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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나 까다로운지 딸애 구두 한 켤레 사는데 몇 시간을 돌아다녀서야 겨우 살 수 있었다. 모양이 좋으면 굽이 높고 괜찮은 것이 있어 신어보면 치수가 없었다. 몇 군데를 다니다가 아주 마음에 드는 구두를 신고 입이 귀에 가 걸리는 딸애를 보니 중학교 때 아버지가 맞춰 준 검정 구두가 생각났다.

그때만 해도 구두 신고 다니는 여학생이 흔하지 않았다. 대부분이 청색 운동화를 신고 다녔다. 나도 입학하면서 산 운동화를 신고 다녔는데 하루는 아버지가 수업 마치고 시내로 나오라고 했다.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아버지가 기다리고 계시는 곳으로 가니 수제 구두 전문점이었다. 회사에서 잠시 짬을 내서 나오신 아버지는 근무복 차림이었는데 구두점 안에서 누구보다도 환하게 웃고 계셨다.

신발가게에도 예쁜 기성화가 많은데 비싸게 구두를 맞추느냐는 어머니의 말씀에 여자는 구두도 발에 꼭 맞게 신어야 한다고 하셨다. 발이 편해야 공부도 잘되고 일이 순조롭게 풀린다며 좋은 구두는 애착이 가서 더 오래도록 신을 수 있다고 하셨다.

신고 간 운동화를 벗고 발 길이를 재고 발등에 끈을 걸어 고리를 채우는 구두 디자인을 골랐다. 아버지는 당신의 신발을 맞추는 것보다 더 신이 나 연방 웃으시며 우리 딸이 중학교 들어갔는데 예쁘게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다. 구두를 사는 것만도 좋은데 맞춤 구두를 신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들떴다.

친정은 육 남매인데 딸로는 내가 장녀다. 위로 오빠가 둘 있지만, 아버지는 오빠들보다도 나한테 더 애착을 두셨다. 옛날 분 같지 않게 딸이라고 편애하는 법이 없었다. 어느 잎 새 하나 젖을까 섭섭한 자리를 다독이며 넉넉하지 못한 살림이었지만, 아버지는 늘 내 주머니를 든든하게 채워주었다.

학생한테 무슨 용돈이 필요하냐고 하면 여자는 항상 조심해야 하고,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항시 비상금을 지니고 다녀야 한다고 하셨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어른이 된 나는 아버지께 용돈 한 번 변변하게 드리지 못했다. 살아오는 동안 수없이 내게 사주셨던 구두 한 켤레 사 드린 적이 없다.

성인이 될 때까지 내 발은 아버지가 지켜주었고 버팀목이 되어 주셨는데, 난 내 딸애와 남편의 발 챙기기에만 바빴다. 굳은살이 박여 뒤꿈치가 거북이 등처럼 거칠고 딱딱해진 아버지의 고단한 발은 한 번도 돌아보지 못하고 살았던 것 같다.

박종희 약력

△2000년 월간문학세계 수필 신인상으로 등단

△제3회 서울시음식문화개선 수필공모전 대상

△제5회 올해의 여성문학상 수상 등 다수

△ 저서 '나와 너의 울림' '가리개'

△ 충북여성문인협회, 충북수필문학회, 한국산문작가협회 회원, 한국작가회의충북지회 사무국장

△1인1책 펴내기 지도강사

언제였던가, 친정에 갔다가 상추를 뜯으러 텃밭에 나가느라 아버지의 구두를 신었던 적이 있다. 다니러 온 딸의 신발이 식구들 발에 밟힐까 봐 어느새 내 구두는 아버지 손에 들려 신발장에 고이 모셔져 있었다. 그런데 발을 떼려는 순간 느낌이 이상했다. 꼭, 뒤로 넘어갈 것 같이 몸의 균형이 흐트러지고 발뒤꿈치가 푹 꺼지는 기분이었다.

얼른 벗어 들어보니 구두 뒤 굽이 닳아 주저앉아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했지만, 신발 안을 들여다보니 살짝 내려앉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버지가 여태 이 구두를 신고 다니셨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 한편이 울컥하며 느꺼워졌다. 이렇게 푹 꺼진 구두 뒤축에 힘이 실려 뒤꿈치를 끌고 다니시느라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 자식이 여럿이지만 정작 아버지가 망가진 구두를 신고 다니시는 것을 아는 자식은 없었다.

살면서 부모님의 신발을 신어보는 자식이 정말 몇이나 될까. 내가 구두를 들고 살피는 모습을 방에서 내다보시던 아버지는 신발이 없는 것도 아니고 아직은 신을 만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안개가 아른거리는 것처럼 갑자기 눈앞이 부옇게 흐려졌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쓰레기통에 넣고 싶었지만, 더 신어도 된다는 아버지 말씀에 그러지도 못하고 돌아와서 난 그 일을 남의 일처럼 또, 까맣게 잊고 있었다. 정말 친정 부모님께 은혜를 갚는다는 것은 말뿐인 것 같다. 그래서 부모의 자식 사랑은 언제나 짝사랑이라고 하나 보다.

신발장 문을 열고 들여다본다. 유난히 신발 욕심이 많아 조붓하게 놓인 구두를 셀 수가 없다. 딸애와 남편 구두까지 빡빡한 신발장이 비좁아 현관 바닥에 내려놓은 것도 몇 켤레다. 몇 해 전 일본 여행길에 만 원 주고 사셨다며 흐뭇해하시던 검정 구두가 아까워, 장거리 다니실 때만 신고 다니시는 아버지가 우리 집 신발장을 열어보면 어떤 기분이 드실까.

추운 겨울날이면 연탄 부뚜막에 내 신발을 올려놓고 발이 따뜻하도록 데워주시던 아버지께 더 늦기 전에 구두 한 켤레 사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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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