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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3.12.29 16:40:56
  • 최종수정2013.12.29 16:40:06
계사년 뱀띠 해가 시작된 게 엊그제 같은 데 벌써 또 한 해가 저물어가는구나 생각하니 서글픔이 밀려왔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제 세월에 순응하며 살아야 할 나이가 아니던가. 욕심을 내려놓아야 한다면서도 그게 쉽지 않은 소갈씨.
 

내일 새해를 깨끗한 마음으로 맞기 위한 준비로 모두가 분주하다. 소갈씨는 목욕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 해 동안 덕지덕지 앉은 마음의 때도 씻고 시간도 보낼 요량이다. 집에는 아내가 서울에서 내려올 손자 녀석들 음식 준비하느라 신바람이 나 있다. 그래 봤자 잘 먹지 않을 것임을 잘 안다. 아내가 만들어준다는 게 두툼한 부침개 종류일 것이니 인스턴트식품에 맛 들여진 녀석들의 식성에 맞을 리 없다. 그러거나 말거나 모처럼 들떠 있는 아내 비위 건드려 좋을 게 없다는 판단에 목욕 가방을 챙겨 일어선 것이다.

박순철 약력

충북 괴산 출생
동양문학 신인상 당선(1990년)
월간『수필문학』천료(1994년)
한국문인협회, 충북수필문학회 회원
수필문학충북작가회장,
충북수필문학회부회장 역임
한국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충북수필문학상 수상 (2004년)외 다수
수필집『달팽이의 외출』『예일대 친구』
목욕탕에 들어서자 뽀얀 김이 서려 얼마 동안은 잘 보이지 않는다. 20년 넘도록 이용해온 목욕탕이다. 오늘따라 목욕탕 안은 대 만원이다. 이 시간대에는 사람이 적었는데 다른 사람들도 모두 자신처럼 깨끗한 몸으로 새해를 맞으려는 것이겠지 생각하니 소갈씨 마음이 흐뭇해졌다.
 

빈자리가 나기를 기다렸다가 샤워하고 마침 일어서는 사람이 있어 수건과 면도기를 내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언제나 그랬다. 소갈씨는 샤워하고 말끔하게 면도까지 마친 다음 온탕에서 느긋하게 때를 불리는 게 그의 목욕방법이다.


어쩌다 몸도 씻지 않고 탕에 뛰어드는 젊은이를 보고서도 이제는 못 본 체할 정도로 성질이 좋아졌다. 아니 좋아진 게 아니라 성질이 죽었다고 해야 더 맞을 거다. 한 성질 할 때였다면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소갈씨다.

 
면도를 마치고 온탕으로 들어가려니 사람이 너무 많았다. 물에는 때가 둥둥 떠다니고 안에는 어린이 셋이서 물장난을 하고 있다. 그래도 누구 한 사람 주의를 시키거나 제지하는 사람이 없다. 하긴 저 천진난만한 어린이들이 무엇을 알까. 간신히 비집고 들어가 목까지 담그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녀석들이 일찍 오면 목욕탕에 데려오려 했었는데 저녁 늦게 도착한다는 연락을 받고서는 기분이 언짢아진 것도 사실이다. 아들이 청주에 있을 때는 토요일이면 꼭 녀석들을 데려다 놓았었다. 말은 할아버지 할머니 심심할까 봐서라고 했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소갈씨는 안 봐도 삼천리다.
 

물을 끼얹고 장난치던 애들도 놀만큼 놀았는지 이번에는 샤워기 있는 쪽으로 몰려간다. 애들이 빠져나가고 나니 온탕 안에는 네 명이 남았다. 한 사람은 소갈씨보다 나이가 많은 쭈글씨였고, 두 사람은 고등학생쯤 돼 보였다.
 

이때다 싶었는지 나이 많은 사람이 온수 손잡이를 확 돌려서 뜨거운 물을 콸콸 쏟아지게 한다. 처음에는 애들 때문에 뜨거운 물을 안 틀어놓은 것이려니 생각했다. 이제 온탕이 아니라 열탕이라고 해야 맞을 정도로 뜨겁다.
 

