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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 동작을 따라하며 언뜻 보이는 바다와 하늘이 푸르다. 푸름 속 내 마음도 잠겨 짙푸르다. 마치 우리나라의 가을 하늘을 옮겨 놓은 듯하다. 그리운 풍경을 이국에서 원 없이 바라볼 줄 누가 알았으랴. 보고 또 보아도 물리지 않는 절경이다. 나에게 휴식을 색채로 말하라면, 단연코 푸른색이다.

동작은 계속 이어진다. 땀이 등골을 타고 소리 없이 흘러내린다. 바람이 살갗을 간질이며 스칠 때, 간간이 아름다운 정경을 마주할 때, 짧은 탄성이 터진다. 내가 짊어지고 온 눅진한 피로가 풀리는 듯 온몸이 나른해진다. 평생 한 번 써보지 않은 육신의 마디를 불러 낸 느낌은 참으로 오묘하다. 요가 선생님은 영어로 눈을 감으라고 주문하지만, 나는 짐짓 못 알아들은 척 눈을 뜬 채로 보기 좋은 감상과 생각을 이어간다.

딸이 휴가를 외국에서 보내자고 제안한다. 나 또한 일에서 과감히 벗어나고 싶어 딸에게 일정을 잡아보라고 위임한다. 항공편과 호텔을 예약하고 그곳의 일정을 정하는 동안, 나는 어떤 의견도 제시하지 않고 방관자처럼 주위를 떠돈다. 간섭하게 되면 나의 꼼꼼한 본성이 도질까 봐 짐짓 모른 척한다. 며칠간이라도 진정한 휴식을 취하고 싶어서다. 나는 이번 여행에 관한 한 백치가 되어 딸이 정해 놓은 일정대로 나를 맡기고 싶었다.

그런데 모전여전이던가. 휴양지 괌에 도착한 첫날부터 강행군일 줄 누가 알았으랴. 한국에서 새벽에 날아와 호텔에 도착하여 눈을 붙인 지 세 시간째. 딸은 얼른 일어나 아침밥을 먹으러 가자고 재촉한다. 이어 바다에 나가 돌고래를 만나고, 바닷물에 들어가 열대어와 영접을 해야 한다는 거다. 대답하는 목소리에 짜증이 섞인다. 편안히 쉬어 가고 싶다는 나의 바람은 사라지고, 이곳에서도 빠듯한 일정에 나를 맡겨야 하다니.

내 표정을 읽은 딸은 무언의 눈짓으로 자신에게 모든 걸 맡기지 않았냐고 항의를 하는 듯하다. 나는 할 수 없이 수영복을 챙겨 로비로 따라 나간다. 우리를 바다로 데리고 갈 안내자는 예약이 늦어 오후 시간에 배정되었다고 알려준다. 딸은 못마땅한 표정이나, 나는 차라리 잘 되었다고 한숨을 돌린다.

이은희

충북 청주출생
충북대학교 경영대학원졸업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학과 졸업.
2004년『월간문학』등단, 2004년 제7회 동서커피문학상 대상 수상
2007년 제13회 제물포수필문학상 수상
2010년 제17회 충북수필문학상 수상.
2012년 제17회 신곡문학상 본상 수상 외 다수.
저서로,『검댕이』,『망새』,『버선코』,『생각이 돌다』수필집 출간.
한국문인협회, 계간『에세이포레』편집위원
청주문인협회 회원, 충북수필문학회 주간
충북여성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 (주)대원 상무이사로 재직 중.

나에게 휴식이란 어떤 모습일까. 나의 도돌이표 삶의 흐름을 과연 끊을 수 있는 걸까. 괌의 일정을 소화하는 내내 이곳에 온 이유를 묻고 묻는다. 평소 하루를 마무리하는 행위로 나를 돌아보며 무작정 걷는 것, 그것도 하나의 쉼일 게다. 그러나 이런 행위도 일상의 한 부분이 되어, 나를 구속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인지.

나는 이곳에 오기 전부터 머릿속에 영화 한 편을 떠올렸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란 영화 속 주인공의 삶을 그렸다. 그녀는 분주한 일상에서 벗어나 외국으로 자유를 찾아 떠난다. 그곳에서 자아를 찾아가는 모습은 내가 그리던 모습이라 여기며 영화에 동화되었다.

영화 속 여러 장면이 마음에 들었다. 그중에 요가를 통하여 명상하고, 기도하고, 나 아닌 다른 이를 위하여 배려하는 여유가 부러웠다. 매일 열린 공간에서 마음을 비우고, 자연을 피부로 느끼며, 팍팍한 가슴에 온기가 피어난다. 마음 한구석에 곁을 주어 사랑하는 사람도 만나고, 무엇보다 그녀가 진정한 행복과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은 내 마음을 흔들고도 남았다.

그러나 영화는 영화일 뿐, 현실의 생활은 어디 그런가. 나의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기엔, 너무나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다. 아니 나는 그녀처럼 열망의 정도가 간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처럼 모든 걸 버리고 떠나기를 못하는 거라고 여기며 좌절하였다. 현실을 도피하듯 딸의 일정에 나를 맡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요가 장소는 시시때때로 풍경이 변하고 바람이 넘나드는 열린 공간이었다. 가부좌를 틀고 앉은 사람들을 보고, 나도 요가를 일정에 꼭 넣고 싶었다. 처음에는 동작을 따라 하기 바빴고, 온몸이 땀범벅 되어 끝났다. 이튿날도 같은 시간에 요가를 신청하였다. 그녀는 마무리에서 바닥에 누워 눈을 감으라고 하였다. 몸의 곳곳에 잠들어 있던 세포가 일제히 활동하다가 숨을 고르다 무념무상의 상태에 들었다. 편안하였다.

이어 선생님의 무반주 노래가 들려왔다. 눈을 감고 귀와 촉각만이 열린 상태다. 고요한 공간에는 바람이 주인인 것처럼 나의 심신을 어루만지고, 저음의 노래가 먹먹한 가슴을 열라고 문을 두드린다. 가슴의 밑바닥에 깔린 억눌린 욕구와 두려움을 끌어내 밝은 빛으로 치환하는 순간이랄까. 그 속에서 망연히 서성거린다. 그리곤 나는 잠깐 휴식의 달콤함에 빠져들었다. 이대로 잠이 든 듯 죽어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몸 안에 또 다른 세계가 열린 것이다. 가끔은 이렇게 모든 걸 내려놓고 나를 돌아보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내 삶의 주인은 바로 내가 아닌가. 아주 간단한 문구인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를 모르고 부질없는 욕망을 쫓아 달리기만 하였다. 좋은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나누고 이야기하며, 짬을 내어 자신과 누군가를 위하여 기도하는 여유, 이것이 바로 진정한 휴식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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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