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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에 노을이 번진다. 나의 시야도 붉게 물들인다. 잠시 시름을 내려놓는다. 그것도 잠시 검은 생명체가 흔들거리며 눈앞을 가린다.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던 거미가 널뛰듯 줄을 타고 있다. 거미도 저무는 태양을 바라보다 귀가를 서두르는 것일까.

붉은 노을은 하루가 저물고 있다는 증거이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는 의미도 담겨있으리라. 내가 찾은 병실에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환자들뿐이다. 옆 병실 환자는 아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그리 생각하니 병상에 누운 아버지가 떠올라 두 눈에 눈물이 가득 차오른다.

조금 전 아버지는 휠체어에 의지해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무는 해를 바라보며 가냘픈 목소리로 "집에 가야지."라고 중얼거렸다. 나는 말귀를 알아듣고 예사롭게 "집에 가야죠."라고 대답하였다. 그리 말했지만, 내 마음은 서글펐다. 팔과 다리를 바르르 떠는 당신의 모습은, 마치 차디찬 빗물에 젖어 떨고 있는 작은 새의 모습이었다. 정정했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그래, 당신도 나도 그 대답이 빈말임을 알고 있다. 당신의 건강이 호전 기미가 보이지 않아 병원에 오래 머물어야 한다는 것을.

이은희 약력

2004년『월간문학』등단, 2004년 동서커피문학상 대상 수상
2007년 제물포수필문학상 수상, 2010년 충북수필문학상 수상. 2012년 신곡문학상 본상 수상
2013년 제8회 충북여성문학상 수상, 2013년 국립청주박물관 사진공모전 금상 수상 외 다수.
저서로,『검댕이』,『망새』,『버선코』,『생각이 돌다』수필집 출간.
한국문인협회, 계간『에세이포레』편집위원, 청주문인협회 회원, 충북수필문학회 주간, 충북여성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 (주)대원 상무이사로 재직 중.

돌아보니 당신은 평생 집밖에 모르던 분이었다. 직장에서 일을 마치면 딸들의 간식거리를 자전거 뒤 자석에 매달고 곧장 집으로 돌아오셨다. 그 흔한 술친구도 한 명 없이 적적한 삶이었다. 밖으로 나다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품이라 식구끼리 여행 또한 어려웠다. 오죽하면, 아버지랑 여행하는 것이 소원인 적도 있었으리라. 지인과 식사 모임이 있는 날에도 집의 밥을 고집하여 어머니는 하루도 빠짐없이 밥상을 차렸다. 당신의 입맛을 맞출 식당도, 당신의 흐트러진 모습도, 아무도 본 적이 없었으리라.

병상에 누운 아버지의 모습이 낯설다. 근엄하던 당신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바닥에 달라붙은 비에 젖은 낙엽처럼 아버지는 병상에 꼼짝 않고 누워 계신다. 그래, 당신의 야윈 모습은 꼭 몸에서 진액이 빠지고 벌레 먹어 뼈대만 남은 낙엽만 같다.

유년시절 아버지는 높고 높은 산이었다. 남들처럼 아빠랑 팔짱을 끼고 다정한 대화를 나눈 적도, 아양을 떨어본 기억이 없다. 산행을 하여도 내 곁에서 묵묵히 걸을 뿐이었다. 높은 산처럼 서서 딸들의 성장을 지그시 바라보신 것이다. 툇마루나 안방 창가에 앉아 담배를 피우거나, 딸들이 수다 떠는 모습을 말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 보면 당신은 딸밖에 모르던 딸 바보였다. 아버지는 딸 여섯을 낳아 키우느라 애를 태우셨다. 딸들을 험난한 세상에 내놓고 혹여나 나쁜 일이 생길까 출퇴근을 직접 챙기셨다. 당신이 직장까지 출퇴근을 챙기니 혈기왕성한 딸들에겐 행동의 제약을 받는다고 느끼기 마련이다. 딸들은 아버지 때문에 연애도 제대로 못 한다고 볼멘소리를 했지만, 정작 결혼을 하지 못한 딸은 없었다.

지금 당신은 애지중지하던 큰딸의 나이도 잊었다. 과거에 사로잡힌 아버지가 결혼 전 내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숫자를 헤아리니 열 식구가 기와집에서 살던 시절이다. 너나없이 생활이 어렵던 시절이고, 열심히 벌어야 식구들을 먹여 살릴 수 있던 때이다. 아버지는 왜 그토록 힘들었던 시절이 그리운 것일까. 아마도 돌아가신 할머니와 어머니가 함께 다복했던 시절이라 그런지도 모른다. 기와집에서 생활하던 옛 추억이 눈앞에 주마등처럼 흐른다.

평생을 가난한 선비처럼 살아오신 아버지. 그 흔한 욕망을 꿈꾸지도 요행을 바라지 않는 절제된 모습이 어찌 당신 탓이라 할 수 있으랴. 술친구가 없는 것도,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것도 모두 우리 탓이다. 내가 결혼하여 자식을 키우며 생활하니 뒤늦게 알게 된다. 식구를 건강하게 지키려다 보니 절약 습관이 몸에 밴 탓이리라. 가족을 위한 자신의 희생임을 못난 딸은 이제야 깨닫는다.

창가에 거미가 사라지고 없다. 아마 식구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갔으리라. 도시를 붉게 물들이던 노을도 스러지고 어둠이 내려앉는다. 멀리 라이트를 켜고 달리는 차량의 행렬이 보인다. 저들도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리라. 오늘도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가지를 못한다. 딸들과 맛집을 가기도 어렵고, 산길을 걷기도 어렵다. 그저 고통에 일그러진 당신의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어제도 오늘도 하루빨리 건강한 일상이 머무는 집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신께 간구할 뿐이다.

며칠 후 아버지는 생전에 그리워하던 어머니 곁으로 홀연히 떠나셨다. 아버님은 육신의 고통이 없는 집, 이사할 필요가 없는 만년유택(萬年幽宅)에 드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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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