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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2.05.06 17:37:35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가정의 달을 앞두고 어느 기관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어버이날 가장 받고 싶은 선물로 10명 중 7명이 현금을 선호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물론 현금도 좋겠지만, 정성이 가득 담긴 선물이면 더욱 좋으리라.

어린이날, 어버이날, 결혼기념일, 종류도 많고 어떻게, 얼마만큼의 선물을 할까 망설이게 되는 경우도 많다. 값이 비싸지 않아도 오래도록 기억되는 선물이 있는가 하면, 쉽게 뇌리에서 지워지는 선물도 있으니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내 지갑 속에는 주인이 찾아주기만을 기다리다 지쳐 잠이 든, 기름을 넣을 수 있는 상품권이 한 장 들어있다. 어느 문우로부터 받은 선물인데 그 상품권 금액이 높은 것이 아님은 물론, 구매하기 어려운 것도 아닌 순수한 정이 담긴 선물이어서 오랫동안 쓰지 않고 보관하고 있다

지금 그 상품권으로 기름을 넣는 다면 얼마나 넣을까. 기름값이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치솟았으니 얼마 넣지 못할 거다. 전에는 어디든지 가고 싶으면 달려갔었는데 요즈음은 아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한다. 이 상태가 계속 된다면 여행 다니는 횟수도 줄여야 하리. 전에는 5만 원이면 휘발유를 가득 넣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8만 원 가지고도 가득 넣지 못하겠으니 올라도 무척 많이 오른 셈이다.

누구나 마음의 부담을 주지 않는 선물을 받는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모름지기 분에 넘쳐서도 안 되겠지만 받는 쪽의 쓰임새를 고려하지 않은 선물은 그만큼 값어치도 떨어진다.

10여 년 전 대전에서 일어난 법조비리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전별금, 또는 선물이란 명목의 금품수수를 놓고 무척 말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여파로 모든 사람이 우러러보는 법관들이 법복을 벗어야 하는 수난도 겪었다. 아마 떠나는 이에게 석별의 정을 표시하기 위해, 입은 은혜에 보답하는 뜻으로 건넨 것 같은데 아무래도 그 정도가 지나쳤지 싶다. 나 같았으면 그런 방법으로 석별의 정을 나누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슴으로 녹아 흐르는 따듯한 글이 담긴 수필집 한 권 사서 "그동안 고마웠습니다."라는 글을 적은 쪽지를 예쁘게 접어 그 속에 넣어 건넸을 것이다.

전별금도 마찬가지다. 진정 헤어지는 아쉬움에 전별금을 건넨다면, 목적지까지 두 사람이 승차할 수 있는 철도 표나 우등 고속버스표를 건넨다면 좋겠지만, 지금은 거의 승용차로 이동하니 그 승차권 두 매 구매할 정도의 금액이면 석별의 정을 표시하는 데는 적합하지 않을까 싶다.

나의 등단 소식을 듣고 시골에 사는 어느 문우(文友)가 보내온 주유권을 지금껏 아까워서 쓰지 않았다. 주말이면 산행을 자주 하는 나의 글을 읽고는 좋은 글감을 얻기 위해서는 여행도 필요할 것 같아 보낸다는 간결한 내용의 글과 함께 보내온 선물이다. 나는 그 선물을 받고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정말 그때는 어디든지 나돌아다니고 싶어 하던 때였다.

문우는 좋은 글감을 얻으라고 했는데 나는 아직도 그 선물로 여행하지 못했고 글도 쓰지 못했으니 미안한 마음 금할 길 없다

농촌의 실정이란 것이 늘 바쁘기 마련이다. 어쩌다 비 오는 날이거나 쉬는 날이 있다 해도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시간은 흔치 않을 것이다. 더구나 모든 것을 챙겨야 하는 주부의 처지에서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지금도 생각나는 장면들이 있다. 내가 자라난 농촌, 농번기가 시작되면 고양이 손도 빌리고 싶은 곳이 바로 농촌이다. 남정네들이 들로 일하러 나간 다음 우리의 어머니들은 등에는 칭얼대는 아기를 업고 그 뜨거운 뙤약볕 속을 머리에는 일하는 사람들에게 줄 새참을 이고 걸어가는데 손에는 물주전자도 들려있었다. 지금은 기계화 영농에 힘입어 옛날처럼 그런 진풍경은 찾아볼 수 없다.

들에서 하는 일이 많이 줄었다고는 하나 기계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구석자리나 작은 밭뙈기 등은 사람의 손을 빌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자니 자연 농사철에는 들로 나다녀야 하는 것이 농촌 사람들의 현실이다.

그 바쁘고 피곤한 와중에서도 밤늦도록 책을 읽는 일은 절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농부의 아내, 한 가정의 주부, 자녀의 어머니 일을 충실히 하며 한 올 한 올 엮어내는 글은 무명처럼 순수하고 고왔다. 그가 써내는 글은 진한 삶의 모습이 묻어나고 있었고 어린 시절을 농촌에서 성장하고 한때는 농사일했던 나의 기억을 새록새록 일깨워 주고 있었다.

정말 문우의 말처럼 호젓한 산사로 달려가 가슴 따듯하게 느껴지는 불서(佛書)라도 만나 그 책을 가슴에 안은 벅찬 감회에 젖어보고 싶을 때가 잦다. 아마 그 선물로 당시 급유를 해서 떠났다면 동백꽃 만발한 선운사나 푸른 파도 철썩이는 동해안의 어느 해변쯤은 갈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문우의 간절한 정성을 외면하고 지갑 속에 그 선물을 간직하고 있으니 정녕 이 사실을 그 문우가 안다면 서운해할 것이지만 그래도 나는 쓰지 않고 보관해 둘 것이다. 아니 이제는 쓸 수도 없다. 현금이나 다름없는 것을 사장해서 안 됐긴 하지만 진작에 사용할 선물이었다면 지금껏 보관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박순철 약력

충북 괴산 출생
동양문학 신인상 당선(1990년)
월간『수필문학』천료(1994년)
한국문인협회, 충북수필문학회 회원
수필문학충북작가회장,
충북수필문학회부회장 역임
한국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충북수필문학상 수상 (2004년)외 다수
수필집『달팽이의 외출』『예일대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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