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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2.07.22 14:43:48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너를 떠나보내는 이 마음 한량없이 무겁기만 하구나. 어찌 한마디 말도 없이 그렇게 총총 떠날 수가 있단 말이냐? 서둘러 내 곁을 떠나야 했던 이유가 너에 대한 무관심이 빚어낸 일인 것만 같아 미안한 마음 또한 겹쳐오는구나.

너는 누가 뭐래도 나에게 일생을 바친 충직한 애마였단다. 언제 어디든 가자고 하면 군말 없이 나를 싣고 다녔다. 때로는 눈이 오금까지 쌓인 길을 가다 발이 묶여 오도 가도 못한 적이 있었지, 그래도 너는 불평 한마디 없었지. 또 있단다. 변산반도에서 세미나를 마치고 올라오는 길이었을 게다. 올라와서 급하게 해야 할 일이 있어 너를 쉬지도 못하게 하고 장장 네 시간을 달렸었지. 다른 말들 같았으면 아마 발굽이 아파 못 가겠으니 얼마간 쉬어가자고 했을지도 모르지만 너는 내 명령에 순종했었지.

같이 있을 때는 몰랐던 고마움이 이제 하나하나 느껴지는구나. 그러나 이 일을 어쩌랴 너는 점점 힘이 빠지고 늙어간다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았으니 이 모두 나의 부족한 식견 탓이라 생각되어 부끄럽기 그지없구나.

다른 사람 같았으면 신품종, 덩치도 크고 말갈기도 요란하게 휘날리는, 보기 좋은 애마로 바꾸었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단다. 옛말에 촉새가 황새 따라가려다가 가랑이 찢어진다는 속담이 있다. 연금 받아서 빠듯하게 생활하는 사람이 너보다 큰 애마를 타고 다닌다는 것은 능력 밖의 일이라고 생각했었단다. 물론 많이 먹어서 힘도 좋고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애마를 타고 다니면 우쭐함은 느낄 수 있겠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겠니.

이제 와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조금은 마음에 걸리지만 너를 무척이나 아꼈단다. 시내버스 타고 출근하면서도 너에게는 비를 맞히지 않으려고 집안에 고이 들여놓기도 했단다. 너에게 쏟은 나의 사랑 너 또한 기억하리라 생각한다. 사람들은 마누라보다 너를 더 아낀다는 말을 하곤 했었지만, 그 말이 기분 나쁘게 들리지 않았다. 나의 사랑을 먹고 자라는 너는 잔병치레 없이 잘 지내주었으니까. 그때는 무척 고마웠단다.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어느 날이었다. 평소 같으면 고생하는 네가 안타까워 나 혼자 길을 나섰겠지만, 교통이 불편한 곳을 가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너를 타고 나서지 않았더냐. 맑던 하늘이 흐려지고 땅 가까이 내려앉더니 소담스런 함박눈을 퍼붓는 게 아니겠니. 너를 데리고 나온 것을 후회했지만 돌이킬 수도 없는 일이었단다. 급히 머리를 돌려 집으로 오려했지만 그리 쉽지 않았었지. 더구나 괴산에서 증평으로 넘어오는 모래재에는 눈이 쌓여 걸음을 더디게 했고 길이 미끄러워 조심하지 않으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아찔한 순간도 몇 번이나 너는 잘 견뎌내었었지.

산 넘어 산이라더니 내 마음을 더 아프게 하는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쌓인 눈을 녹이고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뿌려놓은 염화칼슘을 비켜 갈 수는 없었단다. 당장 미끄러움 방지에는 도움이 되어 일부 사람은 좋아했지만, 그것을 밟으면 발굽이 서서히 부식되어가는 몹쓸 화학약품이란 것을 너는 잘 알고 있었겠다. 하지만 그것을 밟지 않고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으니 도리가 없었지. 집에 돌아와 너의 아랫도리를 씻기느라 또 한 번 고생을 해야 했었다.

너를 내 애마로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했단다. 다른 사람은 아니었겠지만, 나에게는 거금이었단다. 수중에 돈은 없고 너는 탐이 나고, 하는 수 없이 3년에 걸쳐 너의 몸값을 지급하기로 하고서야 너를 내 애마로 만들 수 있었다. 3년, 그까짓 세월 금방 가더구나. 그렇게 3년씩 서너 번 지나가자 너의 몸도 서서히 약해지기 시작했었지. 그런데 그 당시는 그런 것을 눈치 채지 못했으니 주인 잘못 만난 너의 불행이라고 생각하거라.

그동안 너를 무던히도 부려 먹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뿐이구나. 내가 편하자고 너를 사들인 것이지 구중궁궐 깊은 곳에 마냥 모셔놓기만 하려고 데려온 것은 아니란 것을 너도 알고 있었겠지.

대놓고 힘들다며 움직이지 않으려 할 때에는 정말 화도 많이 났었단다. 하지만 어쩌겠니? 하루는 하도 답답해서 네가 다니던 단골 병원에 입원시키고 정밀 검사를 의뢰하지 않았겠니. 전문의의 말은 너의 심장은 아직도 뜨거워 젊은이 못지않으나 머리나, 팔다리 등 노화된 부분이 너무 많아서 어떻게 손 쓸 방법이 없다고 하더구나. 편하게 보내주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말을 들을 때엔 어찌할 바를 몰랐었다.

너와 인연을 맺기 전에는 남이 타던 말을 사서 타고 다니곤 했었다. 남의 손에 길든 애마는 내 말을 잘 들으려 하지 않았단다. 처음부터 남이 손대지 않은 말을 사들여 길들여 보고 싶다는 생각에 선택한 게 너 엘란트라였어. 지금은 네 모습이 초라하고 찾는 사람도 없지만 너 엘란트라가 세상에 태어날 때만 해도 너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주로 서민들이 주로 애용하던 너여서 나도 선택한 것이고.

우리 집에 처음 오던 날을 생생하게 기억하겠지! 제일 먼저 너를 반기고 네 등에 올라탄 사람은 꼬마 아씨였단다. 고사리 손으로 너의 등을 어루만지며 좋아라! 하던 그 꼬마 아씨가 이제 어엿한 숙녀로 성장했으니 참으로 세월 빠르구나.

잘 가거라. 네가 가는 세상에선 부디 좋은 주인 만나 편히 쉬려무나. 사랑했던 애마야!

박순철 약력

충북 괴산 출생
동양문학 신인상 당선(1990년)
월간『수필문학』천료(1994년)
한국문인협회, 충북수필문학회 회원
수필문학충북작가회장,
충북수필문학회부회장 역임
한국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충북수필문학상 수상 (2004년)외 다수
수필집『달팽이의 외출』『예일대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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