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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의 결혼날짜를 잡고 나서 내가 함으로 받았던 여행 가방을 꺼내보았다. 함 받는 날 눈물을 쏙 빼게 했던 가방은 이젠 들고 다니기조차 창피할 만큼 구식이 되어 24년이라는 세월의 흐름을 실감 나게 했다.

날을 받아 놓으니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딸만 하나라 평생 시어머니가 될 일은 없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조카의 결혼식에 시어머니 역할을 해야 한다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상견례 자리도 어색했다. 처음 보는 사돈과 밥을 먹으며 무슨 이야길 했는지 기억도 없다.

예단은 간소하게 하기로 했지만, 함 싸는 일이 걱정이었다. 잘못 쌌다가는 사돈댁에 책잡힐 수도 있어 고민하고 있는데, 조카는 함도 간단하게 하기로 했으니 신경 쓰지 말라고 한다. 울산과 청주의 거리가 멀어 내가 자주 내려갈 수 없어 함에 꼭 넣어가야 할 채단과 혼서지에 대해 알려주었다.

박종희 약력

△2000년 월간문학세계 수필 신인상으로 등단

△제3회 서울시음식문화개선 수필공모전 대상

△제5회 올해의 여성문학상 수상 등 다수

△ 저서 '나와 너의 울림' '가리개'

△ 충북여성문인협회, 충북수필문학회, 한국산문작가협회 회원, 한국작가회의충북지회 사무국장

△1인1책 펴내기 지도강사

함 속에는 신랑 집에서 신부에게 보내는 채단과 사돈 간의 예를 표하는 혼서지가 들어간다. 함을 싸는 절차도 복잡하고 까다롭다. 들어가는 물건 하나하나마다 정성과 의미가 담겨있다. 요즘은 예전처럼 함을 따로 준비하지 않고 신혼여행 가방을 사용하는데 가방에다 함을 싸는 방법도 같다.

우선 가방 바닥에 붉은색 한지를 깔고 오곡 주머니를 준비한다. 분홍색 주머니에는 자손의 가문과 번창을 의미하는 목화씨를 넣고, 붉은색 주머니에는 잡귀나 부정을 쫓는다는 붉은 팥을 넣는다. 노란색 주머니에는 며느리의 부드러운 심성을 바라는 노란 콩을 넣고, 파란색 주머니에는 부부의 백년해로를 기원하는 찹쌀을 담는다. 그리고 연두색 주머니에는 길한 장래의 기원과 조상을 섬기라고 향나무를 넣는다.

그렇게 오곡을 담은 주머니를 붉은색 한지의 귀퉁이마다 놓은 다음 채단을 한지에 싸서 넣어준다. 붉은색 옷감은 푸른색 한지에 싸서 붉은색 명주실로 묶고, 푸른색 옷감은 붉은색 한지에 싸서 푸른색 명주실로 묶는다. 이때 묶는 방법도 부부간의 막힘과 화합을 기원하는 의미인 동심결을 지어 묶는다. 동심결을 지어 묶으면 나중에 풀 때 엉키지 않고 한 번에 쉽게 잘 풀린다.

함에는 기본으로 채단과 혼서지가 들어가지만, 집안의 가풍에 따라 보석과 양장 그리고 화장품을 같이 넣기도 한다. 이때 보석이나 다른 예물은 분홍색 한지에 한 개씩 따로따로 싸서 넣는다. 함에 들어갈 것을 모두 넣고 나면 다시 푸른색 한지로 덮고 그 위에 신랑의 아버지가 신부 아버지에게 딸을 며느리로 주어 고맙다고 보내는 편지인 혼서지를 올려놓는다.

4년 전 '예절지도사' 자격증 공부를 하며 다 배운 것인데 정작 써먹으려니 생각이 나지 않았다. 새삼스럽게 책을 꺼내 다시 들여다보는데 오래된 풍경 하나가 떠올랐다. 24년이 지났지만 내가 결혼할 때도 가방에 싼 함을 받았다.

함을 지고 온 남편 친구들이 동네 입구에서부터 시끌벅적하게 장난을 치는 바람에 친척들은 꽤 기대했던 모양이다. 우여곡절 끝에 함을 받았는데 함을 구경하러 오신 친척들의 낯빛이 좋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신혼여행 가방에 함을 싸 보내는 집이 드물던 때라 친척 어르신들은 시댁을 예의 없는 집안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거기다 가방 안에는 약혼식 때 이미 받았던 예물과 한복이 들어있으니 서운한 마음을 감추질 못했다.

친척들 앞에서 함을 열던 친정어머니도 당황스러운 표정이었다. 남편과 내가 실속을 차리느라 함을 여행 가방으로 택했던 것이 어른들의 눈에는 성의 없이 보였던 것이다. 어찌나 속이 상하는지 함을 지고 왔던 남편과 친구들이 돌아가고 나서 나는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가장 좋아해야 할 날에 펑펑 우는 딸을 보는 친정어머니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내가 우니 덩달아 우는 동생들 때문에 참 많이도 울었던 것 같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결혼은 두 사람이 맺어지는 일보다는 겉으로 보이는 형식이나 겉치레에 더 민감한 것 같다. 그래도 조카와 조카며느리는 요즘 젊은이들 같지 않게 실속 있게 결혼준비 하는 것을 보니 참 기특하고 대견했다.

알려준 대로 준비해서 함을 갖다 드리고 왔다는 조카의 목소리가 밝았다. 내가 함을 싸서 보내지 못해 마음이 쓰였는데, 결혼식 날 내 손을 꼭 잡으며 아무것도 모르는 딸아이를 잘 부탁한다고 하는 안사돈의 환한 얼굴을 뵈니 마음이 놓였다.

함은 며느리를 생각하는 시어머니의 정성이라는데 그 일을 제대로 못 했으니 앞으로 두고두고 조카며느리한테 잘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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