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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월여 동안 숲 교육을 받게 된 동기생들과 어느덧 수료식을 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직장에서 퇴근 후 평일 저녁 늦도록 또는 주말까지 강행군이었던 빡빡한 수업은 꽤 벅찬 일정이었다.

돌아보면 지인의 지속적인 권유로 발을 딛긴 했지만, 수업료가 전혀 아깝지는 않았다. 그동안 내가 보이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었던 근시안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것만큼 큰 수확은 없었으니까.

처음에는 생소했던 숲의 생태계도, 다양한 나이와 계층의 사람과 만남도 모두 무표정이었다. 그러나 점점 양파 껍질처럼 벗겨지는 새로운 호기심과 설렘은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였다.

어느 분의 이야기처럼 그토록 아름답던 달나라가 그만 아폴로 11호 때문에 물도 없고 나무도 없고 토끼도 없는 삭막한 나라로 변해 참으로 슬펐지 않았나. 신기한 환상도 깨지고 추억도 잊히어진 기나긴 세월 동안, 상상 속의 존재로만 알았던 계수나무를 만나든 날 얼마나 놀랍고 행복했는지. 큰 키에 하트모양의 잎, 달콤한 솜사탕 향기까지 내뿜으며 홀딱 반하게 한 노랗게 단풍든 우아한 계수나무가 벌써 그리워지니 말이다.

사람과 계수나무의 진정한 존재처럼,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에 대한 발견만큼 우리에게 삶의 의욕을 충만케 해주는 건 없을 거다. 풋풋함이 솟는 이십 대 청년부터 깊고 너그러운 연륜의 칠십 세에 이르는 노년까지 강의실에서는 모두 평등한 학생이었다. 그래서 누군가의 조크가 한 번 던져지기 시작하면 여기저기 줄줄이 받아치고 이어지던 소소한 웃음꽃 만발은 늦은 수업시간의 피로를 잊게도 했다.

인생은 회자정리라 했거늘, 미운 정이든 고운 정이든 떠남의 순간은 또 애틋한 걸까. 늘 걸쭉한 입담으로, 때론 구수한 노래로 우리를 즐겁게 해주던 마음이 여린김 선생님은 끝내 눈물을 보였다. 더러는 각기 다른 개성의 사람들의 모임이니 불편한 일들이 왜 없겠느냐만.

임정숙 약력

△한국문인협회·충북수필문학회 회원, 수필샘 동인

△청주문인협회·충북수필문학회 총무 역임

△청주·청원 1인1책 펴내기 운동 팀장

△저서 수필집'흔드는 것은 바람이다'(2009년)

△문학공간 수필부문 신인상. 2007청주예술공로상 수상

△limjs60@hanmail.net

알고 보면 사람만이 아닌 이 우주, 숲의 생명도 서로 관계를 맺고 있었다. 나비와 나방의 애벌레들이 튼실하게 자라야만 많은 꽃들이 수정되고 생명이 이어져 간다 한다. 어느 생명에는 참 귀찮은 존재이지만 넓게 생각하면 다른 생명에는 큰 역할을 한다니 사람이든 식물이든 동물이든, 모두 공생한다는 건 참 소중한 일이다. 햇살이 따뜻한 겨울날 들길을 걷다 보면 반짝이며 흩날리는 박주가리 홀씨를 볼 수 있는데 열매를 터뜨리고 나온 씨앗들이 새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 바람 따라 낯선 곳으로 여행하게 된다. 누군가, 수료식 단체 사진을 찍기 위해 찰칵 셔터를 누르던 순간 박주가리 씨앗을 모두의 머리에 마구 날렸다. 다시 태어날 봄을 기다리며 비행하는 꿈을 끝내 버리지 말잔 약속인가.

겨울 바다로 떠난 졸업 여행은 과제와 시험으로 다소 어수선했던 마음에서 홀가분함도 있었다. 그러나 반면에 이제 공유할 수 있는 그 무언가를 잃은 허탈감에 싱싱한 회를 핑계로 우리는 술잔을 자주 부딪쳤는지도 모른다.

늘 강의실 정 중앙에 앉아 소리도 없이 왔다가 소리도 없이 사라지는 60대 초반의 남학생이 있었다. 큰 체구에 비해 곱상하고 흰 얼굴에 이따금 잔잔한 미소만 띠다 어떤 날은 수업시간 내내 졸기도 했다. 본인 말대로 너무 조용했던 탓에 거의 존재감 없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런 그가 조금은 발그레해진 얼굴로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 앉아 처음으로 입을 뗀 말에 내가 울컥했다.

작년에 직장에서 정년퇴임을 했는데 주변의 많은 사람이 욕심을 낼만한 일들을 권유했지만, 이제는 다 내려놓고 깃털처럼 가볍게 살고 싶다 한다. 평소 말수가 적었던 그의 '깃털처럼 가볍게'란 한마디가 나와 다른 의미일지라도 순간 가슴에 유독 꽂힌 건 왜인지. 허세 부리듯 씩씩한 척했지만, 그간 내가 진 인연의 짐들 때문에 많이 아팠던 것일까.

숲도 있고 강도 흐르고 사람도 함께 사는 세상이지만, 때론 그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은 채 허공의 새처럼 홀로 날고 싶을 때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그건 어쩌면 이렇게 함께 했던 사람들과의 끈끈했던 인연에서 비롯된 자만의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세상 만물의 꿈은 서로 공존하는 인연이 아니면 얻기 어려움을 더 깨닫게 된 건, 고마운 졸업선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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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