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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3.09.15 18:49:59
  • 최종수정2013.09.15 18:49:59
서리가 내린다는 백로가 지났으니 기승을 부리던 잡초도 맥을 못 출 게 뻔하다. 바지런한 사람들은 조상의 산소에 벌초를 마친 사람이 많은데 아직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한 김 영감의 마음은 스산하기만 하다. 이웃집 오 영감네는 이번 일요일 서울 있는 아들 삼 형제가 내려오고 인근에 사는 집안이 모여 벌초를 하기로 했다며 싱글벙글이다.
 
이 산 저 산 있던 산소를 한 곳으로 이장하여 봉분도 조그마하게 만들어서 모신 것까지는 잘했는데 그다음이 문제였다. 그때만 해도 김 영감 나이 환갑 전이었으니 기운이 남아돌았었는데 이제는 아니다. 몇 년 전부터 사람을 사서 벌초를 해오고 있는 실정이다. 처음에는 벌초 대행 업자에게 맡겼더니 처삼촌 벌초하듯 해서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며칠 전 텔레비전에서는 벌초할 사람이 없어 제절은 물론, 봉분까지 시멘트로 바른 흉한 모습도 보였고, 산소 전체에 인조잔디를 깔아서 벌초를 하지 않는다는 기이한 산소의 모양이 소개되기도 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3대 독자 김 영감, 남의 일 같지 않다. 자신이 죽으면 산소를 누가 돌보랴· 이제라도 결딴을 내려야 할 것 같았다. 옹고집으로 불리는 그는 그만큼 빈틈도 없는 사람이다. 두 내와 억척같이 야산을 개간하고 노력한 덕분에 지금은 남부럽지 않을 정도지만 고생을 무척 많이 한 타고난 농사꾼이다.
 
부모님의 기대와는 달리 아내는 어머니처럼 딸만 내리 셋이나 낳았다. 그때마다 낭패한 모습을 짓던 부모님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이때나 저 때나 하고 마음 졸이던 부모님 앞에 아들 낳은 아내는 개선장군처럼 당당했다. 어쩐 일인지 그 이후 아내의 생산은 중단되고 말았다.
 
김 영감의 아들, 인근에서는 이름만 대면 금방 일 수 있는 인물이다. 중고등학교는 뒷바라지를 했지만, 대학교부터는 아들이 장학금을 타면서 공부했기에 돈 한 푼 들지 않았다. 대학교 4학년 때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인근 고을에 이름 떨치더니 이제는 외교관이 되어 해외로 나간 지가 십 년이 넘었다.
 
며느리는 다행히 손자만 둘이나 낳아주어서 5대 독자는 면했다. 그 고마운 마음 무엇에 견주랴. 가까이 있으면 손자도 안아주고 먹을 것도 사주고 싶은 노부부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는 듯 가끔 손자들의 사진 보내오는 게 전부였다. 한번은 손자들을 한국에 데려다 주면 키워주겠다고 했지만 어림없는 일이었다. 국제 경쟁력을 키우려면 어려서부터 영어를 배워야 하고, 외국물을 먹어야 한다는 게 아들 며느리의 지론이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손자 녀석들 보고 싶은 마음도 이제는 저만큼 날아가는 중이다. 그 허전한 마음을 가까이 있는 외손들이 채워주고 있지만, 외손은 남의 자식이라는 김 영감의 속마음은 변함이 없다.
 
삼대독자이다 보니 제사는 왜 그리 많은가. 늙은 아내에게 미안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그것도 제사지낼 사람이 많으면 덜 하겠는데 김 영감 혼자서 절하고 잔 올리고 다 하려니 어느 때는 짜증도 나고 서글픈 생각마저 들 때가 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기제사에는 사위와 딸들이 오는 때가 있어서 좀 나은데 추석과 설 명절에는 저희도 제사를 지내야 하니 처가 챙길 여유가 있을 리 만무하다. 생각다 못해 기제사를 한꺼번에 지내자고 아내에게 제안하자 무척 좋아했다. 남들이 알면 손가락질 할까 봐 그 사실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기독교 신자인 이웃동네 이모(李某) 씨네는 아예 기제사와 명절 제사 모두 없애고 한식에 성묘하는 것으로 대신한다는 소문도 들렸다. 연휴 기간에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 앞세우고 여행도 다니고 외국 나들이까지 한다나.
 
제사를 한꺼번에 지내기로 한 첫해 설날 아침, 제사상 앞에 꿇어 엎드린 김 영감의 눈에서는 닭똥 같은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고집 꺽은 것을 후회해보지만 되돌릴 만큼 어리석은 김영감은 아니다.
 
"조상님이시여! 이 어리석은 후손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제가 무능하여 조상님께 일일이 제 올리지 못하는 점 백번 죽어 마땅하오나 시대가 변하고 사람들의 의식이 변하다 보니 어쩔 도리가 없사옵니다. 부디 너그럽게 용서하여 주옵소서."
 
제사를 마치고 김 영감 내외는 머리를 맞대고 유언장을 쓰기 시작했다. 지금의 이 어려움을 후손에게 까지 물려주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사랑하는 아들 효동아! 혹여 우리 둘 중 누가 의식이 없어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해도 연명의료는 하지 말거라. 그렇게까지 해서 오래 살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단다. 누가 먼저 죽을지 모르지만, 화장해서 우리 집이 내려다보이는 감칠산에 뿌려다오. 제사도 지내지 말거라. 모두가 변하는 데 죽은 사람도 변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조상님도 이해하실 게다. 모든 짐은 내가 지고 가마. ……"
 
일 년에 한 번 제사를 지내기 시작한 지도 벌써 삼 년이나 되었다. 이제는 혹여 오지 않을까 하고 아들을 기다리지도 않는다.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한 김 영감의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아버지 안녕하세요. 저 효동입니다. 외국으로만 나돌아서 죄송해요. 아직 벌초 못하셨죠·"
 
"아니다. 벌초 벌써 했다."
 
"그래요. 많이 힘드셨죠· 힘드신 것 생각하면 해외생활 접고 고향에 돌아가 부모님 모시고 살고 싶은 생각도 들어요. 아버지!"
 
"그, 그게 무슨 소리냐· 옛날부터 못생긴 나무는 선산을 지키지만 잘생긴 나무는 궁월을 지킨다고 했다. 너는 국가를 지켜야 한다."
 
잠시나마 아들에게 서운한 마음을 품었던 김 영감은 휴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박순철 약력

충북 괴산 출생
동양문학 신인상 당선(1990년)
월간『수필문학』천료(1994년)
한국문인협회, 충북수필문학회 회원
수필문학충북작가회장,
충북수필문학회부회장 역임
한국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충북수필문학상 수상 (2004년)외 다수
수필집『달팽이의 외출』『예일대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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