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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정취와 풍성함의 제일은 감나무에 새빨갛게 열린 감 풍경일 것이다. 다닥다닥 매달린 감을 바라보면 여름내 고생한 농부들도 긴 피로감을 날리며 흐뭇한 함박웃음이 절로 나오리라. 그뿐인가 잎이 넓은 감잎은 붉은색으로 물드는 단풍이야말로 풍성함을 전해주는 가을의 표상이 아닐까.

시골에는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감나무가 한그루 있다. 시아버님께서 젊은 시절, 남편이 태어나기 전에 고욤나무에 감나무를 접 부쳐 놓으신 나무란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것이 천지의 이치거늘, 감만은 그렇지 않다. 감 씨를 심은 데서 감이 나지 않고 대신 고욤나무가 난다. 그래서 3~5년쯤 지났을 때 기존의 감나무 가지를 잘라 이 고욤나무에 접을 붙여야 그다음 해부터 감이 열린다.

생가지를 칼로 째서 접붙일 때는 아픔이 따른다. 사람도 그런 아픔을 겪으며 선인의 예지를 이어받을 때 비로소 하나의 인격체가 될 수 있다는 감나무의 가르침이 서려 있다고 전해 내려온다.

내가 24세에 시집오던 해에도 그 감나무에서 샛노란 월하 감을 수확하여 시어머님은 항아리 속에서 우려낸 감을 주셨다. 모래 씹는 것처럼 와글거리는 떫은맛의 땡감을 그렇게 단맛으로 변하게 하는 어머님의 요술비법이 참 신기했다. 시어머님께서 세상을 뜨신 후부터 나도 흉내를 내 보았으나 몇 번은 그다지 흡족한 솜씨가 아니었다. 내 나이 고희를 넘기는 지금까지도 어머님의 그 맛 100%가 되지 않는 것이 늘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김정자 약력

△'한국수필'로 등단

△청주시문화공로상 수상

△법무부 전국교정수기공모전 최우수상 수상

△청주예술공로상

△제7회 홍은문학상 수상

△한국수필작가회 충북수필문학회 청주문인협회 회원 충북여성문인협회 회장역임

△1인1책 펴내기 운동 프로그램 강사, 청주시민신문 편집위원

△저서로는 세월속에 묻어난 향기, 41인 명작품 선집

감나무의 수명은 몇백 년을 사는 나무가 많단다. 우리 집 감나무도 헤아려 보니 100년을 넘게 우리 밭을 지켜주고 있다. 100년이 되면 1,000개의 감이 달린다더니 올해는 헤아릴 수 없는 감이 가지마다 눈부시게 열렸다. 감나무 고목을 보고 자손의 번창함을 기원하는 기자목(祈子木)으로 생각한 것도 바로 이런 까닭이지 싶다. 매년 감을 따 주던 외사촌 시동생은 이제는 나이를 먹어 감을 따지 못하겠단다. 그러고 보니 나와 함께한 세월이 오십여 년이나 흘렀으니 당연한 일이다. 올해는 나의 큰아들이 친구들과 휴일을 잡아 감을 따오겠다며 전지를 만들었다.

커다란 대나무 장대 끝에 양파 망을 잠자리 채처럼 매달아 일일이 한 개씩 감을 따는 일은 너무도 힘든 일이다. 친구들 몇 명과 한나절을 소요하여 사오백 개는 족히 되도록 따가지고 왔다. 따지 못한 감이 빨갛게 남아 있지만, 더 이상은 힘이 부쳐서 포기했다며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힘들여 딴, 감 자루를 가져왔다.

이제는 내 일만 남아있다. 따뜻한 방바닥에 어머님께서 쓰시던 항아리를 옮겨놓아 주는 것은 남편의 몫이다. 남편은 해마다 감 항아리를 나를 때마다 어머니 생각이 난다며 그날은 어머니을 향한 그리움에 젖는다. 어머니가 떠난 지 수십 년이 지났어도 항아리에서 어머니의 냄새가 난단다. 감을 우리는 동안 들락거리며 항아리를 만지작거린다. 그 항아리는 맛있는 동치미를 담글 때도 한몫을 한다. 적당히 익힌 다음 김치 냉장고로 옮겨 놓으면 이듬해 봄까지 시원한 동치미를 먹을 수가 있어 나는 그 항아리를 신줏단지처럼 보관한다.