안을 휘둘러보니 그동안에 한 학생은 이미 밖으로 나가고 안에는 세 사람뿐이다. 그만 잠가야 하겠다는 생각에 일어서려다 말고 다시 앉았다. 뜨거운 물을 틀어놓은 사람이 있는데 자신이 잠근다는 것은 상대방을 무시하는 처사라는 생각에서다. 쭈글씨도 어지간히 되었다는 생각에서인지 옆에 있는 학생에게 물 뜨거우냐고 물어본다. 소갈씨에게 물었다면 당연히 그렇다고 했을 터인데 어찌 된 영문이지 학생은 괜찮다고 대답하는 게 아닌가. 하지만 참고 있음이 역력하게 느껴졌다. 차마 노인이 하는 일에 반기를 들지 못하고 있음이다. 뉘 집 자손인지 참 제대로 된 가정교육을 받은 것 같았다.
 

나이 많음을 내세워 어린 학생에게 억지 답을 구하고 있는 쭈글씨가 얄미웠다. "인제 그만 잠그셔도 되겠네요. 다른 사람 생각도 해야지요."라고 볼멘소리를 내질렀다. 그제야 온수 손잡이를 잠그며 물이 너무 더러워서 그랬다며 진심인지 핑계인지 아리송한 말을 늘어놓는다. 전 같으면 공중목욕탕은 여러 사람이 이용하는 곳인 만큼 나 혼자 생각만 해서는 안 된다느니 어쩌느니 하는 말을 덧붙였겠지만, 목구멍까지 치민 말을 애써 참는 눈치다. 학생이 일어서서 밖으로 나간다. 뜨거워서 일어선 것이 분명해 보였다. 소갈씨도 따라 일어섰다. 혼자 뜨거운 물에 몸을 삶든지 말든지 상관하지 않겠다는 듯.
 

목욕탕 안은 그동안 사람이 많이 빠져나가고 몇 명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소갈씨는 때를 밀면서 옆을 흘금 바라본다. 아들로 보이는 젊은이가 아버지의 등을 밀어주는 모습이 부럽기만 하다. 손자 녀석들이 전에는 그 고사리 같은 손으로 등을 서로 밀겠다고 대들곤 했었는데….
 

할아버지 등 밀어 드릴까요? 하는 소리에 뒤돌아보니 조금 전 온탕 안에서 인내심을 발휘하던 그 학생이었다. 소갈씨는 염치없게 그 학생에게 등을 맡기고 느긋한 감성에 젖는다. 지금의 젊은이들이 저 학생처럼 예의 바르고 됨됨이가 올바르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학생의 등을 밀어주려 하자 벌써 밀었다며 사양한다. 샤워기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는 뒷모습이 무척 든든해 보였다. 조금 전 탕 안에서 언짢던 마음이 스르르 풀렸다. 살다 보면 오늘같이 기분 좋은 날도 있구나 싶어 비실비실 웃음까지 나왔다.
 

목욕을 마친 소갈씨가 손자 녀석들에게 사줄 만한 게 뭐 없을까 하고 마트 안을 기웃거린다. 마침 조금 전 자신의 등을 밀어주던 학생이 보였다. 시장바구니까지 들고 있다. 음료수라도 한 병 사주려고 가까이 다가가는데 사십 중반으로 보이는 여인이 "얘 어서 가자, 할아버지 기다리시겠다."라며 서둘러 마트 안을 빠져나가 버린다.
 

날씨가 그리 춥지 않아 다행이다. 밖으로 나오니 함박눈이 나풀나풀 춤을 추며 내려온다. 마치 하늘에서 가난한 백성에게 내려주시는 양식 같이 느껴졌다.
 

그래! 내년, 갑오년에는 풍년도 들고 좋은 일만 있을 거야.
 

눈을 바라보는 소갈씨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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