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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 계획은 이게 아니었다. 욕심이 과했었다. 이곳 남매탑에서 삼불봉을 거쳐 은선폭포 쪽으로 내려갈 생각이었다. 욕심을 내려놓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었다. 새해 첫날부터 계획을 포기하는 나약함을 보이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올라오면서 본 상황은 은선폭포 쪽으로 오르는 계룡산 등산로는 통제하고 있었다. 그 동안 내린 폭설과 지난밤에 내린 눈이 원인이었다. 남매탑 방향은 등산을 허용하고 있지만, 그것도 남매탑까지 뿐이었다. 그곳에서 삼불봉 방향이나 금잔디 고개를 거쳐 갑사 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모두 통제하고 있다며 등산객들이 발길을 돌리고 있어서다. 날씨도 매우 춥고 눈이 많이 쌓여있어 길도 미끄럽다. 등산객의 안전을 위한 통제인데 어찌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것은 포기가 아니라 욕심을 내려놓는 일이라고 스스로 위로해본다.

집을 나설 때부터 상서롭고 복이 담겨 있다는 함박눈이 내렸다. 눈이 내리니 모든 세상이 은빛이다. 눈이 부시다. 오늘 내리는 눈은 서설(瑞雪)이 분명하다. 새해를 여는 첫날 복을 주심이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오늘 일정을 취소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강행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다른 날도 아니고 새해 첫날부터 마음속으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을 성 싶었다.

차가 엉금엉금 거북이걸음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 항상 그랬다. 새해 첫날 나들이는 대중교통을 이용해오고 있다. 몇 년 전 내장사에 갔을 적에도 그랬고 지난해 속리산 법주사를 찾았을 때에도 그랬다.

다른 사람들은 새해 첫날 해돋이를 보기 위해 전망 좋은 산이나 바닷가로 향하는데 나는 몇 년 동안 산사(山寺)에 들렸다가 산을 오르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 해돋이를 보기 위함은 아니고 건강하게 한 해 보낼 수 있게 해달라는 염원이 담긴 산행이라고나 할까. 싸늘한 칼바람을 맞으며 지난해를 되돌아보고 산사에서 울리는 풍경소리를 들으면 머리가 맑아지고 기분도 상쾌해 지곤 했다.

박순철

충북 괴산 출생
동양문학 신인상 당선(1990년)
월간『수필문학』천료(1994년)
한국문인협회, 충북수필문학회 회원
수필문학충북작가회장,
충북수필문학회부회장 역임
한국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충북수필문학상 수상 (2004년)외 다수
수필집『달팽이의 외출』『예일대 친구』

동학사 입구에 도착하니 다행히도 퍼붓던 눈이 그쳐가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는데 파란 하늘이 방긋 웃는 모습은 신기하기까지 했다.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산사(山寺) 주변의 소나무가 함박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가지들이 축 늘어져 있어 안쓰럽다. 평소의 청청하던 그 기백은 찾아볼 수도 없다. 눈을 털어주고 싶지만 아무런 도구도 없으니 발걸음을 재촉한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본래의 모습을 되찾을 거다. 그때까지는 모진 수난이 계속될 것만 같다.

남매탑 주변에는 아직도 사람이 많이 남아있다. 어찌나 안개가 짙은지 해가 떠오른다고 해도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정오가 가까운 시각임에도 탑 주위를 서성거리는 사람들이 많으니 새벽에는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상원암에서는 새벽에 이곳 남매탑 시산제에 참여한 사람들과 등산객에게 아침 공양을 제공했다니 그 노력과 정성에 고개가 숙여진다. 모든 것을 등짐에 의존해야 하는 상원암에서는 실로 큰 울력이었을 게다.

남매탑에 처음 올라왔던 기억은 오래전이다. 어머님을 여윈 슬픔에 동학사까지 왔다가 이곳에 올라와 마음을 달래기도 했고, 딸아이의 대입 수능고사 전날에도 이곳에 올라와 마음속으로 기원을 했다. 그 후에도 심란하거나 풀리지 않는 일이 있으면 머리를 식히러 오던 곳이다.

나이 지긋한 어른에서부터 엄마 손을 잡은 어린이에 이르기까지 탑 주위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한결같이 엄숙해 보인다. 중년의 한 여인이 탑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합장하며 머리를 숙이는 모습이 참으로 경건하다. 나도 탑 주위를 천천히 걸으면서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운다. 정치인이나 사회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보다는 나라의 발전과 국민의 태평성대를 먼저 기원했다고 하는 데 나는 가정의 안위를 빌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속물인가 보다. 또 있다. 요즘 슬럼프에 빠진 나의 문장 실력도 향상되게 해달라는 주문도 곁들인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소원을 빌고 있을까? 저 중년의 부부는 아마 자녀의 유명대학 입학을 소원하고 있을까. 아니면 자신의 승진일까. 둘 다 모두이겠지. 사랑하는 사람과 짝을 이루게 해달라고 빌고 있는 것 같은 젊은 연인도 보인다. 그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그래서 젊음은 싱그럽고 어느 곳에서나 돋보이는가 보다.

올해는 18대 대통령이 취임하는 새로운 원년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이 대통령에 취임하는 박근혜 당선인을 가리켜 불교계 어느 큰스님은 선덕여왕을 닮았다고 했다. 그 큰스님의 말씀처럼 덕을 베풀어서 모든 사람이 마음 놓고 살아갈 수 있는 새 시대를 열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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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