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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2.07.08 14:19:16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분쇄기에 커피콩을 갈던 남편의 낯빛이 좋지 않다. 늘 하던 일인데 오늘따라 커피콩을 넣었다 꺼냈다 분쇄기 날을 뺐다 끼웠다 하는 등 몹시 분주해 보인다. 그냥 두었다가는 오늘 안에 커피 마시기 어려울 것 같아 가보니 커피콩이 문제였다.

이제껏 한쪽 면이 평평하여 플랫빈이라 불리는 원두커피를 마셨는데, 며칠 전에 지인이 선물로 준 피베리 커피는 완두콩처럼 동글동글한 커피였다. 분쇄기의 칼날을 평평한 생두가 갈리도록 조정해 두었는데 둥근 커피콩을 갈려니 갈아질 리가 만무했다. 칼날을 몇 번 조정하고 커피콩을 방바닥에 흐트러트리면서 어렵사리 갈아 드리퍼에 내리니 그윽하고 구수한 커피 향이 집 안 구석구석까지 헤집고 다닌다.

커피 열매 안에는 커피 생두 두 개가 서로 마주 보고 들어 있는데, 가끔 불량품처럼 둥근 생두가 하나만 들어있는 것이 있다. 이 생두가 완두콩처럼 생겼다고 해서 '피베리'라 불린다고 한다. 핸드드립 커피를 좋아해 마실 때마다 생두를 갈아 마시는 나도 '피베리커피'는 처음 들어보는 낯선 이름이었다.

박종희 약력

△2000년 월간문학세계 수필 신인상으로 등단

△제3회 서울시음식문화개선 수필공모전 대상

△제5회 올해의 여성문학상 수상 등 다수

△ 저서 '나와 너의 울림' '가리개'

△ 충북여성문인협회, 충북수필문학회, 한국산문작가협회 회원, 한국작가회의충북지회 사무국장

△1인1책 펴내기 지도강사

처음 커피가 알려지던 때에는 '피베리'가 커피의 잡맛을 내는 '결점두'라고 생각해 다 골라냈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커피광들 사이에서 특별한 대접을 받으며 비싼 값에 팔리고 있다. 커피 애호가들은 피베리커피가 보통의 생두보다 뛰어난 향과 깊은 맛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두 개의 생두에 가야 할 모든 영양소가 한 개의 알맹이에 모여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과학적인 연구 자료는 아직 없다고 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피베리가 더 좋은 맛을 낸다고 하는 것은, 피베리의 둥글둥글한 모양이 평평한 것보다 균일한 로스팅을 할 수 있어, 좀 더 좋은 향과 깊은 맛을 끌어낼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또, 커피 전체 생산량의 2∼10% 정도밖에 되지 않는 적은 생산량 탓에 귀한 대접을 받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불량두'라고 버려지던 피베리가 맛과 향을 인정받아 고급커피로 불리는 것을 보면서 우리 주변에도 진가를 알지 못해 묻혀 사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생각하게 되었다.

지난달에 조카가 사회적 기업을 승인받아 '맑은 기업'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조카는 대학 재학 중에 사고를 당해 휠체어를 타야만 하는 1급 장애인이다. 그런 조카가 열심히 노력하고 공부하더니 기업의 대표가 되었다. 조카네 회사는 제지회사에서 용지를 공급받아 규격에 맞게 자르고 포장하여 납품하는 업체다.

회사를 개업한다고 해서 가보니 조카가 휠체어에 앉아 우리를 반겼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하면서 워낙 침착하고 명석해 성공할 줄은 알았지만, 막상 15명이나 되는 직원을 거느리는 대표이사가 되어있는 것을 보니 콧등이 시큰했다.

사회적 기업은 취약계층에 사회서비스 제공과 일자리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라 조카도 지적장애인 7명을 의무적으로 채용했다고 했다. 얼핏 보기에 그들은 일반인들과 다를 바 없었는데, 언어가 조금 어눌하고 하는 짓이 어린아이 같았다. 그들 중에 유난히 마음이 가는 여자직원이 있었다. 청순하고 얌전해 보이는 예쁜 아가씨였다.

조카는 그들이 단순작업은 성과가 좋은데, 숫자를 센다거나 기억을 해야 하는 일은 무리라고 했다. 그날, 개업식 행사 중에 복사용지를 재단하여 포장하는 작업을 직접 시연해 보이는 시간이 있었다. 구의회 의장을 비롯하여 내빈들이 50여 명 모여 있고, 각 언론사의 기자들까지 와있는 자리라 혹시라도 실수하면 어쩌나 싶은 생각에 마음을 졸였는데, 그들은 완벽하게 작업과정을 보여줬다.

"지금부터 복사용지가 만들어지는 작업과정을 보여 드리겠습니다."라는 사회자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정해진 자리에 가서더니 자기들이 맡은 업무를 척척 해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마흔이 다 돼가는 자식이 결혼도 못하고 집에 뒹구는 것을 보며 애를 태우던 부모님도, 아들이 근무복을 입고 일하는 모습을 대견한 듯 바라보았다. "세상에는 내 자식이 할 수 있는 일도 있구나!"라고 하며 행복해했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저마다 존재해야 할 필연적인 이유를 가지고 태어난다. 아들의 지능이 떨어진다고 근심만 하며 세월을 보냈던 부모는 그날 어떤 기분이었을까? 지적장애인이라고 해서 직장생활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의 지능에 맞는 일을 찾아주지 못해 그들이 사회 속으로 들어올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한때, '결점두'라고 불량품 취급받았던 피베리커피가 고급커피로 자리매김한 것처럼 이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그들도 그들만의 아름다운 인생을 구축하게 될 것이다. 남편이 정성껏 내려준 피베리 커피를 한 모금 입에 물고 궁굴려본다. 개업식 날 맥주 한 잔에 얼굴이 발그레해지던 아가씨의 수줍은 미소가 커피잔에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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