으로 물들어 있다. 길 양 옆엔 연초록 은행나무 가로수가, 가로수 건너편 과수원에 사과나무 잎사귀들이 푸르렀다. 부석사 입구에서 천왕문까지는 1킬로가 넘으니 짧은 거리가 아니지만 급한 경사가 아니라 힘겨울 바가 없다. 그러나 아무리 잰 걸음이라 해도 비탈길은 사람의 발길을 느긋하게 잡아놓는다. 한 걸음 한걸음 옮길 때마다 하체가 긴장하면서 꾹꾹 누르는 발걸음이 진중하다.

비탈길이 끝나고 천왕문에 이르면 여기부터 부석사 경내가 된다. 여기에서 요사채를 거쳐 범종루, 안양루를 지나 무량수전에 다다르기 까지 아홉 단의 돌계단을 넘어야 한다. 나는 올 때 마다 이 돌계단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지주도 없이 순전히 자연석으로 쌓은 돌들. 자세히 드려다 보면 모양도 크기도 모두 제 각각이다. 서로 다른 그들이 같은 공간을 창출하며 천년을 지나왔다. 내가 이곳을 지나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흔하고 하잘 것 없어 보이던 돌이 아닌가. 돌 하나로만 볼 때는 그냥 돌에 머문다. 그러나 함께 했을 때 돌은 의미를 지니게 된다. 하나이면서 모두인 돌들을 보면서 한 가지 떠오르는 풍경이 있다. 몇 년 전 여행 때 일이다. 'ㅅ'시내 한복판 유명 빵 집에 들른 적이 있다.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종업원은 외모에서도 장애인임을 알 수 있었다. 짐작대로 발음도 동작도 느리고 어눌하지만 손님을 대하는 태도는 매우 공손하고 정중하다. 계산하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 듯 했다. 기다림을 참지 못한 한 분이 항의를 했다. 그런데도 주인은 달려들어 도와주지를 않고 죄송하다며 좀 기다려 달라는 말만 한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늦어서 죄송하다는 청년의 발그레한 뺨에 행복의 미소가 어려 있었다.

우리 사회는 '베풂'에는 적잖이 익숙하지만 '함께'에는 여전히 망설인다. 뻔한 이유다 여러모로 불편을 감수하면서 까지 손해 보기 싫은 건 아닐까 싶다. 그날 그 가게에 애정이 더 갔던 이유도 청년에게 스스로 할 수 있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주인의 마음 씀 때문이었다.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 있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존감일 것이다. 그래서 '베풂'과 '함께'는 다르다. 베푼다는 것은 베푸는 쪽의 생각과 입장에 중심이 쏠려 있다. 베풂을 수용하는 쪽으로서는 베풀어 주는 쪽에 대해 고마움은 갖게 되지만 스스로 행복감을 느끼기는 어렵다, 자신에 대한 신뢰감이 생겨나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베품'보다 '함께'가 더 필요하고 훨씬 효과적이라 생각한다.

노을 지는 무량수전 앞 태백산의 풍광은 장엄하다. 모든 것이 장엄함 속에 침묵과 아름다움이 공존한다. 천년사찰은 애정 어린 눈으로 아래 세상을 품는다. 능선의 시선은 산을 오르내려 무량수전을 향하고 골짜기는 산을 흘러 절을 품었다. 노을은 산하를 붉게 물들였다. 물든 마음으로 내려오는 길, 돌계단 앞에서 돌들을 다시 바라본다. 서로가 다르게 생긴 돌들. 서로가 서로를 껴안고 이를 맞추어 부족한 공간을 서로 채워주었다. 함께 라는 말. 그것은 돌계단의 돌들이 사바세계에 던지는 5월의 화두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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