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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2.04.29 17:58:05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올봄 바로 길하나 건너 동네로 이사하게 되었다.

이삿짐을 싣고 오던 날, 유독 벚꽃이 바람에 흩뿌렸다. 십여 년만에 살던 집을 비우는데 꽃비는 나비처럼 너울대며 눈이 부시다. 마지막 텅 빈 집을 다시 돌아보려니 울컥 가슴이 치민다. 참 많은 우여곡절을 보낸 세월이었지만 따뜻한 안식처, 정든 둥지였다.

인생은 달콤하고 쌉싸름한 한 편의 영화인 듯싶다. 오래전 다른 고장에서 청주로 처음 이사를 올 때도 그랬다. 그곳 사람들과의 애틋함을 못 잊어 한동안 울적했던 아픔은 지금도 아릿하게 남아있다. 그런데도 이젠 청주가 어느새 내 인생의 중심이 되어버렸으니 세월의 무게를 절로 실감한다.

어딘가를 떠나거나, 누군가와의 이별만큼 힘들고 망설여지는 일도 없다. 오랫동안 익숙한 곳에서 분리된다는 사실은 우선 두려움부터 앞서기 때문일 거다. 적지 않은 시간 함께 체온을 나누었던 이들과 머물렀던 공간은, 낡은 만큼 숱한 우리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언제부턴가 인간사 만남과 헤어짐만큼은 운명에 따르는 것이라 나는 믿고 있지만 말이다.

이사하기 전, 별수 없이 버려야 할 물건을 구분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쓸모없이 그저 쌓아두고 내버려둬 놓은 살림도 구석구석 뒤지니 뜻밖에 눈에 띄었다. 그런 걸까, 혹시 내 안의 어딘가에도 무용지물처럼 녹슨 생각이 웅크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떠나면서, 붙박이장 꼭대기에 올려놓았던 빛바랜 가족 사진첩은 가장 명치끝을 아리게 한다. 순간을 기억해준 문명 덕분에 우리 가족의 지나온 날이 소리 없이 흐른다. 일장춘몽 같은 시간들, 의지하며 함께 살아온 세월을 되돌리니 가슴이 뻐근하다.

아예 집을 팔고 가는 것도, 또 먼 거리로 가는 이사도 아닌데 한동안 공허함에 일손이 잡히지 않는다. 시공간을 초월한 그 무언가의 애틋함이 서린 걸까. 미래는 누구도 또 예측하기 어렵다. 이 세상 모든 이별은 어떠한 형태이든 아쉬움이 남기 마련인가 보다.

오래된 나를 떠나면 또 다른 내가 오는가. 이사를 온 동네 병원과 약국, 시장, 꽃집, 세탁소, 화장품가게, 마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분위기는 한동안 생소할 수밖에 없다. 물론 적응하기까지 상황에 따라 불편함은 당연할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긴장감과 함께 오는 생동감은 묘하다.

낯선 곳에서 아침을 맞는 여행 같은 설렘이랄지. 새로운 주변 환경에 대한 모험과 신선함은 지루한 일상의 기분전환처럼 오히려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아직 생각지 못한 색다른 기쁨이 될 줄은 몰랐던 거다.

습관처럼 늘 그 자리만 지키고 살아온 만큼, 이탈이 주는 긍정의 기운은 봄날 연둣빛 푸름이다. 이사를 결정하기까지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조바심은 한낱 기우였다. 어디로 떠나든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나의 삶은 당연히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었음을 잊고 있었을 뿐이다.

언젠가 읽었던 '빌라 아말리아'라는 소설이 떠오른다. 주인공은 피아니스트인 '안 이덴'이라는 프랑스 여인이다. 그녀는 오랫동안 굳게 믿었던 남자친구에게 배신을 당한다. 그런 중에 안은 자신에게 관심을 쏟는 또 다른 한 남자를 통하여 힌트를 얻고 그동안 살아왔던 삶을 깡그리 정리한다. 스스로 자신의 흔적을 남김 없이 지워버리고 홀로 새 삶을 위한 거처를 찾아 떠난다.

물론 어디에서든지 만족한 생활은 없는 거다.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어쩔 수 없는 인생의 사건을 맞닥뜨릴 때마다 그녀는 적극적으로 행복을 찾아 나선다. 삶을 수선하기보다 과감하게 새 출발을 선택하는 주인공, 자기 본연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안 이덴의 떠남과 새로운 시작에 나도 열망한 적이 있다.

떠남이 없으면 마주침도 없다 했다. 삶의 공간이 바뀌는 것은 생각도 변화되고, 만나는 사람도 달라지고,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심지어 언어까지 변화하기도 한다. 또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버리게 한다. 그래서 결국 나를 더욱 사랑하는 법을 가르치게 되나 보다.

인생은 결국 떠나는 연습인가. 새로운 길을 떠나면 그 행간 사이로 나를 인도하는 풍경이 보인다. 마음도 몸도 스스로 도전적인 삶이기만 한다면 세상은 모두 따뜻한 경험이고 위안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떠난다는 건 모든 걸 다 잊는 건 아닐 테다. 지나온 세월을 다독이며 좀 더 뜬 눈으로 세상을 자꾸 바라보는 것이리라.

섬을 보기 원한다면 섬을 떠나라고 하잖은가. 결국, 떠남은 케케묵은 나를 버리고 새로운 나를 되가져 오기 위한 용기이다.

아직은 낯선 새집 아침 창가에 햇살이 한가득 이다. 더 각별하고 아름다운 꿈을 꾸기에 충분한 빛이다.

임정숙 약력

△한국문인협회·충북수필문학회 회원, 수필샘 동인

△청주문인협회·충북수필문학회 총무 역임

△청주·청원 1인1책 펴내기 운동 팀장

△저서 수필집'흔드는 것은 바람이다'(2009년)

△문학공간 수필부문 신인상. 2007청주예술공로상 수상

△limjs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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