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음동두천 26.0℃
  • 구름많음강릉 28.0℃
  • 구름많음서울 24.5℃
  • 맑음충주 25.4℃
  • 맑음서산 21.4℃
  • 맑음청주 25.4℃
  • 맑음대전 25.8℃
  • 맑음추풍령 26.0℃
  • 맑음대구 26.1℃
  • 맑음울산 22.5℃
  • 맑음광주 25.0℃
  • 구름조금부산 21.0℃
  • 맑음고창 25.3℃
  • 맑음홍성(예) 23.7℃
  • 구름조금제주 18.9℃
  • 구름조금고산 18.1℃
  • 구름조금강화 22.5℃
  • 맑음제천 23.9℃
  • 맑음보은 25.4℃
  • 맑음천안 24.9℃
  • 맑음보령 22.5℃
  • 맑음부여 24.9℃
  • 맑음금산 26.8℃
  • 맑음강진군 22.8℃
  • 맑음경주시 28.3℃
  • 맑음거제 21.0℃
기상청 제공

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웹출고시간2012.06.10 16:06:20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얼마 전 큰딸과 시골 친정집에 잠시 들렸다. 밥상을 물리고 차 한 잔을 마시는 도중에 어머니가 슬그머니 일어나셨다. 건넛방에 장롱문을 열더니 주섬주섬 옷을 몇 벌 꺼내어 침대 위에 늘어놓으셨다. 의아해하는 나를 바라보며 오는 토요일 동창 모임 나가는 데 어떤 옷이 좋을지 모르겠다며 멋쩍은 표정을 지으셨다.

옆에 있던 딸은 올해 팔순을 맞이한 할머니가 동창을 만난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나 하듯 화들짝 놀라는 눈치였다. 나 또한 어머니에게 이날까지 '동창'이라는 단어조차 처음 들어본 듯하여 뜻밖에 생소한 느낌부터 들었다.

평생을 종갓집 맏며느리로, 고된 농사일로, 자식 뒷바라지로 분주하기 이를 데 없이 살아온 어머니였다. 그동안 하루라도 온전하게 어머니가 어린 시절의 옛 친구를 만나 동심에 젖어 여유롭게 웃으며 담소를 나눈 일이 있었는지. 내 기억으로는 좀처럼 떠올려지지 않는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후, 친구들을 나이 팔십에 처음 만난다는 어머니 앞에 세월은 참 무상도 하다. 살아온 날 동안,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진정한 당신만의 시간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흥흥 콧노래를 부르며 입가에 미소가 번진 모습이 마냥 소녀 같기만 했다.

아마도 거리가 먼 곳에서의 만남이었다면 아쉽긴 했어도 어머니는 지레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시골 친구들의 번거로운 여러 사정을 생각해 도시에 사는 친구분들이 고향 가까운 곳으로 약속 장소를 정했던 모양이다. 연륜이 더할수록 친구란 존재의 소중함이 더 애틋해져서일까. 거동이 불편할 수 있는 연세임에도 친구의 안부가 그리워 먼 길 마다치 않는 노년의 우정이 따뜻하다.

어머니가 친구들 만남에 옷차림을 고민하는 모습이 왠지 반갑기도 하고 아이처럼 귀여워 보이기도 했다. 한편으론 지금보다 젊고 고우셨을 때 그런 기쁨과 설렘을 충분히 누리지 못했던 안타까움이 더 아릿하게 다가왔다.

나는 딸과 작당하여 옷장에서 요즘 입을 만한 어머니 옷을 모두 꺼내었다. 그동안 딸, 며느리들이 사다 드린 옷이 적지 않게 걸려 있었지만, 그 중 모임에서 어머니가 가장 돋보일 수 있는 연출을 해보겠다는 일념으로 어수선을 피웠다.

어머니는 우리가 모양과 빛깔, 구색을 갖춰 놓은 옷 몇 가지를 몸에 대보며 거울 앞에서 내내 쑥스러워하셨다. 아예 입어보시라고 성화를 부려도 '너희가 괜찮다 하는 걸 입고 갈란다' 하시며 손을 내저었다. 아마도 마음처럼 몸이 따라 주지 않는 모양인가 보다. 기력이 달리시는 듯 털썩 주저앉고는 '노인네가 주책없지'라며 싱긋 웃고 마신다.

가만 생각해 보니 어머니 일평생 처음인 특별한 외출에 확실하게 기분 전환을 해 드리면 어떨까 싶었다. 친정 가까운 곳에 사는 작은 언니에게 몰래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했다. 분명히 의도를 알게 되면 완강하게 거절하실 게 분명해 언니와의 저녁 외식을 핑계로 어머니를 읍내로 모시고 나갔다.

