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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3.05.12 18:04:29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어서 용왕제가 끝났으면 좋겠지만, 그것은 한낱 욕심이다. 아직도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으니 내가 생각해도 한심한 사람이다. 불심(佛心)이 돈독한 신자들은 심신을 가다듬고 기도에 열중하고 있는데 염치없는 이 사람은 용왕제가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니 저들이 보기에는 측은하기만 할 거다.

전에는 지금처럼 불심이 엷지 않았었다. 어머님을 따라 사찰에 가서 부처님께 기도를 올리기도 했고, 또 어머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는 음식은 입에 대지도 않았었다. 또 있다. 딸내미의 수능고사를 앞두고는 우리 부부가 직접 동학사 대웅전에서 높은 점수를 받게 해달라고 기원하기도 했었다. 어머님 돌아가시고 난 다음 얼마까지는 사찰에 들르면 대웅전에 들어가 예를 올리곤 했었다. 어머님 생전 모습이 떠올라서이다. 사는 게 너무 팍팍해서일까. 이제 그런 예까지 까마득하게 잊고 있으니 나 자신, 많이 반성하고 되돌아보아야 할 일이다.

용왕제 올리기 시작한 지 두 시간여 가까이 된 것 같은데 아직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친구와 나는 또 하릴없이 바닷가 백사장을 거닌다. 마스크를 하고 모자를 눌러썼어도 3월 초의 바닷바람은 차기만 하다.

"성불하십시오."

버스에 오르려는 순간 뜻밖의 인사를 받았다. 아마 모임의 회장이나 임원쯤으로 보였다. 어리둥절했다. 이런 격식 있는 인사는 해보지도 않았거니와 어떻게 응대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하는 수없이 앞사람 하는 데로 합장하며 고개를 숙였다.

전혀 예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성지순례 행사에 쉽게 따라나선 것이 문제였다. 버스가 출발하면서부터 법문 독송하는 소리가 그리 유쾌하게 들리지 않았다. 휴게소에서 잠깐 쉬는 동안을 제외하곤 종일 그 소리를 들어야 했다. 불자들은 법사의 독송과 목탁소리를 따라 불경을 외우기도, 찬불가를 부르기도 한다.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을 접견이라도 한 것처럼 얼굴엔 평온이 가득하다. 나는 불편하기 짝이 없다. 지난밤 과음한 탓에 눈 좀 붙이고 싶은 마음 간절했으나 울려 퍼지는 찬불가와 법문 소리에 잠은 백 리 밖으로 달아나 버린다.

박순철 약력

충북 괴산 출생
동양문학 신인상 당선(1990년)
월간『수필문학』천료(1994년)
한국문인협회, 충북수필문학회 회원
수필문학충북작가회장,
충북수필문학회부회장 역임
한국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충북수필문학상 수상 (2004년)외 다수
수필집『달팽이의 외출』『예일대 친구』
ⓒ 박순철
친구 부부는 전국에 있는 사찰을 모두 순례할 정도로 불심이 깊다. 가보지 않은 사찰이 없을 정도이다.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낯선 사찰이 나오면 메모해 놓았다가 꼭 찾아가 볼 정도로 관심이 많다. 나는 구경 다닌 것이 명승지 위주였는데 그 친구는 명승지도 훤히 꿰고 있지만, 사찰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가입해 있는 불자(佛子) 모임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성지를 찾아다닌다며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불자도 아니려니와 친구처럼 불심이 깊지 못하다. 망설이는 눈치가 보이자 성지 순례에 참석하는 사람 중엔 불심과 전혀 관계없는 사람도 많이 참석하니 괜찮단다.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란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친구는 성지순례에 다녀온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었었다. 본인은 불심이 깊지 않아 신자들이 도량에 들어가서 기도 올리는 동안 주변을 산책하거나 관광을 즐긴다고도 했다. 이번 성지 순례코스는 포항에 있는 보경사이며 용왕제까지 지낸다고 하기에 호기심에 따라나섰다.

보경사는 내연산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불국사의 말사이다. 또 뒤로 이어진 십 리가 넘는 청하골 계곡에는 크고 작은 폭포와 기암절벽이 자리하고 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 가보고 싶어 하는 곳이다. 잘 되었다 싶었다. 이참에 내연산 등산도 하고, 또 용왕제 지내는 것도 구경하고 싶은 마음 간절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하더니, 처음부터 이 모임은 성지 순례이지 그저 구경이나 다니는 것은 아니란 듯이 법문 외우는 소리가 계속 귓전을 어지럽혔다.

ⓒ 박순철
친구와 나는 보경사 주차장에 내리자마자 내연산으로 내달렸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두 시간, 아무리 빨리 걸어도 내연산 정상까지 갔다 오기는 어려운 일, 한 시간 올라갔다가 한 시간 내려오자며 부리나케 올라가는데 친구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린다. 열두 시까지 내려와야 점심공양을 할 수 있으며 다음 일정에 차질이 없겠단다.

울진 어느 해수욕장에 내린 일행들이 용왕제를 지내기 위해 분주하다. 친구와 나는 관심을 두고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정성으로 차린 제사상 앞에 절을 하는 사람, 불전을 놓는 사람도 있다. 나도 뒤에서 합장하고 고개를 숙였다. 취업난에 고민하는 딸내미가 빨리 취업할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다. 불전도 드리지 않았으니 염치없는 짓이다. 주위를 돌아보니 한결같이 기원하는 모습이 진지하다. 저분들은 무엇을 그리 간절하게 소망하고 있을까? 아마도 자신보다는 가족의 건강과 안녕을 빌고 있을 것만 같았다.

소망을 모두 들어주신다는 확답을 받기 전에는 기도를 그칠 수 없다는 듯 불자들의 기원은 계속되고 있었다. 법사의 청아한 독송과 불자들의 염원은 동해의 푸른 파도에 실려 자꾸 용왕님 전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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