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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꽤 부는 날이야. 비를 예보했지만, 난 아랑곳없이 산중으로 느리게 걸어 들어갔지. 산길로 들어서니 나무들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온몸을 흔들고 있었어. 아니 흔든다는 표현보단 마치 몸부림을 치는 것 같았어. 그 몸짓에 땅이 흔들리는 느낌마저 들었지. 그렇게 나무에서 떨어진 잎들은 공중을 휘돌다 산길 위로 마구 흩어졌어.

나는 그 찰나의 풍경을 놓치고 싶지 않았지. 바람 탓에 옷을 훨훨 벗는 나무야 어떻든, 두 눈을 꼭 감고 볼을 스치는 바람을 느끼고 싶었어. 그런데 바람의 결을 느끼며 더불어 나뭇잎의 제 살 부딪는 소리가 귓전을 울리는 거야. 허공을 맴돌며 잎들이 부딪는 울림, 오랜만에 듣는 좋은 선율이야. 나무마다 음색이 다른 소리를 들려주지. 그중에 솔잎과 참나무 잎 떨어지는 소리가 좋았어.

이은희 약력

충북 청주출생, 충북대학교 경영대학원졸업,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학과 졸업. 2004년 월간문학 등단, 2004년 제7회 동서커피문학상 대상 수상, 2007년 제13회 제물포수필문학상 수상, 2010년 제17회 충북수필문학상 수상. 2012년 제17회 신곡문학상 본상 수상 외 다수. 저서로,『검댕이』,『망새』,『버선코』,『생각이 돌다』수필집 출간. 한국문인협회, 계간 에세이포레 편집위원, 충북수필문학회 주간, 청주문인협회, 충북여성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 (주)대원 상무이사로 재직 중.

나뭇잎이 들려주는 선율도 좋지만, 오늘은 참나무의 마른 잎 향이 좋은 날이야. 참나무 수종은 잎을 구별하기 쉽지 않아. 잎자루가 있는 졸참나무, 갈참나무와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그리고 잎자루가 없는 손바닥 크기의 신갈나무와 예전에 떡을 쌌다는 떡갈나무 잎이야. 산길을 덮은 참나뭇과 가랑잎 향기는 나의 오감을 자극하여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커피를 연상케 했어. 오늘 같은 날 마시는 커피는 속된 말로 끝내주는 맛이야. 문득 스치는 생각이 어떤 면에선 가랑잎과 원두커피는 닮은 점이 많아.

그 하나가 일생을 뜨겁게 살다가 떠나간다는 점이야. 나무의 부산물이라 부르는 가랑잎과 열매인 원두는 일생을 살다간 증거이자 흔적이지. 둘은 봄날에 싱그럽게 태어나 뙤약볕 열기와 모진 비바람을 감내하고 마침내 몸체에서 떨어지지. 아니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오늘처럼 강바람 부는 날 갈잎처럼 목숨을 내놓기도 해.


커피나무 열매인 원두는 잘게 빻아 가루상태의 '커피'란 이름으로 인간에게 헌신 공양하지. 갈잎 또한 스산한 날 바람 따라 바닥을 나뒹굴다 대부분 쓰레기로 내몰리기도 해. 그러나 누군가의 발치에 떨어져 거름이란 이름으로 거룩한 죽음을 맞이하면 그나마 과분한 일인가. 어쩌다 로맨티시스트를 만나 자신의 몸을 불살라 따스한 기운을 인간에게 기꺼이 바치고 연기처럼 사라지기도 해. 나는 마지막 행위인 갈잎이 재를 남기며 타들어 가는 순간 대기 중에 퍼지는 향기를 좋아하거든.

그래, 갈잎과 원두는 마지막 순간에 내뿜는 향이 비슷한 것 같아. 구수하고 쌉싸래한 향기가 인간의 감성을 무한 자극하고 자주 찾게 하는 기운이 있어. 내가 아침마다 커피를 찾는 이유는 그와 별반 다르지 않을 거야. 원두 향이 그리워서지 무엇보다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무언가 잃어버린 듯 왠지 허전하거든. 창밖에 눈송이가 흩날리거나 비가 내리는 날은 어김없이 찾게 돼.

아마도 그 향을 잊을 수가 없어서일 거야. 내가 자주 가랑잎이 수북이 쌓인 산길을 걷는 이유 중 하나가 갈잎 향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은 것처럼. 이즈음 플라타너스 가로수 길이나 활엽수가 많은 산길을 걷다 보면, 몸 안에 닫혔던 감각이 열리는 느낌이야. 가랑잎은 나처럼 메마른 감성의 소유자에게 좋은 느낌을 선물하지. 주위에 자연의 멋진 선물을 모르고 살아가는 이방인이 많다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찌 보면, 둘은 인간을 감성주의자로 변화시키기도 해. 갈잎과 원두커피를 떠올리면, 왠지 쓸쓸한 느낌이 들어. 어느 날 갑자기 떨어져 바닥을 뒹구는 마른 잎이 그렇고, 스산한 날 찾게 되는 원두커피도 그래. 구르몽의 시구처럼, 우리도 언젠가는 마른 잎처럼 덧없이 사라진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인가. 어쨌든 내 마음에서 쓸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

이제 나뭇잎들이 이별을 고하는 느낌이야. 둘은 삶의 종점에서 자신을 불살라 인간의 가슴을 뜨겁게 덥히고 떠나고 있어. 결국, 인간에게 좋은 일만 한 격이야. 나도 그들이 남긴 고유의 향기처럼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남길 수 있을까.

아마도 이 물음은 남은 산길을 걸으며 계속될 거야. 가랑잎끼리 부딪는 선율과 그들이 보내는 향기에 매혹되어 나의 존재를 잊지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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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