식당이 아닌 옷가게 앞에 차를 세우자 어머니가 한사코 내리길 거부하셨다. 겨우 달래듯 옷가게 안으로 들어가긴 했지만, 어머니는 괜한 돈 쓰지 말라며 망설이기만 하신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자꾸 어머니 시선이 연보라색 바탕에 작은 꽃무늬가 들어간 하늘하늘한 원피스에 머물고 계시는 듯했다. 언니와 내가 서로 눈짓을 나눈 후 빙빙 돌다가 그 옷이 어머니께 잘 어울릴 것 같다며 선수를 쳤다.

임정숙 약력

△한국문인협회·충북수필문학회 회원, 수필샘 동인

△청주문인협회·충북수필문학회 총무 역임

△청주·청원 1인1책 펴내기 운동 팀장

△저서 수필집'흔드는 것은 바람이다'(2009년)

△문학공간 수필부문 신인상. 2007청주예술공로상 수상

△limjs60@hanmail.net

주름 가득한 얼굴이었지만 출중했던 예전 어머니 미모가 되살아나는 듯 원피스는 정말 곱게 잘 어울렸다. 내친김에 신발가게로 어머니를 등 떠밀 듯 밀고 들어갔다. 편하고 시원해 보이는 흰색 샌들이 새 옷과 제법 맞았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 흰머리가 눈에 걸렸다. 미장원에서 염색까지 마치고 나니 십년은 더 젊어 보이셨다. 괜한 말해서 너희에게 부담을 주었다고 미안해하는 어머니였지만, 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뭔가 할 일을 다한 듯 마음이 가벼웠다.

그러나 사실은 옷가게 탈의실에서 어머니 옷을 입혀 드리다가 나는 가슴이 쿵 내려앉았었다. '우리 엄마 공주 같다.' 말은 하고 있었지만, 어느새 기역자처럼 더 잔뜩 굽어 있는 어머니 등을 가까이서 바라본 순간 목에서 왈칵 뜨거움이 치밀어 올랐다. 그저 와락 어머니를 끌어안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모처럼 들뜬 어머니 기분을 망치고 싶진 않았다. 눈치 없이 자꾸 눈자위가 붉어지려는 걸 애써 참으며 괜한 호들갑만 떨었다.

내가 중학교 시절 우연히 외국영화를 보다가 '오드리·헵번'이란 여배우를 처음 알게 되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벽에 걸린 가족사진 중에 어머니는 한복을 입으셨지만 호리호리한 몸매와 갸름한 얼굴, 깊고도 또렷한 눈매와 오뚝한 콧날이 꼭 오드리 헵번을 연상케 했다. 그래서 나는 가끔 친구들한테 오드리 헵번이 우리 엄마를 닮았다고 자랑을 하고 다닌 기억이 난다.

흑백사진 청초했던 어머니 모습은 이제 어디로 갔는지. 바람 불면 한 줌 마른 나뭇잎처럼 훅 날아갈 듯 작아진 어머니가 애처롭다.

세상 들녘, 고요하고 순박한 할미꽃이 되어버린 나의 어머니, 슬프지만 아름다운 꽃이어라.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매거진 in 충북

"기술을 넘어 협력으로" 성장 네트워크 구축하는 충북이노비즈

[충북일보] "충북 이노비즈 기업들이 연결을 통해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기술 우위를 바탕으로 경쟁력을 확보한 기술혁신형 중소기업은 지역 내 탄탄한 경제 기반으로 핵심역할을 하고 있다. 30일 취임한 안준식(55) 신임 이노비즈협회 충북지회장은 회원사와 '함께 성장하는 기술혁신 플랫폼'으로서 이노비즈협회 충북지회 역할을 강화한다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안 신임 회장은 "취임 후 가장 먼저 해야할 부분은 이노비즈기업 협회와 회원사 위상 강화"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대외협력위원회(위원장 노근호 전 충북테크노파크 원장) △경영혁신위원회(위원장 이미연 ㈜유진테크놀로지 대표) △회원사 협력위원회(위원장 한연수 ㈜마루온 대표) △봉사위원회(위원장 함경태 ㈜미래이앤지 대표) △창립 20주년 추진위원회(위원장 신의수 ㈜제이비컴 대표)로 5개 위원회를 구성했다. 안준식 회장은 도내 회원사들이 가진 특징으로 빠른 적응력과 협력네트워크를 꼽았다. 그는 "충북 이노비즈 기업은 제조 기반 기술력과 신사업으로의 적응력이 뛰어나다. 첨단산업 핵심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들이 다수 분포해 있고, 산업단지 중심 클러스터화도 잘 이뤄져 있어 협력 네트워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