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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4.01.12 15:38:52
  • 최종수정2014.01.12 15:38:52

정방사


하나. 정방사에서 떡국 공양

어느 해 설날 금수산 정방사를 방문했다. 설을 맞은 산사의 햇살이 따스하다. 법당 부처님께 세배를 드리고 청풍호 경관을 조망하는데 공양주보살님이 따라온다. 떡국 공양을 하라는 말씀이다. 믿음이 얇은 나는 기름기 없는 떡국에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그런데 아내가 대뜸 감사히 먹겠다고 했다.·곧 대학을 졸업할 아들과 함께 세 식구는 볕이 고운 마루의 작은 소반에 둘러앉았다. 공양주보살님을 따라간 아내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국을 내왔다.

떡국에는 만두도 쇠고기 꾸미도 계란 지단도 없었다. 가늘고 길게 썬 김과·목이인지 석이인지·고명으로 까맣게 얹히었다. 간장은 노란 골파 양념도 없이 맑은 그대로였다. 찬이라고는 배추김치 한 보시기가 전부였다. 큰댁에서 설날 차례를 올리고 기름진 안주로 음복주까지 했으니·구미가 당기지 않는 것도 당연했다. 숟가락으로 휘휘 저어 국물 맛을 보았다.·깨끗하고 담백하다. 기름이 고소한 냄새로 유혹하지 않으니 흰떡 맛이 살아있다. 입에 넣고 씹어 보았다. 국물은 깔끔하고 떡첨은 쫄깃하다. 처음에는 구수하다가 씹을수록 단맛이 난다. 고기를 넣지 않고 어떻게 이런 맛을 낼 수 있을까?

공양주보살님은 옆에 앉아서 우리를 바라보았다. 아내가 육수 내는 방법을 물어보았다. 중요한·재료는 표고라고 했다. 고기는 물론이고 멸치 맛도 황태 맛도 나지 않았다.·특히·절에서 쑤어 띄운 메주로 담근 간장을 썼다고 했다. 아내는·공양주보살님의 육수 내는 법 강의에·관심이 있었지만,·우리 부자는·떡국 맛에 더 빠져 있었다.

큰댁인 원주에서·청주 집으로 오려면 영동고속도로를 경유하여 호법에서 중부고속도로로 들어서야 하는데,·중앙고속도로로 잘못 진입한 것이다. 내친김에·금수산 정방사에 들렀다.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정방사는·뒤로는 비단 같은 금수산을 진산으로 삼고, 남으로는 유리처럼 빛나는 청풍호반을 내려다보고 있다. 깎아지른 바위벽에 제비집처럼 간신히 붙여 절집을 지었다. 뒤안에는 엄청난 암벽이 금방이라도·절집을 덮어쓸 듯·달려든다.·무시무시한 바위벽 아래에서는 부처님 은혜처럼 감로수가 솟아난다. 법당 본존불인 관세음보살은 청풍호반의 맑은 물빛과·멀리 월악산 영봉까지 품안에 품고,·중생의·고통을 들으려는·듯 단아한 모습으로 앉았다.

·기름진 음식은 마음을 타락시키고 교만하게 한다. 먹을수록 샘솟듯 탐욕이 일어난다. 새해를 맞아 한 끼라도 깨끗한 음식으로 마음에 공양하니 몸까지 때를 벗는 기분이었다.·법당에 하산·삼배를 드리고 나오니 봄 햇살이·관음보살 손길로 오셔서 온몸을 감싸주었다.·세월이 지났어도 맑은 기운으로 감돌던 그날의·감동은 잔잔하게·남아 있다.

이방주 약력

청주출생, 1998년 '한국수필' 신인상충북수필문학상(2007), 충북수필문학회 회원, 내륙문학 회장 역임한국수필가협회 회원, 한국수필작가회 이사, 수필집 '축 읽는 아이', '손맛', '여시들의 반란' 편저 '윤지경전' (주식회사 대교)

공저 '고등학교 한국어'

둘. 성황당 떡 신령


·정월 대보름 전날은·집집마다 고사를 지냈다.·친구와 나는 그때마다 떡 신령이 되었다. 그날도 어머니가 일찍 지어 주신 오곡밥을 먹고, 고사떡 시루에 김이 오르는 것을 보고 슬그머니 대문을 빠져 나와 친구를 만났다. 날이 어두워지자 우리는 소쿠리를 하나씩 머리에 쓰고 성황당으로 향했다. 집에서 멀지는 않았지만·작은 고개를 두 개나 넘어서 후미진 자드락길로 세 번째 고개를 찾아가야 한다. 어둠이 내리기·시작하는 날망에서 부엉이가 울었다. 으스스 추위가 몰려온다.·부엉이 우는 곳에는 큰짐승도 따라다닌다는데 낮에는 포근하더니 봄추위가 아직 남았는가···

친구가 그냥 돌아가자고 내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고개를 둘이나 넘었는데 어떻게 포기하고 빈손으로 갈 수가 있단 말인가· 나는 친구의 잡은 손을 내치고 빠른 걸음으로 어둠을 헤쳤다. 해토머리에 풀렸던 길이 질척거렸다.·

성황당에 도착했다. 돌 더미 뒤에 향나무가 있다. 향나무 뒤에 숨으면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는다. 묵은 거미줄이 얼굴에 쩍 묻어났다. 향나무 바늘잎이 얼굴이며 목덜미를 마구 찌른다. 소리를 내면 안 된다. 여기서 기다려야 한다. 숨을 죽이고 아주 조용히 숨어 있기만 하면 횡재를 한다. 성황신에게 올리는 떡을 훔쳐 먹는 짜릿한 재미를 우리 말고 누가 또 알까?

한식경은 기다렸다. 두런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호롱불을 앞세운 사람들이 성황당 앞에 나타났다. 이럴 때는 기침 소리도 방귀소리도 내면 안 된다. 성황당 앞에 짚을 깔고 기름접시에 불을 밝혀 놓는다. 사방이·환해졌다.·작은 불이 고갯마루 어둠을 훤하게 밝힐 수 있다니 놀랄 일이다. 깔아 놓은 깨끗한 짚 위에 순아네 머슴이 지고 온 시루를 내려놓는다. 순아 할머니는 시루 앞에 무릎을 꿇고 손을 모아 빌기 시작한다.

·"성황님 그저 올해는 우리 마실엘랑 역병도 없이 가뭄도 없이 홍수도 없이 그저 무탈하게만 하여 줍쇼. 우리 순아 애비 농사도 잘되고 하는 일 만사형통하게 하여 줍쇼. 아이들 공부도 잘하고 무럭무럭 자라게 하여 줍쇼. 성황님 비나이다."

조급증이 나 있던 우리는 순아 할머니가 떡을 시루 째 쏟아 놓고 돌아가자·튀듯이 나갔다. 가져온 소쿠리에 시루떡을 담았다. 떡시루 위에 있는 몇 푼 지전은 순아 할머니 정성을 생각해서 그 자리에 두었다.·떡은 따끈따끈하다.

훔쳐온 떡은 감추어 두고 몰래 몰래 먹었다.·성황당 떡을 훔쳐 먹으면 재수가 없다는 할머니 말씀에 조금 켕기기는 했지만, 숨어서 떡을 먹으며 키들거릴 때마다 그날의 긴장감이 살아나 더 맛있었다. 성황님의 보복이 두려워 가끔 걱정을 했지만 한해를 지나는 동안 순아네도 우리도 아무 탈도 없었다.

열다섯 살 개구쟁이 시절, 성황당 떡 신령이 되었던 기막힌 추억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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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