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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2.02.19 18:18:26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임진년 새해 초하루이다. 해맞이를 하려고 마을 앞 구룡산에 올랐다. 지난해에는 엄청나게 추운 데다가 등산로에 눈이 얼어붙어 거의 기다시피 올라갔었다. 내려오는 길에는 미끄럼을 타다시피 했었지만, 새해의 찬란한 태양을 맞은 기쁨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오늘은 회색빛 하늘이 산봉우리까지 내려앉았다. 정상까지 반쯤 올랐을 때는 목덜미에 땀이 났다. 구름 사이로 해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상 예보는 위로의 말이었나 보다.

정상에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해가 얼굴을 보여줄 기미는 전혀 없다. 하늘은 어린 아이로부터 팔순 노인의 소망까지 뿌연 얼굴로 외면하고 있다. 그래도 착한 사람들은 동녘을 바라보면서 구름 사이로나마 볼 수 있다는 새해의 태양을 기다리고 서 있다. 하늘은 다시 맞는 임진년이라 해서 나에게만 특별히 해맞이 기회를 주는 것은 아니다. 이견엽 지기근以見葉 知其根이라 했다. 보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본다는 말이렷다. 이제 내 생애에 임진년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구름 너머의 태양이라도 찾아보자. 언젠가 정동진까지 가서도 새해 해맞이 하지 못한 아들에게 '착하게 살아야 해를 볼 수 있다.'라며 가슴에 못을 박은 적이 있다. 갑자기 그 생각이 난다. 태양은 왜 다시 맞는 임진년의 간절한 나의 소망을 외면할까?

어린 시절 할머니께서는 사주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며 임진생 용띠라는 것을 기회 있을 때마다 가르치셨다. 아마도 용처럼 힘차게 꿈틀거리며 지혜롭게 살아야 한다는 말씀을 하고 싶으셨을 것이다. 할머니 말씀을 저버리고 어린 시절을 병약하게 보냈다. 조금씩 철이 들면서 임진년에는 유난히 어려운 일이 많았던 우리 역사에 호기심이 생겼다. 우리 민족의 자존심에 쓰라린 상처를 준 임진왜란이 바로 그 하나이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그런 치욕의 역사가 우리의 무방비가 원인이라는 것을 잊고 산다는 점이다. 몽고의 침입으로 고려 왕조가 강화도로 천도한 것도 임진년이라는 얘기를 언뜻 들었다. 내가 태어난 임진년도 한국전쟁 중이었다. 1952년은 전쟁 중인데도 '임진년 흉년'으로 이름 지어질 정도로 극심한 흉년이 들었다고 한다. 수도를 부산으로 옮겨야 하는 피폐함 속에서도 정치인들은 무너져가는 권력을 차지하려고 다툼을 계속했다고 한다.

임진생인 우리는 역사에도 남은 '임진년 흉년'에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굶주림과 함께 지냈다. 전쟁 후의 곤궁을 혼자 겪은 것은 아니지만, 배고픔으로 오는 정신적 수치감은 제각각 혼자 이겨내야 하는 일이었다. 여덟 살 어린 나이에 학교에 가면 미국에서 보내온 우유가루나 강냉이 죽을 먹기 위해 줄을 서는 치욕을 감내해야 했다. 성조기와 태극기의 소매가 악수를 하는 그림이 그려진 하얀 자루에서 분유가 하얗게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가슴 한 구석에는 퍼렇게 멍이 들었다. 그 모두가 임진년 탓이 아니라 임진년을 대비하지 못한 우리 민족의 교만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지난해에는 얼어붙은 하늘에서도 찬란한 해가 떠올랐던 것을 기억하며 오늘의 섭섭함을 잊으려고 애를 썼다. 그때 누군가 어깨를 툭 쳤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올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제자도 학부모도 아니다. 작년의 그 사람이다. 어쩌면 인사말까지 똑같을까? 신년 일출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다만 초조하게 새해의 태양을 기다리는 선남선녀를 권력 지탱의 버팀목이 되어줄 표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태양을 바라보며 순박한 소망을 갖는 것이 아니라, 기회를 타고 하늘로 오를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이른 아침 함께 올라왔건만 시민들과 바라기의 대상은 전혀 다르다. 시민들은 거룩한 태양을 바라기 하는데 그는 작년이나 올해나 표바라기를 하고 있을 것이다. 함께 해 바라기를 해 주면 우리에게 작은 감동을 줄 수 있을 텐데 하는 안쓰러운 생각을 하며 그의 악수를 받았다. 내게는 다시 맞는 임진년인데 총칼 없는 싸움으로 온 강토가 더러운 말의 바다가 되겠지. 반성을 모르는 선량들의 미욱함이 안쓰럽다. 방한복 안에 비굴하게 굽어진 그의 어깨에 연민을 보내며 발길을 돌렸다.

내려오는 길에도 자식에게 했던 말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그 말은 모자란 생각에서 나온 말이었다. 해는 보이지 않지만 오늘도 어김없이 동쪽 하늘에 솟아 있는 것이다. 구름 너머에 있는 해를 보는 지혜를 가르쳤어야 한다. 새해에는 찬란한 태양을 맞이해야 한다는 생각, 흑룡의 해이므로 용꿈을 꾸어야 한다는 소망, 기이하고 좋은 글을 써서 사람들을 놀라게 해야겠다는 욕망, 선거에 이겨 권력을 내 손아귀에 쥐어야겠다는 허욕을 버리는 지혜를 배워야 한다. 그렇게 맑은 영혼의 눈으로만 구름 뒤에 찬란한 태양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전쟁 중에 태어났어도 비교적 순탄하게 살아온 60년 세월은 나에게 교만과 안일을 가르쳐주었나 보다. 얼마나 옹골지게 삶을 살아 왔는가를 돌아보면 할 말이 없다. 삶은 은총의 돌층계라는데 오늘 해맞이를 하지 못한 것은 나의 과거가 허락한 층계가 거기까지 뿐이기 때문이다. 구름 너머의 해를 보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은 것만도 얼마나 큰 은혜인가.

이제 내 삶에 두 번째 맞게 될 계사癸巳, 갑오甲午, 을미乙未, 병신丙申의 날들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내려오는 길에도 머릿속을 메운 상념은 떠날 줄을 모른다. 체육공원으로 내려가서 잔디 위에 하얗게 쌓인 눈을 밟으며 운동장을 걸었다. 다시 맞는 임진년, 하늘에서 보지 못한 새해 일출을 마음속에서나마 그려 보았다. 마치 나에게 다가올 날들인 양 화려할 것도 찬란할 것도 없어 보인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이 눈부시게 깨끗하다. 하얗고 지순한 눈에 흙 묻은 발자국이 유난히 커다랗게 나를 따른다.

이방주 약력

청주출생, 1998년『한국수필』 신인상
충북수필문학상(2007), 충북수필문학회 회원
한국수필작가회 회원, 내륙문학 회장 역임
수필집『축 읽는 아이』,『손맛』,『여시들의 반란』 편저
『윤지경전』(주식회사 대교) 공저
『고등학교 한국어』충북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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