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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뜨락 - 제야(除夜)의 종

한해동안의 상처를 보듬어 주는 '힐링의 종소리'

  • 웹출고시간2012.12.30 18:31:02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세존이여, 매일 외출할 때마다 같은 외투를 걸치고, 같은 의대를 매고, 같은 신발을 신으시면서 왜 그리 정성을 다하십니까?" 석가모니가 대답합니다. "너는 내가 오늘 입는 옷을 내일도 입을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오쇼 라즈니쉬가 쓴 금강경해석의 일부 글입니다. 그렇게 인간은 한치의 앞도 점치지 못하고 언제 떠날지 모르는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또 한 해가 가고 있습니다. 숨 가쁘게 일 년을 달려와서 마지막 달력 한 장이 남겨질 때면 어김없이 다양한 새 달력들을 한 아름 선물 받습니다. 이젠 시간의 흐름의 감각이 둔해진 모양입니다. 그러기에 아름다운 걸 아름답게 바라보지 못한 채 지나쳐 가고, 귀담아들어야 할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갑자기 마음이 바빠짐은 왜일까요. 지난 한 해 동안 시간을 물 쓰듯 아끼지 않았던 순간에 대한 후회가 밀려옵니다.

새 달력을 걸기 전에 할 일이 있습니다. 주방 그리고 화장실에 걸어둘 달력은 양력 음력 모두 적혀있는 3개월짜리 큰 달력을 고릅니다. 남편은 화장실에서 나는 주방에서 매일 아침 확인해야 할 식구들의 생일과 조상님의 기일 그리고 주요 기념일을 적어야 합니다. 삼 남매에게 줄 달력은 자그마한 탁상 달력을 한 개씩 골라 맨 앞장에 자식의 이름을 적은 다음 각자대로 친가 처가의 해당하는 꼭 잊지 말아야 할 날짜에 노란 사인펜으로 동그라미 그리는 일은 내가 합니다. 세 사돈의 생신일까지 숫자 아래 기록하는 일은 남편이 정성 들여 달필로 씁니다. 그렇게 섣달그믐에 앞서 날짜 잡아 연례행사처럼 온 거실바닥에 달력을 뉘어놓고 작업을 한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자식들에게도 벽걸이 커다란 달력에 기록해 주었는데 근년에는 미안한 마음에 작은 탁상용 달력을 구해서 적어주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쁜 세상에 동그라미 날짜에 맞추어 그 애들 나름대로 비용이 지출되어야 하는 일들이기에 달력을 건네줄 때마다 마치 청구서를 주는 것 같아서입니다. 그렇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막연한 기다림만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좀 유치한 방법이긴 하지만, 아이들 신혼 초부터 그렇게 길을 들였더니 표시된 날짜에는 외지에 사는 자식도 어김없이 전화라도 걸어 목소리를 들려줍니다. 제삿날에 인근에 사는 장남은 꼭 본가로 퇴근하여 자시에 맞추어 함께 제사 지내고 며느리와 함께 제기까지 정돈해주고 밤늦은 시간에 제집으로 돌아가니 저희는 힘들겠지만, 부모 된 마음은 흐뭇합니다.

오늘은 임진(壬辰)년을 보내고 계사(癸巳)년을 맞이하는 보신각 제야(除夜)의 종소리를 듣는 섣달그믐입니다. 내가 고희를 넘기는 오늘 밤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보신각 주변에는 서울 시민이 변함없이 헤아릴 수 없는 인파가 십 초 전부터 하얀 입김을 내 뿜으며 10-0까지 목청껏 환호성으로 구호를 내지르면, '제야의 종' 타종소리와 함께 2013년 1월 1일 오전 0시를 기하여 계사년의 새해가 밝으리니, 우리 부부도 기도 하는 마음으로 거실에 앉아 TV 화면으로 그들의 들뜬 감정에 매료되어 함께 환호성을 지르고 싶어집니다.

환호성을 지르고 싶은 일이 분명히 있으니 자랑을 해야겠습니다. 장손녀가 중학교 졸업에 앞서 새로 개교되는 '세종 국제고등학교'에 높은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합격했다는 가슴 벅찬 희소식을 임진(壬辰)년의 끝자락에 안았으니 할미로서 더 바랄 게 없습니다. 그 애는 태어날 때부터 열여섯 살이 되도록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기쁨만 안겨주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손녀랍니다. 학년마다 반장은 물론 특별한 리더십으로 학생회장까지 지낸 신통한 아이랍니다. 성장 과정에서 중요한 제 일 단계라고 할 수 있는 고교 시험에 무난히 통과하였으니 또 한고비를 넘겼습니다. 그 학교는 수업을 영어로만 한다고 하니 또 얼마나 부담을 느낄까 걱정입니다. 하지만 되려 노력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며 저를 안심시킵니다. 늘 그 애가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사고와 확고한 신념을 저는 믿습니다.

이제 보신각 제야의 종이 서른세 번 울려 퍼질 것입니다. 함께 어울린 시민은 이 순간,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옆 사람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덕담을 주고받는 풍경 속에 뜨겁게 사랑하는 연인들이 스스럼없이 키스를 나누기도 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자기감정을 표출하는 열린 세상이 된 셈이지요. 그래서 더욱 살만한 세상이 되었다고 하는 가 봅니다.

제야의 종을 33번 치는 것은 불교의 설화에서 유래된 것으로 조선 시대에 도솔천(兜率天)이라는 우주관에서 분류되는 천(天)의 하나로 미륵보살(彌勒菩薩)이 머물고 있는 천상(天上)의 정토를 말하는데, 그곳을 33천이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그곳에 사는 사람은 무병장수했다고 하여 새해를 맞는 사람들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처럼 건강하기를 기원하는 뜻에서 제야의 종을 33번 치게 되었답니다.

'제야(除夜)의 종소리'란 말은 버린다는 뜻의 除( 덜 제) 자를 이용하여 제야의 종소리라고 하는 것을 보면 한 해 동안의 모든 나쁜 일, 힘들고 슬프고 고통스러운 모두를 보신각의 종소리를 들으며 떨치라는 깊은 뜻도 내포되어 있을 것입니다. 잊을 것은 잊고 다음 해의 새 희망의 소리로 온 국민에게 깨우치는 소리지 싶습니다.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새로 시작되는 이 나라의 앞날에 크게는 나라의 평화 작게는 가정의 평화, 취직하기 어려워하는 자식의 소원성취, 군대 갈 아들의 무사함을 비는 부모 마음은 애절할 것입니다.

종소리를 따라 또 한해가 어디론가 사라져갑니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아까워지는 것은 남은 시간이 너무도 짧은 것을 감지해서일 겁니다. 그러니 남아있는 몇 날의 행복한 미래만 생각하며 살아야겠습니다. 드디어 제야의 종소리와 함께 계사년의 밝은 해가 솟아오르고 있습니다.

김정자 약력

△'한국수필'로 등단

△청주시문화공로상 수상

△법무부 전국교정수기공모전 최우수상 수상

△청주예술공로상

△제7회 홍은문학상 수상

△한국수필작가회 충북수필문학회 청주문인협회 회원 충북여성문인협회 회장역임

△1인1책 펴내기 운동 프로그램 강사, 청주시민신문 편집위원

△저서로는 세월속에 묻어난 향기, 41인 명작품 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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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