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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2.03.11 17:56:03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겨울은 너무 길다. 이제 갔나 싶으면 찬바람이 웅크린 몸을, 시린 마음을 훑고 지나간다. 그러나 끝내는 자연의 섭리 앞에 잠깐 머물고 갈 봄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만다. 아직은 차가운 봄바람을 맞으며, 하얀 눈 위에 낙엽을 뚫고 피어있을 설연화(雪蓮花)를 찾아 나서야겠다.

설연화(雪蓮花)를 좋아하기 시작한 것은 십수 년 전이다. 사는 게 힘들고 우울하던 어느 늦은 겨울날, 기분 전환을 시켜 줄 테니 집 앞으로 나오라는 친구가 있었다. 그녀는 차를 몰고 한참을 달려 한적한 골짜기 물소리가 들리는 야산으로 안내하였다. 신기하게도 눈이 부실 만큼 샛노란 꽃이 하얀 눈 위에 세 송이가 피어 있었다. 큰 소리로 손뼉을 치며 탄성을 질렀다. 그리고는 추위도 잊고 한동안 그곳에 머물렀다. 복잡하게 얽혔던 머릿속의 먹구름은 어느덧 걷히고 파란 하늘처럼 맑아졌다.

겨우내 동토(凍土)에서 온몸을 흔들고 비비며 땅을 녹이고 하얀 눈을 뚫어 마침내 황금빛 열꽃을 피워낸 설연화(雪蓮花)의 그 지독하고 처절한 생명력은 어디서 오는 걸까. 고개가 절로 숙여진 채 자연의 신비가 그저 경이로울 뿐이다. 꽃잎을 만져보니 한겨울 영하의 날씨인데 따스함을 느낄 만큼 보드라웠다. 그래서일까? 그 꽃은 눈밭에서 꽃을 피운다. 주변의 눈을 식물 자체에서 나오는 열기로 녹여버린다는 설이 민담으로 전해 오고 있다. 친구는 화려하고 찬란한 황금색의 그 꽃을 '복수초(福壽草)'라고 했다. 그때부터 예쁜 그 야생화를 참 좋아하게 되었다.

그 꽃은 '영원한 행복'이란 꽃말을 가지고 있다. 또 복과 장수를 누리는 꽃이라고도 한다. 2~3월이면 언 땅을 뚫고 나와 백설 위에서 제일 먼저 그렇게 봄을 마중한다. 눈 속에 피는 연꽃 같다고 설연화(雪蓮花), 쌓인 눈을 뚫고 나와 꽃이 피면 그 주위가 동그랗게 녹아 구멍이 난다고 하여 '어름새' 꽃이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나는 그중에 설연화(雪蓮花)란 이름이 제일 사랑스럽다.

흑룡의 해 임진년은 나에게 특별한 한해로 기억될 것 같다. 누구나 늙었다고 인정하는 고희(古稀)란 나이테가 품 안으로 안겨지는 씁쓸한 나이가 되었으니 말이다.

삶을 무사히 마칠 준비도, 나잇값을 제대로 하지도 못한 주제에 나이 타령을 하게 되니 나도 어쩔 수 없는 가보다. 70 고개를 넘고 나서는 오늘 밤 잠들었다가 내일 아침 깨어나지 않아도, 그저 오늘 하루를 미련 없이 살아도 여한이 없으리.

긴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꽃은 인생의 벗이고 친구였다. 특히 늦은 겨울 백설 위에서 눈부시게 피어있는 설연화(雪蓮花)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다. 어디 그뿐이랴. 상사초, 민들레, 제비꽃이 순서대로 꽃을 피워 봄을 맞는 것처럼 나도 차곡차곡 순서대로 저들과 함께 나이를 먹다 보니 고희에 이른 것이다. 누구는 나이 들어가는 것은 아름다움을 창조해 가는 것이라고 했다. 나이를 먹을 때마다 나름대로 그 나이에 맞도록 잘 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나이에 대한 거부감을 느낄 만큼 회의를 느끼며 살진 않았는데, 올해 임진년의 새 아침엔 특별한 이름 달린 나이를 의식하게 됨은 왜일까. 생각해보면, 내가 어렸을 때는 고희를 넘기는 어른이 극히 드물었다. 옛 조상이 떠나간 그 시점에 성큼 서 있다고 생각하니 이제는 초연한 마음으로 옷깃을 여미게 된다.

아득히 살아온 내 인생을 되돌아보면 회한이 몰려온다. 별로 잘나지도 못하면서 대접받기를 바랐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체만 하는 그런 숙맥처럼 산 것은 아닌지. 누군가의 말에 쉽게 상처를 받으며 노여워하고, 이해하려는 노력보다 심통을 부리지는 아니하였는지….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좋은 일은 아니지만, 피해 갈 수 없는 일이 아닌가? 나이 들면 눈과 귀가 어두워지고, 치아가 약해지고 기억력이 쇠잔해진다. 이것은 보고 듣고 말하거나 먹고 마시며 기억함에 절제가 필요하다는 조물주의 배려라고 했다. 그러나 죽고 사는 건 하늘만이 하는 일. 사람이 너무 오래 살면 세상사를 너무 훤히 꿰뚫게 되고 흥보다는 한숨짓기 쉽다. 젊은이들을 방해하는 일, 성가시게 하는 일이 없도록 있는 듯 없는 듯 부담 주는 나 자신은 되지 말아야겠지. 커피의 쓴맛이 그 맛을 더욱더 깊게 하는 것처럼 지난날의 아픈 상처가 내 인생에 약이 되었을 것이다.

이제 나도 귀가 어두워져 TV 소리를 높이고 눈도 어두워진다. 입도 더불어 조용해짐은 왜일까. 그저 물에 물 탄 듯이 술에 술 탄 듯이 사는 것도 지혜가 아닐까. 그러나 함께 하는 일은 몸과 마음도 같아야 한다.

공자께서는 70을 종심(從心)이라 하였고, 그때가 되면 마음이 시키는 대로, 혹은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마음이 원하는 대로 하여도 어떤 규율이나 윤리에 벗어나지 않는다 하였는데, 나는 언제쯤 그런 경지에 다다를 수 있을까?

김정자 약력

△'한국수필'로 등단

△청주시문화공로상 수상

△법무부 전국교정수기공모전 최우수상 수상

△청주예술공로상

△제7회 홍은문학상 수상

△한국수필작가회 충북수필문학회 청주문인협회 회원 충북여성문인협회 회장역임

△1인1책 펴내기 운동 프로그램 강사, 청주시민신문 편집위원

△저서로는 세월속에 묻어난 향기, 41인 명작품 선집

설연화(雪蓮花)는 모든 식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나기 전에 꽃망울을 터뜨리고, 다른 식물이 왕성하게 자라서 서로 자리다툼을 하는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에서 열매를 맺고 다음 해 봄까지 긴 휴식을 취한다. 고희를 맞는 임진년, 이 아침! 이 땅에 사는 날까지 설연화처럼 식지 않는 열정과 그 여유로움을 닮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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