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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곳은 변두리지역이어서 큰 발전이 없는 곳이다. 30여 년 전 집을 장만할 때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다. 그러다 보니 자연 상권이 형성되기 어렵다. 몇몇 집이 1층에 상가를 내고 임대를 주곤 하지만 크게 주목 받거나 활성화되지는 않았다.

우리 집 길목에 있는 건물 아래층 식당도 주인이 여러 번 바뀌었다. 유동인구가 적으니 장사가 잘될 리 없다. 한동안 문을 닫아놓고 있었는데 어느 날 보니 청주식당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었다.

가무잡잡한 얼굴에 깡마르고, 키가 껑충한 여인이 그 청주식당에서 장사를 시작한 것은 3년여 전인가보다. 손님이 없어 닫아놓고 있던 식당 문을 연 그 용기가 놀라웠다. 벌써 몇 사람인가 주인이 바뀌었는데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말이 좋아 식당이지 주 메뉴는 술손님을 맞기 위한 간단한 요리이다. 우암산에 등산 갔다 오는 사람들이 들려서 가볍게 소주 한 병에 오징어볶음 등 값싼 안주를 시켜먹고 가곤 하는 그런 식당이다. 때로는 안주도 시키지 않고 막걸리 한 병 놓고 장시간 자신들의 무용담이나 신세한탄만 늘어놓다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가 그 식당을 이용하게 된 것은 아주 우연이다. 동네에서는 거의 술을 먹지 않았기 때문에 평소에는 그냥 지나치곤 했었다. 그날은 이웃집 형님이 나오라고 하기에 마지못해 따라간 곳이 그 집이었다.

첫눈에도 별 호감이 가지 않았다. 술손님들이 자주 찾는 집은 대게 주모가 털털하거나 후덕하게 생겨 안주를 많이 주는 곳이다. 그런데 첫눈에도 주모의 가무잡잡한 얼굴은 노처녀의 히스테리를 연상하게 했고, 깡마른 얼굴은 후덕한 인심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졌다. 아무리 살펴봐도 복이 들어 있을 것 같은 곳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술이 거나한 손님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톡 쏴붙이는 말은 정나미가 뚝 떨어지게 했다. 그런 말을 하려면 다시는 오지 말라는 게다. 그다음은 내 모르는 일, 그 남자가 다녀갔는지 어찌했는지….

그 이후에도 몇 번인가 그 집에 가서 술을 먹은 기억이 있다. 하지만 안주가 맛있다거나 싼값에 이끌려 간 것은 아니고 집에서 제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집이다 보니 멀리 가기 싫어서 가곤 했었다.

지난해 섣달그믐날이었다. 전만은 못하지만 그래도 연말이면 몇 군데 모임이 있고 그곳에서 빠짐없이 행해지는 송년회라는 게 있다. 그날도 어느 모임에서 송년회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술기운이 찬바람을 맞으니 이내 가신다. 조금 모자란 듯싶다. 전 같았으면 2차를 갔을지도 모르나 이제 그런 만용은 자제할 줄도 알고 있으니 이제 철이 들었다고나 할까.

버스에서 내려 터덜터덜 걸어서 그 식당 앞을 지나오는 데 마침 주모가 어느 손님을 배웅하기 위해 문을 열고 나오다 나와 시선이 마주쳤다.

"어르신 어디 다녀오세요·. 잠깐 들렀다 가세요."하는 게 아닌가.

전에도 그랬다. 옆집 형님이랑 술을 먹으러 가면 우리에게 꼭 어르신이란 호칭을 붙였다. 옆집 형님은 어르신 소리를 들을 만하지만 나는 아직 아니라고 생각한다. 마음은 지금도 청춘인데 어르신으로 보인다는 현실이 나를 서글프게 하기도 한다.

그 주모의 자존심으로 봐서 나에게 술 한 병 더 팔기 위해서 호객하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달리 바쁠 것도 없고 해서 따라 들어갔더니 홀에는 술손님이 한 명밖에 없었다.

"앉으세요. 이 모(某) 어르신이랑 정 모(某) 어르신은 자주 오시니까 미리 말씀드려서 한잔 씩 하고 가셨어요.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못 뵙고 가는가했더니 마침 인사드릴 기회가 돼서 다행이네요."

주모의 말을 정리하면 이제 이곳에서 술장사는 그만 하겠다는 것이며 오늘은 마지막으로 송년회를 겸해서 그동안의 고마움을 담아 술을 대접하고 있었다는 게다. 가슴이 뭉클해왔다. 외모만 보고 후덕하게 생기지 않았다느니 신경질적으로 생겼다느니 생각한 나의 얕은 안목이 다시 한번 굴욕을 당하는 순간이었다.

여인이 우리 동네에서 장사한 3년 여 동안 돈을 벌었으면 얼마나 벌었겠는가. 값비싼 안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주로 서민들이 자신들의 비어 있는 술 배를 채우기 위해 드나들었던 곳이 아니던가. 내가 느끼기에는 많은 이윤이 남을 턱이 없을 것 같았다.

한 해 동안 수출 실적을 많이 쌓은 기업들도 연말 보너스에는 인색한 게 사실이다. 내 짧은 식견으론 좀 나누어 주어도 될 성싶은 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하긴 옛날에 아흔아홉 섬 가진 부자가 한 섬 하는 자작농의 한 섬을 빼앗아 백 섬을 채웠다는 말도 있으니 가지면 더 갖고 싶은 게 사람의 욕심일지도 모른다.

주모는 시원하게 끓인 동태찌개와 소주 한 병을 상에 올리고 손수 따라주는 친절까지 보인다. 전 같으면 어림없는 일이다. 그날따라 술맛이 더 좋았다. 1차 모임에서 어느 정도 마시고 온 길이지만 나는 주모의 고마운 마음에 이끌려 술병 바닥이 보이는 것도 잊고 있었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써라.'라는 옛말이 있는데 그 주모의 씀씀이는 정말 정승 같아 보였다.

박순철 약력

충북 괴산 출생
동양문학 신인상 당선(1990년)
월간『수필문학』천료(1994년)
한국문인협회, 충북수필문학회 회원
수필문학충북작가회장,
충북수필문학회부회장 역임
한국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충북수필문학상 수상 (2004년)외 다수
수필집『달팽이의 외출』『예일대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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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