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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이 온몸, 머리부터 발끝까지 동시에 전해졌다. 난데없이 바닥에 정곡으로 찧은 엉덩방아로 꼬리뼈의 아픔은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사무실 여직원은 걸려온 전화에 열중하느라, 순식간 일어난 촌극을 눈치 채지 못했다.

업무를 보려고 사무용 탁자에 앉으려다 이동식 의자가 갑자기 뒤로 미끄러져 나가는 통에 벌어진 일이었다. 갑자기 온 근육이 놀라 경직되어 버린 건지, 뻣뻣해진 몸을 좀처럼 일으키기가 쉽지 않았다. 뒤늦게 어수선하게 흩어져 있는 자료를 본 여직원이 상황 파악을 하고 쫓아와 측은한 표정을 지었다.

며칠 지나면 괜찮겠지 했던 안일함은 오산이었다. 한 달여 동안 모든 일상이 자유롭지 못했다. 특히 앉고 일어서거나, 어쩔 수 없이 계단을 오르내릴 때, 웃거나 재채기만 해도 오는 시큰한 통증은 고역이었다. 며칠 앞둔 휴가에 떠나기로 했던 외국여행도 결국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운 없는 날이라고 투덜대긴 했지만, 평소 내 몸속의 꼬리뼈에 대해선 지금까지 기억해 본 일이 없는 듯싶었다. 병원을 오가면서 새삼 알게 된 사실은 꼬리뼈는 사람의 퇴화 기관이라고 하지만, 몸의 중심을 잡는 다거나 골반 내의 장기를 보호해 주는 역할을 일부 한다고 한다. 아픔을 겪고 나서야 잘 드러나지 않았던 꼬리뼈의 존재감이 실감이 난다.

얼마 전 고등학생인 막내아들이 밤중에 공부하다 출출해서인지 피자가 먹고 싶다 하여 배달 주문을 했다. 난 늦은 시간의 간식이 부담스러워 입에 대지도 않았다. 아들은 식욕이 왕성할 시기라 선지 순식간에 피자 한 판을 거뜬하게 없앴다.

임정숙 약력

한국문인협회·충북수필문학회 회원, 수필샘 동인

△청주문인협회·충북수필문학회 총무 역임

△청주·청원 1인1책 펴내기 운동 팀장

△저서 수필집'흔드는 것은 바람이다'(2009년)

△문학공간 수필부문 신인상. 2007청주예술공로상 수상

△limjs60@hanmail.net

문제는 밤늦게 귀가한 둘째 딸이었다. 밥상을 차려 주려고 일어서는데, 딸이 세탁실에 둔 빈 상자를 보았는지 피자가 남았느냐며 묻는다. 순간 아차 싶었지만 이미 피자를 다시 주문하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 되어 버렸다. 미처 딸의 몫을 챙기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들어 내일 먹자며 아이를 다독였다.

그러나 딸은 평소답지 않게 그날 따라 몹시 예민하게 짜증을 내었다. 나한테는 차마 화를 내지 못하고 제 동생에게만 민망할 정도로 핀잔을 퍼부었다. '너만 입이니, 난 가족도 아냐, 양심도 없네'라는 등 요즘 세상 귀한 음식도 아닌 피자를 가지고 유별나게 구는 딸이 신경에 거슬렸다.

피자 한 판 먹고 큰 죄 지은 양 누나 앞에 기가 푹 죽은 아들 모양새가 오히려 안쓰러웠다. 차린 밥도 안 먹고 제 방에 들어가 옷장 문을 쿵쿵 닫고 눈물까지 쏟는 딸이 어처구니없고 난감했다. 평소엔 센스 있고 잔정 많은 딸이었건만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결국, 참다못한 내가 고함을 질러 겨우 잠잠해졌다.

그 후로도 딸은 한 사흘 동안은 집에 들어오면 가족들과 눈도 안 마주치고 여전히 심기 불편한 얼굴이었다. 피자를 코앞에 대령해도 본체만체였다.

그러다 딸이 제풀에 꺾인 듯싶은 날, 그리도 화가 났던 이유 좀 알자 했더니 결코 피자 때문이 아니란다. 언니와 동생 사이에서 자신은 늘 뒷전인 게 속상했는데 마침 쌓인 감정이 터졌다고 한다. 무슨 일이든 언니는 맏이고 동생은 막내라서 나보다 우선이고 챙김을 받지만, 그 축에 잘 끼지 못했던 자신의 소외감을 엄마는 아느냐고 묻는다. 아마 우리 가족 중 존재감을 저울로 달아보면 자신이 가장 가벼울 거라 한다.

잊고 있었나 보다. 나도 딸처럼 자랄 때 육 남매 중 넷째여서 중간치기의 설움이 없었던 건 아니었는데. 가운데라서 치였는지, 어디를 가나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고 소극적인 아이였었는데 말이다.

형제들과 자라면서 새 옷 한 번 입기가 만만치 않았었다. 어느 정도 해진 옷을 물려받고 낡은 가방을 메고 좀 큰 신발도 대강 신어야 했던 빛바랜 기억들이 스쳐간다. 이젠 아련한 추억이다. 하지만 평등하게 분배된 새로운 기운을 담은 새 물건에 대한 소원을 기대했던 어린 마음의 아쉬움은 지금도 아릿하다.

누구의 의도적인 잘못은 아니지만, 환경적인 요인이 더 큰, 어쩔 수 없었던 외로움을 우리 아이도 안고 있었구나, 동병상련의 마음이 전해온다.

그러나 어차피 생존경쟁의 세상 어디서든 존재감의 비중이란 게 있는 법일 게다. 어떤 이는 그 존재감을 남용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상처 입은 존재감에 쓰라림을 겪기도 할 것이다.

퇴화한 줄 알았던 꼬리뼈에도 피자 한 조각의 나눔에도 존재감은 어떤 형태로든 존재한다. 미미해도 모두가 그 존재의 의미는 소중하다. 스스로 지키는 건 불멸의 진리, 결국 자신을 믿는 것일 뿐이다.

딸아, 오늘도 힘을 내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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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