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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2.09.09 17:28:17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하늘은 세상을 무너뜨릴 기세로 장대비를 퍼붓는다. 우리는 진천 이원아트빌리지에 그야말로 아트를 체험하려고 달려갔다. 길은 노아의 홍수를 맞은 것처럼 온통 물바다이다. 승용차는 노아의 방주가 되어 물을 가르며 달렸다. 한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거기에는 어마어마한 버마재비 한 마리가 떡 버티고 서 있었다. 버마재비는 세모대가리에 철바가지 눈깔을 부리부리 굴리며 내게 소리를 질렀다.)

- 여, 수필가 느림보님, 이렇게 험한 날씨에 웬일이신가? 느림보 선생, 또 알량한 문학기행이신가? 이런 날은 집에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 그래요.

(지르는 소리가 워낙 커서 저절로 움칠 뒷걸음질 쳤다.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작달비는 미술관을 부셔 버릴 듯이 퍼붓는다. 버마재비의 크고 오동통한 배때기는 내가 밟는다 해도 터트릴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세모대가리를 쳐다보려면 목을 제치고 우러러 보아야 할 지경이었다. 게다가 온몸을 불에 그슬린 총통으로 휘감고 있었다. 그렇다고 나의 오만도 쉽게 물러설 수는 없었다.)

이방주 약력

청주출생, 1998년 '한국수필' 신인상충북수필문학상(2007), 충북수필문학회 회원, 내륙문학 회장 역임한국수필가협회 회원, 한국수필작가회 이사, 수필집 '축 읽는 아이', '손맛', '여시들의 반란' 편저 '윤지경전' (주식회사 대교)

공저 '고등학교 한국어'

현재 충북고등학교 교사
ⓒ 이은희
- 야, 버마재비야, 넌 왜 거기 그런 모양으로 서 있는 게야. 온몸에 쇠붙이는 다 뭐냐? 네가 들고 있는 섬뜩한 쇠붙이들 말이야. 비록 불에 타긴 했지만, 네 몸을 감고 있는 총통은 사랑을 잃어버린 전쟁의 잔해들 아니냐? M16, AK소총이네. 혹시 나를 겨누는 거냐?

- 헤헤 수필가 느림보님, 시치미 떼지 마십시오. 물질에 욕심이 없다면서 세상을 허우적거리며 헤집고 다니는 건 무슨 이유입니까· 저녁마다 골목길을 헤매는 건 무슨 까닭입니까· 명예의 뼈다귀라도 주워 먹으려 미친개처럼 말입니다. 사람만 몇 모이면 얄팍한 지식을 뽐내느라 실없는 얘기를 주절대는 모습은 가소롭기 그지없더군요. 왜 양귀비꽃이라도 한 송이 머리에 꽂아보시지요. 파닥거리는 늙은 나방이처럼 말이요. 당신의 더럽고 치졸한 냄새를 당신만 맡지 못한다는 걸 모른단 말이요?

(버마재비가 비아냥대는 소리는 내 가슴에 천둥 번개로 몰아쳤다. 빗물이 전시장 유리 위로 투명한 용암이 되어 흘러내렸다. 나는 세상까지 두려웠다.)

- 버마재비야, 그럼 난 어쩌란 말이냐? 세상은 진리로부터 등을 돌리고, 법도는 먼산바라기가 되었는데, 난 어쩌란 말이냐? 하얀 눈이 쌓여 고고한 동양화가 되기를 바라던 나의 소나무는 시들어 말라 버렸고, 여름날 해바라기가 되어 그토록 바라기를 하던 태양도 나를 외면하는데 나는 어쩌란 말이냐? 나의 좌절을 깔깔 비웃는 길가의 작은 채송화들을 어쩌란 말이냐? 내 앞에 불은 모두 꺼지고 길고 긴 어둠의 골목만이 남아 있는데 나는 어쩌란 말이냐? 이 어두운 비탈길을 나는 어쩌란 말이냐? 그냥 비틀거리며 가란 말이냐? 모든 기대는 실망이 되어 되돌아오는데 난 어쩌란 말이냐?

