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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3.10.20 16:30:23
  • 최종수정2013.10.20 16:30:23
"분명 노래가 들렸었는디?"

먼저 전화를 건 친정어머니가 대뜸 혼잣말로 하신 말씀이다. 처음엔 무슨 뜻인지 이해가 안 되어 머뭇거리자 네 전화가 맞는 거냐며 의아한 듯 재차 물으셨다. 뒤늦게야 얼마 전 휴대폰을 바꾸고 나서 통화연결 음을 다시 설정해 놓지 않았음을 떠올렸다. 예전과 달리 단조로운 기계음만 들리자 어머니는 낯설었던 모양이다.

통화연결음 대신 대부분 젊은 사람들은 '컬러링'이란 말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통신사의 가입자가 원하는 음악이나 다양한 소리로 바꾸어 들려주는 통신부가 서비스로 전화를 건 발신자가 듣게 된다.

칠십이 넘은 어머니가 "그 전화 노래 듣기 좋던데. 살려놔라." 하시기에 파안대소했다. 아무래도 아버지보다는 어머니 감성 쪽을 내가 더 닮았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내 휴대폰 통화연결음은 주로 차분한 팝이다. 아무래도 팝송은 일단 가사 내용이 우리 가요처럼 직접 의미 전달이 확연하게 다가가지 않을 듯하여 부담이 덜하다. 또 상대방이 듣는 짧은 시간의 음악이다 보니 어쩐지 클래식은 좀 밋밋할 수 있고 가곡은 톤이 거해 보여 대부분 무난한 팝을 선택하는 편이다.

누군가를 만나기 전에 어떤 옷을 차려입을까 고민하는 것처럼 나는 휴대폰의 음악을 고를 때마다 다소 신경을 쓰는 편이다. 괜히 컬러링 가사 내용에도 선입견을 품는 이가 있겠다는 경험을 하고 나니 더욱 그렇다. 사소한 것 하나에도 이런저런 편견이 앞서는 사람들의 말 한마디가 때로는 고맙기도 하지만, 스스로 상처가 되는 부분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이 울적하던 시기, 외국에서의 오랜 생활로 영어가 유창한 한 지인에게서 국제 전화가 왔다. 내 반가움에는 아랑곳없이 무슨 전화를 금세 받느냐고 대뜸 핀잔이다. 다시 전화할 테니 받지 말고 기다려 보라 한다. 다짜고짜 그의 엉뚱함이 어리둥절했다. 그는 곧 휴대폰의 팝송이 참 마음에 든다며 한 번 더 들어야겠다고 해서야 이해가 되었다.

그런데 선율은 참 아름답지만 가사는 쓸쓸하니 밝은 곡이었음 좋겠다고 한다. 항상 환하게 유쾌한 환경을 만들고 긍정의 기를 받고 사는 게 왜 중요한지 장황하게 설명했다. 네가 늘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진심 어린 위안도 잊지 않았다. 그의 말도 일리가 없진 않았다. 아픈 기억을 훌훌 털고 가벼워지고 싶었다. 그래서 당장 억지로 웃어야 하는 부자연스런 얼굴 같았지만, 힘 있고 경쾌한 전진의 태세로 음악을 바꾸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빠르고 신 나는 음악이 거슬렸던지 절친한 문우가 이의를 제기했다. 너의 색깔이 아닌 듯하다, 어색하다며 당장 예전처럼 분위기 있는 곡으로 돌려놓으라며 어깃장을 부린다. 바뀐 이유를 말하니 우습다고 한다. 각자 사람만의 향기가 개성이 있는 법인데 쓸데없는 기우에 흔들리지 말고 너에게 느끼는 나의 사소한 행복 중의 하나를 빼앗지 말라는 경고이다.

최근에 공적인 일로 한 여자를 만나게 되었는데 첫인상이 쌀쌀맞아 내심 걱정스러웠다. 하긴 나도 상대방이 어떤 인상으로 평가하고 있을 지 의문이다. 어쨌든 서로 견제가 되는 처지이기도 해서 상당히 껄끄러운 자리로 생각되었다. 그러기에 처음부터 본연의 임무에만 충실하자는 태도로 일관했다.

그런데 업무를 끝내고 인사하며 일어서려는 순간 그녀가 가까이 다가와 생긋 웃는다. "저, 전화벨 소리 '빈센트' 그 곡 참 좋죠?"라고 갑자기 말을 건네었다. 당황스러워 "아, 네 반 고흐의 일생을 노래한 거지요." 하고 얼른 얼버무렸다. 그러자, 자신의 컬러링도 '빈센트'였는데 내 휴대폰에서 흘러나오는 똑같은 음악에 가슴이 뛰더란다. 그런 팝을 휴대폰 음악으로 만나는 건 흔치 않아서 나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며 반색을 한다. 좀 전의 팽팽했던 긴장감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우리는 저녁 식사까지 자연스레 이어지게 되었다.

세월 갈수록 조건과 위치보다는 서로의 마음 잘 통하는 친구가 더 그립다. 어쩌다 온기가 전혀 통하지 않는 이와 불가피하게 눈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만큼 또 곤욕스러운 건 없다.

오늘처럼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 저녁, 빈센트가 맺어준 친구에게 향하는 발걸음은 설렌다.

설명 길지 않아도 그 느낌 먼저 아니까.

임정숙 약력

△한국문인협회·충북수필문학회 회원, 수필샘 동인

△청주문인협회·충북수필문학회 총무 역임

△청주·청원 1인1책 펴내기 운동 팀장

△저서 수필집'흔드는 것은 바람이다'(2009년)

△문학공간 수필부문 신인상. 2007청주예술공로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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