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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2.08.05 15:13:49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빗방울이 한두 방울 살갗을 스친다. 손바닥을 하늘로 올려 빗물을 받아본다. 빗방울의 감촉 이게 얼마 만인가. 학수고대하던 비다. 오랜 가뭄으로, 저수지 바닥이 드러나고 대지가 거북이 등가죽처럼 갈라지는 걸 뉴스에서 보았다. 빗방울이 점점 많아진다. 만인이 원하는 비가 내린다.

기다리던 단비다. 다행히도 종일 비가 부슬거린다는 예보니 지상에 자라는 생명의 목젖을 어느 정도 축일 것이다. 저수지 바닥이 드러나 나대지에서 꿈틀거리던 민물고기들도 활기차게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고, 물기가 말라 갈색 잎으로 돌돌 말리던 나뭇잎도 싱그러운 초록빛을 발산하리라. 무엇보다 물꼬를 서로 트려고 다투던 농부들의 성난 인심도 누그러지리라.

그런데 난 왜 이리 허둥대는가? 웃을 수 없는 지극히 사소한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밖에 없다. 마트에 가면서 맨발에 가볍게 신은 신발, '쪼리' 문제가 아니다. 발은 젖으면 수건으로 닦으면 그만이다. 새로 산 핸드백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가죽은 물과 상극이던가.

농부의 염원인 단비며 나 또한 그 염원에 기(氣)를 보탰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내심 불편함을 토로하며, 불평의 낯빛을 숨길 수가 없다. 딸에게 우산을 가지고 나오라고 전화를 건다. 그리곤 뒤도 옆도 돌아보지 않은 채 앞만 보고 내달린다. 물론 핸드백은 아기를 가슴에 보듬듯 애지중지 겉옷 안에 싸안고서. 가방이 젖지 않으려면 죽도록 달리는 일만 남았다.

혹자는 어느 지면에서 '비 맞는 쾌락'을 예찬한 바 있다. 나도 그이를 따라 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의 나의 모습은 정녕 아니다. 준비가 덜 된 상태라고 할까. 아마도 그이는 전투에 임하는 사람처럼 옷차림과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비를 영접하였으리라. 나처럼 예상치 않은 곳에서 쏟아지는 비를 맞는 장면의 연출은 아니다. 비를 즐기는데도 어떤 절차와 계획이 필요하리라. 그렇지 않으면 나처럼 이 핑계 저 핑계 운운하며 비 타령을 하고 있을 것이다. 계획된 상황이 아니면, 비의 여신에게 자신의 온몸을 제물로 바칠 순 없으리라.

이은희 약력

충북 청주 출생, 충북대학교 경영대학원졸업,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학과 졸업. 2004년 월간문학 등단, 제7회 동서커피문학상 대상 수상, 제13회 제물포수필문학상 수상, 제17회 충북수필문학상 수상. 제17회 신곡문학상 본상 수상 외 다수. 저서로,『검댕이』,『망새』,『버선코』,『생각이 돌다』수필집 출간. 한국문인협회, 계간「에세이포레」편집위원, 청주문인협회 회원, 충북수필문학회 주간, 충북여성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 (주)대원 상무이사로 재직 중.

비도 비 나름이다. 햇볕이 나 있는데 잠깐 내리다가 그치는 여우비, 안개보다 조금 굵고 이슬비보다는 조금 가는 는개, 갑자기 세차게 쏟아지다가 곧 그치는 소나기, 장대처럼 굵고 거세게 좍좍 쏟아지는 장대비. 그리고 먼지잼, 안개비, 목비, 가랑비, 건들장마, 개부심……. 비의 종류가 70여 개나 된다니 참 많기도 하다. 비의 종류도 많지만, 대상에 이름 짓기를 좋아하는 민족이란 걸 다시금 느낀다.

누구든 비에 관한 경우의 수를 유리하게 확보하리라 본다. 외출할 때 일기예보를 보고 우산을 챙기고 나온다든가, 우산을 챙기지 못했다면 상점에서 구매하면 되리라는 상식은 어린아이도 알리라. 그러나 도시가 아닌 외딴 산속이나 상점이 없는 곳에선 비가 멈추길 기다리거나 아니면 비를 즐기는 수밖에 없다.

과연 나를 제물로 내놓을 수 있는 비는 어떤 비일까. 비의 선택이 중요하다. 어린아이에게 사탕을 주었다가 도로 빼앗는 것처럼 감질난 여우비는 아무래도 비를 느끼기엔 역부족이다. 안개비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비 맞은 생쥐처럼 머리털을 축축하게 만들리라. 장대비는 머릿속으로 그 장면을 그리기만 해도 온몸에 장대가 꽂힐 듯 아플 것 같다. 아무래도 무더운 날 시원하게 쏟아지는 소나기가 제격이리라. 소나기가 젊은 남녀에 애정의 사슬을 엮어준 낭만의 드라마를 여러 편 보았으나, 그 비를 맞고 어찌 되었다는 기사를 본 적은 없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나는 지금 비를 맞으며 골목을 내달리고 있다. 머릿속은 비 타령을 접고 긍정의 상황으로 정리하면서. 아파트 앞까지 달려왔는데도 딸은 보이지 않는다. 늘쩡거리는 딸은 아마도 나의 급한 성미를 따라오지 못했나 보다. 부슬비에 축축해진 머리와 옷을 탈탈 털어본다. 이내 핸드백을 만져보고 안도의 한숨을 돌린다.

물이 귀한 소말리아에선 물건이 비에 젖었다고 의기소침하거나 불평을 하지 않는단다. 이 말을 알고 있는 난, 역시 속물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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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