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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고구마를 드신다. 고구마를 크게 한 입 베어 물고 아주 맛있게 드시더니 다 넘기기도 전에 고구마가 또 입으로 들어간다. 달달한 호박 고구마가 어머니 입에도 꿀맛인가 보다.

고구마도 유행을 타는지 요즘은 밤고구마와 호박고구마, 자색고구마 등, 고구마 종류도 여러 가지다. 고구마 농사가 잘되었다고 지인이 보내온 호박고구마를 밥 지을 때 넣어 먹었더니 별미다.

어린 시절, 고구마는 어머니였다. 육남매가 뛰어놀다 배가 고프면 부엌에서 고구마를 주워 날랐다. 아침밥을 지었던 밥솥의 열기에 고구마는 늘 따뜻하고 달콤했다. 마치 어머니 젖무덤처럼 말랑말랑한 고구마를 한입 베어 물면 포실하고 달착지근한 맛이 혀에 와 착착 감겼다. 유난스럽게 밥투정을 하던 막내도 숟가락으로 고구마의 부드러운 속살을 파내주면 오물거리며 잘 먹었다. 그만큼 고구마는 최고의 간식이었다. 쪄먹고 깎아 먹고 밤이 긴 겨울날 화롯불에 구워먹는 고구마는 육 남매의 궁금한 입을 다물게 했다.

박종희 약력

△2000년 월간문학세계 수필 신인상으로 등단

△제3회 서울시음식문화개선 수필공모전 대상

△제5회 올해의 여성문학상 수상 등 다수

△ 저서 '나와 너의 울림' '가리개'

△ 충북여성문인협회, 충북수필문학회, 한국산문작가협회 회원, 한국작가회의충북지회 사무국장

△1인1책 펴내기 지도강사
ⓒ 박종희
고구마를 좋아해서인지 결혼하고 입덧이 심할 때에도 고구마가 먹고 싶었다. 그때가 6월 초순이었는데 군고구마를 파는 곳이 있을 리 만무했다. 요즘 같으면 돈만 있으면 1년 내내 고구마를 먹을 수 있지만, 25년 전인 그 시절만 해도 저장해둔 것이 떨어지면 고구마 먹기가 쉽지 않았다. 더구나 5월이면 고구마를 심을 때이니 농사짓는 고모님 댁에도 없다고 했다.

남편이 고구마를 사러 시장을 샅샅이 헤집고 다녀도 없다고 했는데 어디서 구했는지 친정어머니가 고구마 한소쿠리를 가지고 오셨다. 음식냄새를 못 맡아 냉장고며 쌀통까지 모두 테이프를 붙여놓고 살았는데, 이상하게도 친정어머니가 가져온 고구마는 게눈 감치듯 먹어치웠다.

물만 먹어도 다 토해내고 병원 신세를 지던 사람이 허겁지겁 고구마를 먹는 것을 본 남편은 그날처럼 내가 무엇을 맛있게 또, 많이 먹는 것을 이제껏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렇게 고구마를 먹어서인지 딸애도 고구마를 좋아한다. 덕분에 겨울이 되면 남편은 군고구마 배달꾼이 된다.

퇴근길에 남편이 사온 군고구마를 밥 대신 먹으면 남편은 그렇게 자주 먹는데 질리지도 않느냐고 한다. 어머니도 어려운 시절을 고구마로 연명하며 사셨던 기억 때문인지 평소에 고구마를 드시지 않았다. 딸애와 내가 고구마를 먹으면 어머니는 쳐다보지도 않으셨다.

신혼 시절 갑작스러운 아버님의 실직으로 고구마로 끼니를 때운 탓도 있지만, 어머니는 고구마를 드시고 급체해 탈이 나신 적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어머니한테 고구마는 기억하기도 싫은 것이 되고 말았다.

"굶어 죽더라도 고구마는 안 먹으련다."라고 하시던 어머니가 오늘도 호박 고구마를 아주 달게 드신다. 샛노랗게 잘 익은 고구마에서 금방이라도 엿물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아 내 입에도 침이 고인다. 자칫 급하게 드시다 탈이라도 날까 싶어 조금씩 떼어서 먹여드리니 어머니는 어린 새처럼 잘도 받아 드신다.

어머니는 그새 고구마에 대한 기억을 다 잊으신 걸까? 여든이 넘으신 어머니는 벌써 7년째 노인병원에 누워계신다. 노환으로 혼자서는 숟가락질도 어렵다. 집에 계실 때에 고구마는 보기도 싫다고 하셨던 분이 호박 고구마를 맛있게 드시는 것을 보니 어머니보다 내가 더 목이 멘다. 치매는 최근의 일은 기억하지 못하고 오래전 일은 기억하신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어머니의 기억은 교직에 계시던 아버지와 학교 관사에서 사시던 때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늙으면 아이가 된다더니 어린아이처럼 턱받이를 하고 앉아 고구마를 받아 드시는 어머니를 보면 가슴이 아프다.

고구마를 먹을 때면 어머니가 생각난다. 그것은 어머니의 조용하고 따뜻한 성품과 고구마가 닮아있기 때문이리라. 자식들에겐 무엇이든 아낌없이 다 내어주어 앙상하게 뼈만 남은 어머니처럼 고구마도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다. 잎과 줄기, 뿌리는 물론이고 껍질에도 미네랄이 많아 항암효과에 좋다고 한다.

그렇게 몸에 좋은 고구마가 어머니처럼 따뜻한 성질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예전에는 왜 몰랐을까? 가난하고 힘겹던 시절 당신의 뼛속에 바람 드는 것도 모르고 무엇이든 자식 입에 넣어주신 어머니께 이제는 내가 어머니의 고구마가 되어 드리리라 마음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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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