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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동안 입었던 카디건 색깔이 바랬다. 옅은 색이라 때가 잘 타는데 군데군데 얼룩이 생기고 물이 빠져 초라해 보인다. 남들이 알면 10년이나 입었으면 이젠 버려도 되지 않겠느냐고 하겠지만 나는 이 카디건이 참 마음에 든다.

워낙 스웨터를 잘 입는 내 옷장에는 카디건만 10장이 넘는다. 그중 미색 스웨터를 가장 자주 입는다. 장식 없이 단순해 유행을 타지 않고, 목 부분에 진주가 달려 밋밋하지 않고 단아한 느낌이 들어서이다. 10년을 줄기차게 입으면서도 바랜 색깔 때문에 가끔 버리려고 뒤로 밀어놓기도 했었는데, 결국은 버리지 못하고 늘 내 옷장을 차지하던 카디건을 염색하기로 마음먹었다.

인터넷에서 미색 계열과 비슷한 5번 염색약을 샀다. 설명서를 보니 그다지 까다롭지 않았다. 세숫대야에 뜨거운 물을 담아 염색약을 풀고 스웨터를 담가 놓았다. 설명서대로 20분이 지나서 들여다보니 색깔이 예뻤다. 그런데 웬일인지 마르고 나니 처음 염색했던 색깔이 빠지고 부분 부분에 얼룩이 더 심해졌다.

오히려 염색하기 전보다 못한 카디건을 보고 고민하다가 다시 염색약을 샀다. 이번에는 인터넷을 뒤져 니트를 염색한 사람들의 후기를 모두 읽어보았다. 미색 계열은 5번과 7번 두 가지 색을 섞는 것이 가장 예쁘다고 했다. 그들의 성공담처럼 두 색을 섞어 중간색을 만들고 소금 대신 명반을 넣었다. 그녀들이 담가두었던 시간보다 조금 더 오래 담가두었다가 건져보니 마음에 썩 드는 색깔로 완벽하게 염색이 되었다. 명반을 넣어서인지 마지막까지 헹궈도 염색물이 빠지지 않았다. 은은하고 고급스러운 색깔로 다시 태어난 스웨터를 보고 딸애도 예쁘다고 했다.

카디건에 물을 들이며 사람 사이에도 서로 물들지 못해 관계가 틀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 나는 결혼생활 24년 차다.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고 다시 반을 넘어가고 있는 시간이다. 그 긴 시간 동안 서로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보통의 부부처럼 겉으로 보기에는 한 사람처럼 보였지만 남편은 남편대로 나는 나대로 변하지 않는 고집이 있었다.

결혼 초에는 그런 생각조차 할 여유가 없었다. 아이 키우고 직장 다니고 집안 다독거리느라 남편과 내가 맞추는 일은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한집에서 산 지 10년이 가까워질 무렵 남편과의 대화가 자꾸 엇갈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정적인 내 성격과 동적인 남편의 성격 때문이려니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부부의 대화는 균형을 잃기 시작했다. 남편은 우기고 나는 숙이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러다 보니 어느 때부터인가 내가 입을 닫게 되었다. 워낙 큰소리 나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라 그저 가슴속으로 삭히며 살았다. 그러나 그런 내 방식이 남편을 못 견디게 했던 모양이다. 그렇지 않아도 말수가 적다고 불평하는 남편한테 내 침묵은 고문 같은 것이었다.

그래도 사는 일엔 그다지 불만이 없었다. 워낙 가정적인 남편이라 특별히 바라는 일도 없었고 딸애는 잘 자라 대학생이 되었다. 그러면서 남편도 나도 머리가 희끗희끗해지는 50대가 되었다. 대화하다가 가끔 부딪혀 합의점을 찾지 못하는 것 말고는 어느 것도 문제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의 목소리가 다시 커졌다. 이유는 내가 자기를 무시해서 대답하지 않는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날따라 남편은 격앙된 목소리로 분노에 떨었다. 옆에서 바라보던 딸애가 모두 아빠 잘못이라고 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그날 밤 새벽이 다 되도록 남편과 나는 잠들지 못했다. 무릎을 맞대고 긴 시간을 이야기한 결과 이제껏 대화했던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20년을 넘게 살았지만, 서로의 언어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대화하면 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큰소리가 나는 것으로 마무리될까 하는 고민을 했는데, 결국은 서로의 언어습관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남편은 평소에 목소리가 크고 따지고 명령하는 듯한 언어를 사용하는데 정작 본인만 모르고 있었다. 나 역시 대답하지 않고 입안에 물고 있는 것이 상대를 얼마나 속상하게 한다는 것을 나만 모르고 있었다.

염색처럼 사람도 서로의 마음에 스며들어 물이 들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왜 몰랐을까? 첫 번째 염색에서 비율이 맞지 않아 물감이 지워졌던 것처럼 남편과 나도 서로의 언어에 귀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남편의 언어를 이해하고 남편이 내가 사용하는 언어를 이해했다면 긴 시간 앙금을 가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 번의 실수를 거쳐 두 번째 염색한 카디건은 빨아도 색깔이 빠지지 않는다. 물 온도와 염색약의 비율과 명반의 농도가 염색을 완벽하게 해준 것이다. 인간관계에서도 그렇다. 서로 믿지 못해 물들지 않으면 관계는 곧 지워지고 만다. 10여 년을 입었던 스웨터가 다른 색으로 새롭게 태어난 것처럼 요즘 남편과 나도 새로운 느낌이다.

그렇다. 누군가를 마음에 담는다는 것은 서로 스며드는 일이다. 새하얀 천이 서서히 물들어가는 것처럼 누군가의 마음속에 어떤 사람이 물들어가는 것이다. 오랜 시간 몇 번을 반복해서 내 마음에 그 사람이 물들고 결국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염색은 사랑이다.

박종희 약력

△ 2000년 월간문학세계 수필 신인상으로 등단

△ 제5회 올해의 여성문학상 수상

△ 제 17회 매월당 김시습 문학상 수상 등 다수

△ 저서 '나와 너의 울림' '가리개'

△ 충북여성문인협회 부회장, 충북수필문학회 촘무, 한국산문작가협회 회원, 한국작가회의충북지회 사무국장

△1인1책 펴내기 지도강사

△essay02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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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