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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3.05.05 18:04:22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봄비가 개고 하늘은 유리구슬처럼 맑다. 봉분에 새로 입힌 잔디가 파랗게 돋았다. 보기 좋아 마음이 잔디처럼 포근해진다. 마주 보이는 뾰족한 산봉우리가 잘 손질한 붓끝을 닮았다. 그래서 문필봉이라 한다. 문필봉을 마주하는 곳은 명당이다. 이런 곳에 조상을 모시면 문필가가 나온다고 한다. 여기가 바로 부모님의 유택이다. 문필봉 너머로 시야가 끝이 없다. 청주시내 하얀 아파트촌이 다 굽어보인다. 푸른 숲 속에 대학 건물이 언뜻언뜻 보인다. 꽃이 온산을 뒤덮었다. 잔디까지 파랗게 살아났으니 시름이 다 가시는 듯하다.

몇 해 전부터 산소에 암세포처럼 이끼가 퍼지더니 잔디가 다 죽었다. 삼년이나 봄마다 잔디를 새로 입혔으나 허사였다. 도래석을 한 뒤 봉분에 배수가 잘 되지 않아 이끼만 살판이 난 것이다. 게다가 제절 바로 앞에 있는 아름드리 벚나무가 무성한 가지를 뻗치고 볕을 막아 묘정이 마를 날이 없다. 베어내고 싶었지만 아깝기도 하고 너무 커서 엄두가 나지 않아 해마다 미루다가 때를 놓쳤다. 올봄에도 봉분이고 제절이고 이끼 세상이고 잔디는 빈사 상태이다. 할 수 없이 봉분과 제절에 소금을 한 가마쯤 뿌렸다. 이끼는 볕이 들지 않으면 되살아난다는 말에 벼르던 벚나무도 베어버렸다. 무성한 가지에 가려졌던 문필봉이 훤하게 드러났다. 파란 하늘이 훨씬 가까워졌다. 묘정에 따뜻한 볕이 들어 부모님께서 보송보송한 봄을 맞게 되었다.

일주일 만에 가보니 이끼가 노랗게 죽었다. 갈퀴로 긁어내고 봉분에 잔디를 새로 입혔다. 두 주일쯤 지나자 그동안 비가 적당하게 내려 어느새 봉분이 파래진 것이다. 온 산이 꽃대궐이다. 진달래가 피고 산벚나무가 꽃구름처럼 산을 뒤덮었다. 마음이 놓인다. 아름다운 강산을 부모님은 날마다 보고 계실 것을 생각하니 그리움도 덜어지는 기분이다. 게다가 파랗게 새 옷을 입었으니 얼마나 좋으실까?

제절에 쑥이 파릇파릇 올라온다. 올라오는 새싹이 곱기는 하지만 자손이 시원찮으면 '죽어 쑥구덩'이란 말이 싫어 뽑아내기 시작했다. 누군가 잔디는 살리고 다른 잡초는 죽이는 약을 치라고 했지만 부모님 누워계신 유택에 제초제를 뿌리는 것이 마뜩찮아 해마다 손으로 뽑아낸다. 손만으로 당할 수가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도 이렇게 견디리라. 그래야 한 번이라도 더 와서 뵐 것이 아닌가?

여기를 명당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앞에 보이는 문필봉 때문이다. 조부모님 산소를 이곳으로 옮겨 모시고 아버지가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 문화유산인 종묘제례기능보유자(인간문화재)가 되셨다. 어머니도 어른들을 졸라 이곳에 모셨다. 그리고 5년이 안 되어 나는 수필가로 형은 시인으로 문단에 이름을 올렸다. 문필봉의 기운을 우리 형제가 받은 것이다. 부모님의 기(氣)가 미친 덕택이라고 생각되는 것만으로도 음덕(蔭德)이고 울력이다.

명당은 조상의 체백이 황골이 되어 기운이 자손에게 미쳐 울력을 주는 것이라고 한다. 자손에 대한 무한의 사랑은 죽어서도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우리 민족에게만 있는 의식의 발로이다. 기는 바람을 만나면 하늘로 흩어지고 물을 만나면 땅으로 스며든다고 한다. 기가 사방으로 흩어지지 않고 자손에게 제대로 미치려면 바람과 물을 잘 다스려야 한다. 그래서 풍수를 과학이라고 한다. 그것이 사실일지 모르지만 삶이 뜻대로 이루어지면 그것을 믿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아무튼 자손 사랑이 유별난 우리 민족에게 있는 아름다운 문화라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이방주 약력

청주출생, 1998년 '한국수필' 신인상충북수필문학상(2007), 충북수필문학회 회원, 내륙문학 회장 역임한국수필가협회 회원, 한국수필작가회 이사, 수필집 '축 읽는 아이', '손맛', '여시들의 반란' 편저 '윤지경전' (주식회사 대교)

공저 '고등학교 한국어'

현재 충북고등학교 교사

뽑아 놓은 쑥도 버릴 겸 허리도 펴야겠기에 일어섰다. 문필봉으로 향하던 눈길이 문득 멈추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놀라 넘어질 뻔했다. 이럴 수가 있나? 죽은 벚나무가 꽃을 피웠다. 지난번에 베어 기슭에 눕혀 놓은 아름드리 벚나무에 꽃이 환하게 피었다. 무성한 가지마다 빈틈없이 피었다. 살아 서 있는 나무보다 오히려 더 많은 꽃을 피웠다. 밑동은 기계톱에 싹둑 잘렸는데 마지막 힘을 다하여 꽃을 피운 것이다. 열매까지 맺을 수 있을까? 나무를 베어버린 죄의식에 앞서 나무가 보여주는 자손에 대한 열망에 가슴이 멍했다. 마치 할아버지 할머니나 아버지 어머니의 현신을 뵙는 듯 두렵고 숙연해졌다. 나무도 철학이 있을까?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생각을 정말 했을까? 자손에 대한 사랑은 사람이나 식물이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조상들이 후손을 생각하여 풍수라는 개념을 만들어 백골이 되어서도 자손에게 기를 미친다고 생각했듯이, 나무도 죽어서 자손을 위한 열망을 꽃피우는 모습이 경이롭다. 그야말로 마침의 삶이 경이롭고 아름답다.

나도 귀엽고 고귀한 새 생명인 손자를 대하면 삶을 다 이루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럴 때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고심하게 된다. 자손에게 누가 되지 않는 삶을 지향하기보다 마침의 삶을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내 자손을 위해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새로운 삶을 설계해야 한다. 조부모의 기가 부모님께 미치고 부모님의 기가 우리 형제에게 미치듯 나의 기운이 내 아들과 손자에게 미치는 그런 마침의 삶을 말이다. 죽어서도 꽃을 피우는 아름드리 벚나무를 다시 바라보며, 이곳에 누워 계신 부모님께서도 이제 막 태어난 새 생명에게 아름다운 꽃을 피워 주리라 조심스럽게 믿고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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