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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디를 가든 장사가 안 된다고 야단들이다. 재래시장은 더욱 그렇다. 재래시장은 춥고 불편하다. 손에 주저리주저리 물건을 들고 다니면서 구매해야 한다. 또 대형할인점보다 진열해 놓은 물건도 볼품이 적다.

나는 설 전 아내에게 제사용품을 육거리 재래시장에 가서 사면 더 싸다고 했다. 아내는 망설이는 눈치더니 마지못해 그곳에 가서 제사용품을 사온 것 같다. 우리 한 사람이 재래시장을 이용한다고 얼마나 도움이 되겠는가만 그래도 그렇게라도 하면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대형할인점에 가면 실내이니 우선 따뜻하다. 쇼핑카를 끌고 다니면서 필요한 물건을 사서 넣으면 들고 다니는 것보다 훨씬 편하다. 물건도 깔끔하게 다듬어서 진열해 놓은 것이니 집에 돌아가서 지저분하게 손질할 필요도 거의 없다. 다만 조금 비싸다는 게 흠이라고 할 수 있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돈 몇 푼 때문에 불편을 감수하지 않는다. 가격보다는 우선 보기 좋고 편리하면 그만이니 그것만으로도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계산법이다. 대형할인점에는 정이란 게 없다. 가격도 깎아주지 않는다. 가격표에 적힌 금액 그대로 다 주어야 한다. 덤이라는 것도 없다. 그곳에서 물건 판매하는 사람들은 주인 아닌 종업원이니 마음대로 깎아 줄 수도, 덤으로 한 개 더 줄 수도 없는 형편이다. 다만 연세 드신 분들이 깎아 달라거나 덤을 달라고 하면 마음만 괴로워할 뿐이다.

박순철 약력

충북 괴산 출생
동양문학 신인상 당선(1990년)
월간『수필문학』천료(1994년)
한국문인협회, 충북수필문학회 회원
수필문학충북작가회장,
충북수필문학회부회장 역임
한국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충북수필문학상 수상 (2004년)외 다수
수필집『달팽이의 외출』『예일대 친구』

조금 불편하긴 해도 재래시장에 가면 가슴으로 흐르는 정을 느낄 수 있다. 길거리에 파 한 단, 콩나물 한 시루, 마늘 한 무더기를 놓고 앉아있는 어르신들, 북풍한설을 막아내려 겹겹이 두른 목도리 속에 살짝 드러난 깊게 파인 주름살, 꾹 눌러쓴 방한모 밑에 삐쭉이 고개 내민 듬성듬성한 백발, 겹겹이 입은 옷차림 속에 녹아있는 따뜻한 정을 말이다.

재래시장에서 물건 파는 분들을 보면 대게 연세가 지긋하다. 나는 그분들을 보면서 딱하다는 연민의 정을 느낀 일이 있는데 잘못 생각하는 것이란다. 추위에 떨며 그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될 분들이 많다는 게다. 집에서 손자 손녀의 재롱을 받으며 편하게 여생을 보내도 될 분들이란다. 그렇게 벌어서 자식들 대학교육까지 하였고, 젊어서부터 근검절약 정신이 몸에 밴 분들이니 몸을 가꿀 줄도 좋은 옷을 입고 놀러다니는 것도 달가워하지 않는 분들이란다. 물론 사정이 어려워 노점상을 하는 예도 있겠으나 그리 많지는 않으리라.

입춘도 지나고 새해가 시작되었으니 이제 동장군이 물러갈 만도 한데 여전히 매서운 칼날을 휘두르고 있다. 서민들의 삶이 지치고 팍팍할 때 날씨라도 도와주면 얼마나 좋을까만 도와주기는커녕 추위까지 한 몫 더하고 있으니 어렵기만 하다. 날씨가 어서 풀렸으면 좋겠다. 서민들이 어깨를 펴고 살아갈 수 있게 말이다. 하지만 꽁꽁 얼어붙은 경제는 나아질 줄을 모른다.

얼마 전에 육거리 어느 식당에서 허물없이 지내는 친구들과 저녁 모임을 한 일이 있었다. 전 같으면 손님이 절반쯤은 들어차 있을 시간이다. 그날은 명절을 코앞에 두고 있어서이기도 했겠지만, 우리가 저녁 먹고 일어설 때까지 다른 손님은 들어오지 않았다. 넓은 홀을 우리가 독차지한 것 같아 주인에게 미안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우리의 잘못도, 주인의 잘못도 아니다.

그 날 만난 친구들이 입고 있는 겉옷이 한결같이 유명업체 옷이었다. 친구들의 옷과 내 옷이 비교되었다. 다음 순간 나도 별수 없는 속물인간이구나 하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재래시장에서 산 옷을 입고 다니는 게 창피할 일이 아닐진대 그것을 비교하고 있다니. 나는 옷도 많지 않지만 주로 싼 옷을 사 입기에 자세히 보지 않아도 표가 난다. 친구들도 집에서는 아무 옷이나 입고 일상생활을 한다며 값싼 옷이면 어떠냐는 듯 빙그레 웃는다. 질기고 따뜻하면 그보다 더 좋은 게 없을 것 같은데 지금은 유명업체 옷을 선호하는 세상이니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아내와 아이들은 좋은 옷을 사 입으라고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 우선 유명업체 제품과 비교하면 가격차이가 무척 많이 난다. 유명업체 재킷 하나 살 돈이면 바지에 등산화 까지 사고도 남는다. 그렇다고 유명업체 제품을 입으면 두 시간 걸려서 올라갈 산을 한 시간에 올라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또 그만큼 힘이 덜 든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비싼 옷을 입어서 인물이 돋보인다면 한번 생각해 볼 일이나 내 못생긴 얼굴이 겉옷만 근사하게 입었다고 달라질리 만무하다.

신문지에 끼워서 온 광고 전단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모월 모일 요즘 잘 나가는 유명업체 제품을 세일 한다는 내용이다. 그중에는 내가 사고 싶었던 등산복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세일 한다는 날, 일찌감치 친구랑 그 매장을 찾아갔다. 소문을 듣고 달려온 사람들로 대성황이었다. 광고전단에 적힌 금액을 믿은 내가 잘못이었다. 눈에 띄는 옷은 일반매장이나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매장을 들어설 때와는 달리 허탈하기만 내 마음은 어느새 재래시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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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