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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결인지 생시인지 장대비가 쏟아지는 요란한 빗소리에 놀라 단잠을 깼다. 새벽 3시가 넘어가고 있다. 창밖을 내다보니 어둠 속 희미한 가로등 불빛 아래 빗줄기는 보이지 않고 하늘에서 마치 폭포수처럼 내리붓는다.

가을장마란 말이 낯설기만 했는데 지금 나는 정말 실감 나는 가을장마를 바라보고 있다. 비가 오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물 폭탄이다. 가을장마는 그렇게 떼를 지어 이곳저곳으로 옮기며 비를 쏟아 붓는 것이 특징이란다. 어제저녁에는 아파트 관리실에서 매봉산 아래쪽에 있는 차들을 모두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했다. 산사태를 우려한 조치였다. 가을장마란 놈이 이렇게 무서운 줄은 몰랐다.

어느 해인가 괌, 사이판을 갔을 때 처음으로 이런 비를 경험했다. 세차고 줄기찬 빗줄기를 처음 경험할 때, 역시 미국령은 우리 작은 나라와는 달리 빗줄기도 굵고 크다고 느껴졌다. 그렇게 갑자기 폭포수처럼 내리다가 삼사 십 분 정도 내리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따가운 햇볕이 내리쪼여 밖을 나갈 수가 없도록 뜨거운 태양열을 경험했다. 그 나라 사람들은 우리의 여름 장마처럼, 그곳 날씨에 익숙하게 생활하는 것을 보며 역시 우리나라의 기후가 최고라는 생각을 했다.

김정자 약력

청주 출생

『한국수필』등단

청주시문화공로상, 법무부 전국교정수기공모전 최우수상, 청주예술공로상, 홍은문학상, 충북수필문학상 수상

한국수필작가회, 충북수필문학회, 청주문인협회 회원, 충북여성문인협회 회장역임

수필집『세월 속에 묻어난 향기』,『어느 해 겨울』, 『41인 명작품 선집』

메일 주소: albina0604@hanmail.net
ⓒ 김정자
가을비는 시원한 바람과 함께 오는 것이 아닐까? 가을에 내리는 비는 바람에 잎사귀들이 부딪혀 싱그러운 소리로 들리는 것이기도 하거늘, 지금 내리는 빗소리는 마치 깊은 산골에서 들려오는 듯 금방 멈출 비가 아니니 무섭기까지 하다. 하늘이 하는 일을 어느 누가 막을 수가 있으랴.

지금 들판에선 햇살을 기다리는 농부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구 쏟아 붓는 가을장마는 아무런 도움이 될 것이 없다. 저들은 지난해 여름 내내 100년 만에 찾아온 가뭄에도 목이 탔다. 가뭄 끝에 찾아온 벨라벤, 덴버 등 몇 번의 큰 태풍까지 닥쳐 과일 농사마저 낙과가 수북하게 쌓인 모습을 바라보며 한숨짓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나마 살려놓은 오곡이 무르익어야 할 때 가을장마로 또다시 수난을 고스란히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저 처절하게 하늘만 쳐다보는 농부들의 모습이 안쓰럽다. 숫제 도시인임이 미안한 마음에 절로 고개가 숙어진다.

며칠 전에는 남편의 생일을 계기로 태안 황도에 있는 펜션에 온 가족이 모이기로 하였다. 일기예보는 들었지만, 요행을 바라면서 떠났는데, 우려했던 세찬 장대비로 앞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 부부는 큰아들 식구와 한 차에 탔다. 빗줄기가 굵어지며 도로가 마치 개울 한복판에 차가 달리는, 뉴스에서나 보던 위험한 광경에 이르렀다. 내 생애 처음으로 겪는 일이라 무서워 한쪽 옆에 세울 수 있는 공간만 나오기를 바랄 뿐이었다. 죽을 고비에 닥치는 어려운 지경에 놓이게 되었지 싶었다. 그 몇 분간에 만감이 교차하였다. 오로지 두 손 모아 기도하며 숨도 크게 쉬지 못하였다. 이번 행사를 계획한 일을 얼마나 후회를 했는지 모른다. 마침 적당한 공간에 쉬며 큰아들은 숫제 핸들에 얼굴을 묻고 한참 마음을 진정시킨다. 생각해보니 공포의 10여 분이 악몽과도 같았다. 우리 부부야 살 만큼 살았지만, 손자들과 아들 내외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길 뻔했던 순간을 생각하니 가슴을 치도록 후회막급이었다. 딸네와 막내아들네 안위도 궁금하여 내내 노심초사였다.

천만다행으로 만나기로 한 펜션에 저녁 늦게야 모든 식구가 무사히 도착하였다. 그러나 모두 초주검되어 마치 이산가족을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고속도로 빗속에서의 위험했던 순간에 관한 이야기로 그 밤을 지새웠다.

가을장마란 해마다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태풍과 연결되면 수확기를 앞둔 농업에 커다란 피해를 주기도 한다. 근년에는 1984년 8월 말 중부지방과 서울에 큰 홍수 피해를 가져온 가을장마가 대표적인 예로 기록되어 있다.

추석을 앞두고 들판은 황금 빛깔로 채워져야 한다. 애타는 가뭄으로 혹은 장마로 햇살을 충분히 받지 못한 곡식들이 그나마 일 년의 결실이 알차게 여물어야 할 텐데…. 그러기에 농부만이 아니라 온 국민이 하늘을 바라보며 두 손 모아 자양분의 햇살을 갈구한다. 내년의 농사를 위한 튼실한 씨앗이라도 거두어야 할 소망으로 하늘을 향해 너나없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야겠다.

부디 이 비가 그치고 농민들의 소망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머지않아 풀벌레 소리로 세상에 연주회가 열릴 것이다. 해마다 이때쯤이면 언제나 그랬듯이 내 삶에 대하여도 깊은 생각을 하게 된다. 허전한 마음을 달랠 수 없는 외로움으로 가슴이 서늘해진다.

지난여름 내 나는 정성과 집중력을 기울이는 삶을 살지 못했다. 무덥다는 이유로 거실에서 빈둥대며 TV 운동경기에 푹 빠져 희비에 엇갈리는 그런 시간만 즐겼다. 그러면서 나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실속 없이 지냈다. 나 자신은 잘 여물지 못한 곡식처럼 쭉정이만 남아있다. 굳이 핑계를 댄다면, 극심한 가뭄에 유례없는 불볕더위와 폭우까지 변화무쌍한 날씨 때문이라고 해볼까· 결국, 실속 없는 여름 한 계절을 허비하였으니 세찬 가을장마 소리를 들으며 후회가 치밀어 오른다.

이제 이 가을장마가 그치면 노랗게 피어나는 아름다운 국화를 볼 수 있으리라. 가을비를 흠뻑 맞은 노란 국화는 자신의 자태를 한껏 자랑할 것이다. 어디 국화뿐이랴. 저마다 자신의 자리에서 가을날 하루하루에 충실한 가을꽃의 잔치가 열리게 된다. 자연은 늘 그렇게 나에게 교훈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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