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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3.09.29 17:25:58
  • 최종수정2013.09.29 17:25:58
나는 걷기를 아주 좋아한다. 어디서든 틈만 나면 걷는다. 체력이 되는 한 허벅지가 뻐근해지는 고통이 느껴질 때까지 걷기를 갈망한다. 길 위에 그동안 억눌렸던 감정도 원 없이 풀어놓길 원한다. 무엇보다 걷기의 절정에서 치밀어 오르는 느낌과 요동치는 삶의 속내를 읽고 싶은 거다. 묵묵히 걷고 있으면 내가 살아있음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걸을수록 욕망은 더욱 커지는가. 욕망은 더 큰 욕망을 부르는 것 같다. 단조로운 일상과 집착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고 싶다. 그 자유 속에서 변화와 자기 발전을 원한다. 또 느낌에 대한 허기를 채우고 얼어붙은 감수성을 깨트리고 싶다. 누군가의 구속에서 벗어나 내가 가고 싶은 길을 성큼성큼 걷는 자유인이 되고 싶은 거다.

돌아보니 봄과 여름, 두 계절이 흐르는 동안 길 위에 수많은 흔적을 남겼다. 평일에는 엄두를 못 내니 바쁜 주말에 눈치를 보며 떠날 수밖에 없다. 네 시간여 가파른 제주 오름을 두 번 오르내렸다. 샤려니 숲에 든 날, 온종일 비가 부슬거렸다. 날씨에 굴하지 않고, 우비를 걸치고 다섯 시간이 넘는 숲길을 걸어 희미한 발자국을 남겼다.

이은희 약력

2004년『월간문학』등단, 2004년 동서커피문학상 대상 수상
2007년 제물포수필문학상 수상, 2010년 충북수필문학상 수상. 2012년 신곡문학상 본상 수상
2013년 제8회 충북여성문학상 수상, 2013년 국립청주박물관 사진공모전 금상 수상 외 다수.
저서로,『검댕이』,『망새』,『버선코』,『생각이 돌다』수필집 출간.
한국문인협회, 계간『에세이포레』편집위원, 청주문인협회 회원, 충북수필문학회 주간, 충북여성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 (주)대원 상무이사로 재직 중.

오랜 시간 걷다 보면 숨이 턱 막혀 아무 말도 할 수 없고, 무릎이 마비되는 것 같은 감각이 들 때가 있다. 걷기를 포기할 수도 있는데, 내 자존심이 쉽게 허락하지를 않는다. 내 안에 또 다른 나에게 도전이라도 하듯, 오기를 부려 목적지에 도착한다. 가끔 내 몸도 이기지 못하는, 나 자신도 모르는 이 거친 행위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방랑벽이 도진 것처럼 산으로 들로 나다니는 건 아마도 살아남기 위한 욕망의 소산물이 아닐까 싶다.

이런 행위가 형체 없는 그리움을 쫓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때도 있다. 세상 속에 서 있는 나의 겉모습은 꽤 정상인처럼 보이지만, 자신의 마음은 속일 수가 없나 보다. 당도하지 않은 미래의 불안감에 초조한 눈빛이지 않는가. 스스로 '현실 만족'이란 글자를 되뇌며 자리를 지키기에 급급했던 것 아닐까. 여행이나 걷기는 사치스런 행위라 여긴 적도 있다. 그러다 자신을 되짚어보는 기회를 가지며 마음속에 굳어 있던 의식도 바뀌어 갔다. 무언의 깨달음을 얻을수록 이성과 감성의 조율 또한 어려웠고, 그 틈새가 점점 벌어져 여기까지 온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겉모습이 꽃미남처럼 얌전하고 속내를 숨기는 성품을 좋아하지 않는다. 직접 나서서 날 것을 찾아 즐기는, 거칠고 실감이 나는 그것의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각본에 짜인 행동이 아닌 다듬어지지 않은 그대로의 야생의 캐릭터가 인기를 끌고 있다. 세련되고 정제된 가공물보다 거칠지만 자연스럽고 길들지 않은 것을 선호한다.

예전 프로그램은 대부분 방송국에 꾸며진 세트에 앉아 밥상머리에서 웃음을 주는데 그쳤다. 그러나 요즘은 어디 그런가. 연예인이 직접 정글을 탐험하며 망가져야만 인기를 끈다. '1박 2일'이란 프로그램은 인기 연예인이 전국 명소 곳곳을 1박 2일 여행하며,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과감히 보여준다. 국민은 그런 장면을 바라보며 광적으로 환호한다. 시청자는 가보지 못한 오지를 함께 떠난 듯 대리만족하기도 하고, 그들처럼 '따라 하기'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사람들은 왜 그토록 거칢을 좋아하는 것인가. 한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절제와 겸양을 미덕으로 삼은 나라이다. 나 또한 가족을 위한 삶을 사는 것이 당연함이라 알고, 내 소소한 감정을 숨겼다. 진정 나에게 소중한 것은 나 자신이란 걸 모르고 지냈다. 마치 기다림과 끈기가 미덕인 양 감정의 억눌림의 반복은, 내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은 열망으로 결국, 거칠고 길들지 않은 걸 좋아하는 상태로 표현된 것은 아닐까.

디지털 시대의 감각과 박자는 한없이 빨라지고 있다. 우리는 인터넷, 트위터나 페이스북, 휴대전화로 누군가와 끊임없이 접속을 시도한다. 그 자리에서 바로 의미가 전달되고 교환되는 소통 방식을 원한다. 에둘러 말하지 않고 '돌직구' 화법을 좋아한다. 이성보다는 감정과 본능에 따라 자신의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시간을 가리지 않고 접속은 이루어지고, 우리에겐 외로울 틈조차 없다. 그러니 은근한 내포나 은유란 비유는 책 속의 문학 형태로만 남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선지 요즘 가족 단위의 캠핑, 자전거 타기, 산행과 걷기가 열풍이다. 주말이면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이 많다. 떠나지 않으면 몸살이 도지는 사람들. 하루를 살더라도 즐겁게 보내길 원하며 소소한 불편을 애써 즐기는 사람들. 이 모두가 원시적 생명력을 얻고 싶은 간곡한 표현이다. 아니 자신이 살아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은 몸부림의 증거가 아닐까.

가끔은 일상에서 벗어나 '무소속의 시간'에 머물 필요가 있다. 전자문명이 만든 네트워크에서 벗어나 잃어버린 고독의 시간을 찾아야 한다. 나 또한 가슴이 답답해지면 아무 생각 없이 무작정 걷기를 시도한다. 걷기는 나의 원래 모습을 복원하기 위한 과정이다. 지인은 내가 걷고 있을 때가 어느 때보다 눈동자가 반짝이며 생기가 넘친단다. 내가 생각하는 나다운 나도 생기가 넘치는 모습이다. 숲길을 걷는 나의 두 발은 춤을 추듯 4분의 2박자 경쾌한 리듬을 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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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