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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해가 많이 길어졌다. 퇴근 시간이면 깜깜하던 하늘이 7시가 다 되었는데도 환하다. 옆 단지 아파트의 장터에 가려고 집을 나섰다. 4월이지만 윤달이 들어 아직 쌀쌀한데 성미 급한 목련은 벌써 꽃을 피웠다. 벚꽃 나무에 맺힌 꽃봉오리도 옹골져 금방 터질 것처럼 탱탱하다. 늘 차를 타고 지나다니던 길이라 주변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살피지 못했는데 바람은 아주 가까운 곳에서 이미 봄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슈퍼를 지나 좁은 골목으로 접어드니 벚나무가 줄지어 서 있다. 나무 반대편 담벼락에는 한국을 빛낸 사람을 주제로 한 인물화도 걸려있다. 누군지 참, 좋은 생각을 해냈다. 아파트와 아파트가 서로 등지고 있어 자칫하면 지저분해 보일 수 있는 골목길을 '테마거리'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 동네에서 10년째 살고 있지만, 내 집만 들락거려 주변에 이런 예쁜 길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살았다.

박종희 약력

△2000년 월간문학세계 수필 신인상으로 등단

△제3회 서울시음식문화개선 수필공모전 대상

△제5회 올해의 여성문학상 수상 등 다수

△ 저서 '나와 너의 울림' '가리개'

△ 충북여성문인협회, 충북수필문학회, 한국산문작가협회 회원, 한국작가회의충북지회 사무국장

△1인1책 펴내기 지도강사

사진이 있는 골목길을 구경하고 장터로 가니 저녁 찬거리를 사려는 사람들로 시끌벅적하다. 물 좋은 생선이 있다고 외치는 아저씨와 냉이, 달래 등 푸성귀를 다듬고 있는 할머니가 계신다. 각설이처럼 누더기 옷을 입고 철커덕 철커덕 가위 소리로 장단을 맞추는 엿장수도 있다.

일주일에 한 번 장이 열리는 곳에 오면 싱싱한 부식거리를 사는 것도 좋지만 사람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곳저곳 기웃거리다 할머니가 다듬어 놓은 냉이와 달래를 사고 달걀을 한 판 샀다. 그사이 조금 남아있던 해가 슬그머니 동네를 빠져나가고 어둠이 사방을 먹어치우기 시작한다.

장터를 나와 어둑어둑해지는 골목을 돌아서니 놀이터엔 아직도 공을 차고 노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한창이다. 몇몇 꼬마들은 엄마가 옆에서 기다리고 있는데도 미끄럼틀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집에 가야 한다고 화를 내는 엄마 앞에서 더 놀다 가겠다고 떼를 쓰며 우는 아이를 보니 어린 시절 골목길에서 같이 놀던 친구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마땅한 장난감이 없던 그 시절에 골목길은 우리들의 놀이터였다. 그래서인지 골목길은 늘 왁자했다. 해가 지고 깜깜해질 때까지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그칠 줄 몰랐다. 밤이 이슥해지도록 골목에서 놀다 보면 아이들을 부르던 어머니들의 목소리가 골목길을 가득 채웠다.

동네에 싸움 잘하는 골목대장이 있었다. 키가 아주 작고 대추 알처럼 단단한 아이였는데 그 친구는 여자아이들이 고무줄놀이를 할 때마다 나타나 고무줄을 끊어 달아났다. 그 친구를 피해 다른 골목에서 놀아도 용케 찾아와 고무줄을 휘감고 도망쳤다. 공기놀이나 목자치기 놀이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모둠공기놀이를 하느라 모아놓은 공깃돌을 발길질로 쓸어버리거나, 깨금발을 떼고 목자치기 하는 친구를 떠밀어 넘어뜨리는 일도 있었다. 그런데 더 재미있었던 친구는 골목대장 명수를 따라다니던 철이다. 철이는 고무줄 끊을 용기도 없으면서 괜스레 명수를 따라다니다가 힘센 여자아이한테 잡혀 혼이 났다.

동네 친구 중에 남자보다 더 힘이 세고 덩치 큰 여자아이가 있었다. 학년은 같지만, 우리보다 두 살이 많은 그 친구한테 잡히면 남학생도 흠씬 얻어맞았다. 잘못은 명수가 하고 두들겨 맞는 일은 언제나 철이 담당이었다. 그래도 철이는 늘 명수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두 번째 대장 노릇을 했다.

만날 여자아이들을 괴롭히고 바지는 줄줄 내려가 엉덩이가 보일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하고 다니던 명수가 중학생이 되더니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학교에 가다가 골목길에서 마주치면 얼굴이 빨개지며 고개도 들지 못했다. 그 용감하고 날래던 골목대장 명수는 어디로 가고 점잖고 단정한 남학생이 서 있었다. 생각해보니 명수는 그때가 사춘기였던 것 같다.

오랜만에 골목길에 서니 유년 시절에 함께 놀던 동무들 생각이 새록새록 하다. 벌써 40여 년이 훌쩍 지났지만, 아이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공기놀이를 잘하던 숙이와 짓궂은 남자애들을 혼내주던 덕희는 어떻게 변했을까.

밤늦도록 뛰놀며 골목길의 기척을 읽던 친구들과 아이들을 부르며 목소리를 높이던 어머니들의 야윈 얼굴도 어른거린다. 긴 겨울밤에 '메밀묵, 찹쌀떡'하고 소리쳐 부르던 정겨운 목소리가 있던 그 시절의 골목길이 아주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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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