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3번 공유됐고 1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그대여, 얼마 전 <건축학개론>이란 영화를 보게 되었어요. 영화 전반에 흐르는 분위기는 청춘의 가슴을 울리는 이성에 대한 설렘과 순수함, 이렇다 할 변명 한마디 하지 못하고 돌아서는 둘……. 주인공은 과거와 현재로 이어져 가슴앓이 하다 이루어질 수 없는 첫사랑으로 끝을 맺지요. 결국, 두 사람만의 오랜 기억은 그리운 추억으로 간직하게 된 거죠.

영화를 보고 내 가슴엔 잔잔한 파문이 일었지요. 그래요. 첫사랑이라고 말하기엔 좀 그렇지만, 그 느낌과 비슷한 점이 있는 미묘한 녀석을 발견한 거죠. 나의 청춘 시절은 주인공 없는 편지쓰기를 많이 하였답니다. 몇 명의 지인에게 손 글씨로 쓴 편지를 수없이 보냈죠. 엽서와 우표 값을 만만치 않게 지불하였죠.

그대는 나에게 편지쓰기의 어떤 느낌이 첫사랑과 비슷하냐고 물을 겁니다. 답장 없는 엽서를 정성스레 치장하며, 편지가 상대에게 도달할 때까지의 설렘과 순수함이죠. 하나 더 있다면, 머릿속 기억을 지우개로 지우기 전에는 존재할, 내 젊은 날의 감성 어린 기억의 흔적이죠.

청춘의 시절엔 늘 시간만 되면 FM에서 흐르는 음악을 즐겨들었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음악방송에 매료되어 듣는 것도 모자라 우편엽서를 쓰기 시작했어요. 엽서에 정성스레 마른 꽃을 붙이고 좋아하는 음악의 제목을 깨알같이 적었죠. 그리곤 그 엽서를 들고 우체통을 찾아갈 때면, 가슴에 무언가 가득 찬 것처럼 뿌듯했지요. 우체통에 편지를 넣으며 마음속으로 기도했어요. 제발 내가 원하는 음악을 듣게 해달라고.

그 시절엔 라디오 DJ가 연인인 양 그의 목소리를 기다렸지요. 언제 방송될지 모르는 그날을 기다리며, 목 놓아 하루하루를 보냈던 적도 있었죠. 마침 내 엽서가 감미로운 목소리로 소개되는 날, 정말 하늘을 날 듯 신이 났답니다. 그 기쁨은 무어라 형용할 수가 없었지요.

지금 생각하면, 음악 소개가 뭐 별거겠습니까. 요즘은 DJ 얼굴이 보이는 라디오 방송에 청취자를 유혹하는 많은 상품을 내걸고 있지만, 참여자 수가 적은 듯싶어요. 요즘은 언제 어디서나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동영상으로 보고 들을 수 있는 손안에 휴대전화가 있잖아요. 조금만 눈을 돌리면 내가 원하는 음악 정보를 알 수 있으니 굳이 보이지 않는 라디오에 매달릴 일이 없어진 거죠.

그대여, 어디 그뿐입니까? 좋아하는 친구나 지인에게도 편지를 참 많이 보냈지요. 지금도 그들을 만나면, 내가 보낸 편지와 엽서를 간직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내심 내 풋풋한 시절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것 같아 조금은 부끄러운 면도 없지 않아요. 빈 종이에 시(詩)를 빼곡하게 적어 내려가던 내 모습이 떠오릅니다. 적어도 지금의 청춘보단 감성이 메마르진 않았던 것 같아요.

그 시절 나의 편지지에 단골로 등장한 시(詩)는, 서정윤의 <홀로서기>와 유안진의 <지란지교를 꿈꾸며>, 이해인의 <해바라기 연가>이었지요. 지금도 가끔 입안에 읊조리는 구절, "내 생애가 한 번뿐이듯 나의 사랑도 하나입니다. … 당신 아닌 누구도 치유할 수 없는 내 불치의 병은 사랑. ……." 열정의 시(詩)를 암송하며, 시(詩)를 적는 행위는 훗날 나를 문학인으로 거듭나게 했던 거죠.

요즘은 손 편지가 낯설게 느껴지는 시대죠. 젊은이들은 어쩌면 우표를 붙인 편지를 받아 보고 시대를 거슬러 오르는 사람이라고 놀릴지도 모르죠. 늘 컴퓨터 화상에 글자를 메우니 그렇기도 합니다. 나도 가끔 생일 카드나 답장을 짧은 편지로 답하는데, 내 마음대로 글씨가 되질 않고 삐뚤거려요. 두어 번은 연습해야 보아줄 정도랍니다. 역시 손으로 쓴 편지는 마음을 가다듬고 앉아 상대를 진중히 생각할 여유를 주는 것 같아요.

그대여, 내 청춘의 시절은 봄날처럼 스쳐가고 중년의 나이에 서 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지네요. 첫눈 내리는 날 만나기로 했던 둘만의 장소, 그 집에서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쳐 그 집에 놓아두었던 음악 CD플레이어와 이어폰이 그녀에게 전해집니다. 서로 오해했던 일들이 하나씩 풀리고, 둘은 각자 자신의 길을 걸어가지요.

그녀는 이어폰을 꽂고 창밖 바다에 시선을 둡니다. 지난 날 들었던 감미로운 음악이 흐르며, 나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 추억에 잠깁니다.

이은희 약력

충북 청주출생.

충북대학교 경영대학원졸업.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학과 졸업. 2004년 월간문학 등단.

2004년 제7회 동서커피문학상 대상 수상. 2007년 제13회 제물포수필문학상 수상. 2010년 제17회 충북수필문학상 수상. 2012년 제17회 신곡문학상 본상 수상 외 다수.

저서로,『검댕이』,『망새』,『버선코』,『생각이 돌다』수필집 출간. 한국문인협회, 계간 에세이포레 편집위원, 청주문인협회 회원, 충북수필문학회 주간, 충북여성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 (주)대원 상무이사로 재직 중.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