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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봄 집 근처 공원을 지나다 모과꽃을 처음 보았다. 모과 열매는 많이 보았지만, 꽃이 핀다는 생각은 미처 못했나 보다. 혹시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더라도 알지 못하고 무심히 스쳤을지도 모른다. 그날도 '모과나무'라는 이름표가 없었다면 못난이 열매가 달릴 모과나무 꽃이라고는 어디 상상이나 하겠는가.

첫날엔, 모과나무 초록 잎 사이마다 분홍빛 꽃봉오리만 나선 모양으로 꽁꽁 쌓여 있어 뽀송뽀송한 앙증맞은 아기 같았다. 얼마 후 다시 찾아가 보니 세상에, 싱싱한 잎과 함께 활짝 핀 모과꽃은 탄성이 절로 쏟아지게 했다.

연분홍 작은 꽃잎은, 참하고 귀엽고 청순한 소녀처럼 풋풋했다. 아니, 어찌 보면 기품 있고 우아하고 단아해 보이기도 했다. 한참을 보아도 그 묘한 화사함은 다른 꽃과는 달리 시선을 떼지 못하게 하는 이상한 끌림이 있었다. 더 머물고 싶은 잔잔한 감동을 꽃에서 느꼈던 건 흔치 않은 경험이었다.

모과꽃은 많은 꽃을 피우지 않고 열매가 달릴 만큼 필요한 곳에만 꽃을 피우는 모양이다. 드문드문 여백이 있는 꽃 피움이 더 고와 보였다. 어떤 꽃은 잎사귀에 쌓여서, 어떤 꽃은 가지에 붙어서 눈에 보일 듯 말 듯 수줍게 피운다. 그런 여림 때문인지 살짝 연민의 마음도 일게 한다.

임정숙 약력

△한국문인협회·충북수필문학회 회원, 수필샘 동인

△청주문인협회·충북수필문학회 총무 역임

△청주·청원 1인1책 펴내기 운동 팀장

△저서 수필집'흔드는 것은 바람이다'(2009년)

△문학공간 수필부문 신인상. 2007청주예술공로상 수상
ⓒ 임정숙
그러고 보니 모과꽃은 참 조용한 꽃이다. 모과나무로 관심을 받을 때는 크고 울퉁불퉁한 열매가 노랗게 익어가는 가을이 아니던가. 하지만 모과꽃은 피는 동안 애써 누군가의 눈에 띄려 하지 않는다. 화려하지 않아도 은근한 빛깔을 내며 그 자리에서 진중할 뿐이다.

꽃이 피기를 마치 보란 듯이 큰 봉오리로 있다가 가장 환한 눈부심으로 만개하는 목련이 있다. 호사스러움이 돋보이는 존재감이지만 한순간 꽃잎이 지는 날엔 바닥에 남긴 그 질펀한 흔적은 민망할 만큼 초라하다. 어쩌다 자기만족으로 산 함량 미달의 삶과 다를 바 없는 것처럼 말이다.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산수유 꽃은 제일 먼저 샛노랗게 피기에 눈에 가장 잘 띄기도 한다. 벚꽃은 화려하다. 잎보다 꽃을 먼저 피우기에 오로지 꽃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어느새 라일락은 진한 향기로 유혹이다.

그렇듯이 모과꽃은 다른 꽃에 비하면 그 색감조차 편안함을 주기도 하지만, 지나치게 자신을 내세우지도, 채우지도, 튀지도 않는다. 그러니 모과 열매도 가장 자연에 가까운 편안한 생김인가 보다.

사실은 조금만 가까이 가면 모과나무는 금방 찾기도 어렵지 않다. 모과나무 껍질은 얼룩과 반점과 혹 같은 것이 아무렇게나 무늬가 있어 자연을 닮은 멋 그대로이다. 한 번 보면 쉽게 잊히지 않는 독특한 나무이다. 오래도록 바라보아도 물리지 않는다.

나도 평소 모과꽃 같은 존재였음 좋겠다. 의미 없이 나서지 않는 소박한 아름다움 잘 간직한 채 사람들과 인연이 진정성 있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세상살이가 늘 원만할 순 없다. 돌풍이 불기도 하지. 그런 날은 누군가의 원인이 문제라기보다 내가 작은 소리로 말하지 못한, 아니 차라리 침묵하지 못한 것에 대한 씁쓸함이 더 크다.

나는 부풀려진 존재로 기억되고 싶진 않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모습조차 지워지는 것도 결코 나의 바람은 아니다. 그냥 지금의 나이길 원한다. 삶은 수시로 우리를 저울에 단다. 기울며 늘 지혜를 시험하고자 한다.

내가 무언가에 난데없이 한 방 얻어맞은 날, 나만큼 아파할 이는 없음은 진즉 알면서도 나는 스스로 다스리지 못한 분노로 헛발질도 한다. 그게 살아있음의 증거이기도 하겠지만 그런다고 세상은 내 편으로 쉽게 얼굴을 바꾸는 건 아니다.

모과를 보고 세 번 놀란다는 말이 있다. '과일 전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는 속담처럼 처음엔 못생긴 모양에 놀라고, 좋은 향에 놀라고 마지막엔 떫은맛에 놀란다고 한다. 이제 보니 모과 꽃은 아름다운 향기를 과일에 양보한 모양이다. 모과의 진한 향기와 효능이 뛰어난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향이 좋아 방향제로 쓰이는데 한동안 나도 차에 모과를 싣고 다니면서 은은한 향이 코끝에 스칠 때마다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예로부터 모과는 꿀이나 설탕에 재워 차나 술로 즐기며 건강에도 많은 도움을 얻기도 한다. 또 푹 삶아 꿀에 담가서 삭인 모과수나 삶아 으깬 다음 꿀과 물을 넣어 조린 모과정과 등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이렇듯 다양하게 쓰이는 팔방미인이 모과인데, 외모로 평가한 건 모과의 자존심 문제이다.

요즘 모과나무는 어느새 꽃이 다 지고 푸른 잎만 가득하다. 유달리 연모했던 꽃이 보이지 않아도 그리 섭섭하진 않다. 시고 떫고 향기로운 것이 결국 인생임을 주먹만 한 크기로 다시 꽃 피울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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