요즘은 아파트 온수시설이 잘되어 있어 일일이 물을 끓이지 않아도 섭씨 80도를 맞춰서 금세 침시 감을 담글 수가 있어 좋다. 옛날에는 연탄불 위에 커다란 양은 들통에 물을 100도로 끓인 후 80도 정도까지 식혀서 가득 채운 감 항아리에 붓는다. 소금과 감잎, 그리고 된장 한 스푼을 넣고 항아리를 비닐로 씌워 고무줄로 챙챙 감아 술독처럼 담요로 폭 싸서 12시간 이상을 묻어둔다. 초저녁에 담가서 그 이튿날 늦은 아침에 열어보면 그 온도가 거의 유지되어있다. 널찍한 소쿠리에 상처 나지 않도록 조심조심 꺼내서 찬물 샤워기로 목욕을 시키면 끝이다. 한 시간쯤 지난 후에 시식하는 사람도 남편이다. 혹여라도 내 솜씨가 실수 되었을지 몰라 가슴 조이며 시식을 해보라고 권한다. "아~ 달다! 성공이야 당신 솜씨가 어디 가겠나."라고 하면서 빨리 동네잔치를 벌이란다.

올해는 큰아들 친구들까지 감 잔치를 했다.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혹시 감 남은 것 없느냐고. 직장 동료까지 돌린 모양인데 입맛만 버렸다며 입맛을 쩝쩝 다신단다. 내년에는 한 개도 남기지 않고 딴다며 단단히 벼른다. 미쳐 다 따지 않고 남기고 온 것이 아까운 모양이다. 수많은 감 종류 중에 아버님께서 유산으로 남겨주신 월하 감은 참으로 달큼한 향내가 독특한 최고의 맛을 자랑한다.

감나무는 아무리 커도 열매가 한 번도 열리지 않는 나무가 있다. 그런 나무는 꺾어보면 속이 깨끗하지만, 감이 열린 나무를 꺾어 보면 검은 신이 있다. 그래서 먹감나무라고도 하는데 부모가 자식을 낳고 키우는데 그만큼 속이 상하였다 하여 부모를 기리며 제사상에는 꼭 감을 쓴다고 한다.

이렇듯 감을 생산하는 감나무야말로 여러 가지 깊은 뜻이 담겨있다.

당나라의 학자 단성식(段成式)은 감나무는 수명이 길고, 녹음이 짙으며, 아름다운 단풍과 맛있는 열매, 훌륭한 거름이 되는 낙엽, 그리고 새가 둥지를 틀지 않으며, 벌레가 생기지 않는 '일곱 가지 덕이 있는 나무'라고 하였다.

또한, 감나무는 잎이 넓어 글씨 공부를 할 수 있으니 문(文), 목재가 단단해서 화살촉을 깎으니 무(武), 겉과 속이 한결같이 붉으니 표리부동하지 않는 충(忠), 치아가 없는 노인도 즐겨 먹을 수 있는 과일이니 효(孝), 서리를 이기고 오래도록 매달려 있는 나무이니 절(節)이라 했다. 한편, 목재가 검고(黑), 잎이 푸르며(靑), 꽃이 노랗고(黃), 열매가 붉으며(紅), 곶감이 희다(白)고 하여 오색오행(五色 五行), 오덕 오 방(五德五方)을 모두 갖춘 예절지수(禮絶之樹)이니 수많은 나무 중에서도 감나무를 으뜸으로 여긴다고 예찬(禮讚)하였다.

우리 집 감나무 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그동안 우리 가족에게 당연히 주어지는 과실로 받아만 먹었다. 평생을 거름 한 번 준 적 없는데 변함없이 귀한 열매를 맺어 선사하는 우리 집 감나무가 한없이 자랑스럽다. 여름에는 농부들에게 그늘을 만들어주고, 가을에는 단풍과 함께 열매를 맺어 가을 잔치를 베푸는 우리 집 월하감은 진정 명품과일이다. 오늘 따라 시아버님의 인자하신 모습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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