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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여, 남녘에 홍매화가 피었다고 합니다. 여기는 아직 지루한 겨울인데, 봄꽃을 피웠다고 하니 엉덩이가 절로 들썩거려요. 그곳은 머나먼 거리인지라 혼자는 엄두를 못 내고, 그저 그리움에 목을 메인 게 몇 날 며칠인가요. 차일피일 미루다가 불혹을 훌쩍 넘겨버렸지요. 일만 하다가 나이만 먹어버렸다고 중얼거리는 나를 본 남편은 미안한지 떠날 채비를 서두르라고 합니다.

간절히 바라면, 소원이 이루어지나 봅니다. 통도사 홍매화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직접 보고 싶었지요. 우리나라 삼보사찰(三寶寺刹)의 으뜸인 불보사찰답게 입구부터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굵기가 제법 굵은 소나무들의 무희를 즐깁니다. 차창을 여니 공기부터 다르더군요. 솔향기를 마음껏 마시며 계곡을 따라 산사로 오릅니다.

주차장에 내리니 계곡 가까이의 허리 굽은 소나무가 눈에 듭니다. 나무껍질은 꼭 거북이 등처럼 마름모꼴로 진하게 그려졌더군요. 아마도 사람으로 치면 빼어난 선남선녀일 텐데, 왜 하필 주차장 구석에 자리했는지 모를 일입니다. 이 자리는 예전에 주차장 자리가 아니었을 겁니다. 다가가 나무의 등을 가만히 쓸어줍니다. 나무는 쉽사리 나의 발걸음을 붙잡고 놓아주질 않습니다.

주변 풍경을 살피며 계곡을 따라 오릅니다. 새로 놓인 듯한 다리 위에는 머리가 반백인 할머니가 봄나물을 팔고 있습니다. 봄나물이 탐나지만 내려오면서 사겠다고 말하고, 다리를 건너는데 새로운 걸 발견합니다. 다리 위를 대각선으로 할머니를 가리키는 듯 길게 허리 굽은 고목이 인상적입니다. 나무는 검버섯 핀 노인처럼 줄기에 흰 반점이 덕지덕지 피었습니다. 그 나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는 봄이 무르익어야 알 듯싶어요. 초췌한 할머니의 행색과 추레한 고목의 모습이 너무나 비슷하여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이은희 약력

충북 청주출생

2004년 월간문학 등단

제7회 동서커피문학상 대상 수상, 제13회 제물포수필문학상 수상, 제17회 충북수필문학상 수상, 제17회 신곡문학상 본상 수상 외 다수

저서로 '검댕이', '망새', '버선코', '생각이 돌다' 수필집 출간

한국문인협회, 계간 에세이포레 편집위원, 충북수필문학회 주간, 청주문인협회, 충북여성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

(주)대원 상무이사로 재직 중
저만치서 남편이 어서 오라고 손짓합니다. 홍매화를 보러 온 사람이 오래된 나무 앞에서 해찰을 부리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내 머릿속엔 주차장에서 본 소나무와 다리 위에서 본 고목들이 따라옵니다. 조금 더 올라가니 한 아름 되는 나무의 중앙이 뻥 뚫린 고목을 보고 더욱 놀랍니다. 벌레나 곤충, 새들의 보금자리를 써도 남을 큰 공간이지요. 이렇듯 큰 상처로 나무가 패일 때는 아마도 어마어마한 사건이 일어났을 겁니다.

통도사가 신라 시대에 창건되었다니 나무는 더 이전에 자리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한 자리에서 천 년을 하루같이 살아온 나무가 사찰 오르는 길에 즐비했지요. 어느새 홍매화는 뒷전이고 나무 곁에 붙어 그의 역사를 알고 싶었고, 그의 마음을 헤아리고 싶어 안달했답니다.

하지만 지레 남편의 눈치가 보여 내려올 때 다시 보자고 위안하며 빠른 걸음으로 사찰로 들어섭니다. 매화나무를 보니 취재전쟁을 방불케 하는 광경입니다. 홍매화 한 그루에 고가의 카메라를 들고 수많은 사람이 매미처럼 매달려 있어요. 나도 그 대열에 끼고 싶었지만 엄두가 나질 않았죠. 아니 벌써 물렸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나의 호기심은 이미 오래된 나무에 빼앗겼으니까요.

사찰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오래된 멋스러움이 느껴지는 건축물이 많습니다. 내로라하는 국보와 보물급 문화재들, 통도사 일원이 박물관인 셈이죠. 이런 멋스러움은 사람의 손으로 만들 수 없는 세월의 힘이죠. 나무 또한 마찬가지인 듯싶어요. 통도사 오르는 길에는 못생긴 나무들이 많습니다. 대부분 잘생기지 않아 사람의 시선은 받지 못하지만, 그들이 있어 이 사찰은 더욱 멋스러울 겁니다.

고목은 통도사가 생기기 이전부터 자리하여 현재까지 이곳의 역사를 꿰고 있었을 겁니다. 인산인해를 이루는 지금의 풍경도 예감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요. 누가 뭐래도 오래된 나무들은 이곳의 터줏대감이지요. 온갖 풍파에 자신의 몸이 패이고 상처를 입었지만,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있는 나무들이 숭고하기까지 합니다.

그대여, 기와지붕에 얹힌 홍매화가 한 폭의 수묵화처럼 아름답지만, 나는 고목의 고졸한 멋이 참 좋습니다. 따스한 봄날의 나목으로 서 있는 그들은 또 다른 수행자입니다. 그의 시선으로 하늘을 우러러봅니다. 사찰을 지은 선인은 온데간데없지만, 부디 나무는 오래오래 푸른 잎 무성히 달아 터주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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