- 수필가 느림보 선생, 역시 변명의 문학, 기교의 문학을 하시는군요. 산을 좋아한다며 산에서 대체 무엇을 보고 돌아오나요? 소나무가 세한도와 같은 절개로 폼을 잡던가요? 바람이 맵시를 내어 춤을 추듯 불던가요? 새가 악보를 보고 노래를 부르던가요? 계곡의 물이 박자를 맞추어 흐르던가요? 새는 그냥 푸드덕 날아도 시가 되고 노래가 되고, 나뭇잎은 햇살이 비치는 대로 되비쳐도 빛이 되지 않던가요? 바람은 기대하지 않아도 더위에 지친 이들에게 감동을 보내고, 다래덩굴은 생각 없이 칭칭 얽혀서 꽃피우고 열매 맺어도 조화롭지 않던가요? 그냥 사세요. 꾸밀 것도 교태로 의미를 지을 것도 형식에 매일 것도 잘난 체할 것도 감동을 기대할 것도 없잖아요? 당신 앞에 사람들이 모여들기를 바라지도 말고 살아보세요. 기대? 그걸 모두 버리세요. 나의 총구는 당신의 그 잘난 기대를 겨누고 있으니까요.

- 아 그렇구나. 기특한 버마재비야. 옛날 수레를 엎어버리려던 의기만은 가상하게 생각하여 길을 돌렸다는 장공도 사실은 그대가 두려웠는지도 몰라. 나도 지금 네가 하는 언어의 당랑권법이 두렵다.

- 느림보 선생, 내가 들고 있는 총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겨누는 총을 두려워하는 건 아닌가요? 당신의 표리부동을 향하여, 위선을 향하여, 치졸한 오만과 웃기는 자만심을 향하여 겨누는 총대가 두려운 게 아니냔 말이요? 아니 당신 가슴 한편에 이미 자리 잡고 있는 버마재비가 총대를 겨누고 있는 건 아닌가 몰라. 왜 소름이라도 돋는단 말인가요?

- 그래 온몸에 소름이 쫙 깔린다. 두렵다. 버마재비야. 나의 허망한 언어를 향하고 있는 총통이 정말로 두렵다.

(버마재비는 부리부리한 눈깔로 내 허망한 언어의 빙하를 녹여 버릴 것 같았다. 빙하는 허망한 소리를 내며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비가 멎는다. 천둥소리는 서쪽 하늘로 달아나며 여운만을 남긴다. 유리창 밖 소나무 잎에 맺힌 수정알이 빛에 흐트러진다. 산 너머 어디엔가 쌍무지개가 떴으리라. 처마에 물방울 듣는 소리가 청아하다.)

- 버마재비야, 이제 총을 버려라.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을게. 내 문학의 반향을 기다리지 않으면 되잖아. 호화롭게 꾸미어 감동을 얻으려 애쓸 것도 없고, 상서로운 말로 독자를 유혹할 것도 없고, 엉덩이를 휘둘러 교태를 부릴 것 없이, 억지로 투박해 보이려 하지 않으며, 본래의 나대로 그렇게 어둠의 길이라도 걸어가면 되겠지. 버마재비야 이제 총을 버려라. 내 치졸함에 겨누는 총을 이제 내려라. 세상 그대로 가듯이 나도 일상을 찾아 그대로 걸을 테니까 그대는 그냥 불타버린 총통을 온몸에 지닌 채 전시실에 서 있기만 하면 될 거야. 잘못도 없이 비난받는 버마재비야. 내 가슴 한켠에 도사리고 앉은 버마재비야. 이제 총을 버려라.

(비가 그치고 비에 젖은 대지에 햇빛을 내리비치고 있었다. 전시장 유리창마다 햇살이 미끄럼을 타며 영롱하게 반사되고, 논두렁 버드나무는 하얀 솜사탕으로 치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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