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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내내 벼르던 수건을 바꾸기로 한 날이다. 서랍을 여니 행사 때마다 받아온 새 수건이 족히 20장은 넘을 것 같다. 석유냄새를 없애려고 큰 양동이에 자투리 비누조각과 수건을 넣고 푹푹 삶았다. 색 색깔의 다양한 새 수건을 빨아 빨랫줄에 널고 나니 베란다가 다 환하다. 오늘따라 날씨까지 보시해 모시 천 같은 햇볕에 바싹 마른 수건이 명주실처럼 부드럽다.

이상하게도 나는 수건 욕심이 많다. 예쁜 수건을 보면 나도 모르게 손이 간다. 해서 한 번씩 대량의 수건을 사들이기도 하지만 행사 때마다 기념품으로 주는 수건은 꼭 챙긴다. 다른 물건 같지 않게 수건을 돈 주고 사려면 왠지 아까운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 집 생필품 중 내 손을 제일 많이 타는 것이 수건이다. 어쩌면 우리 집에서 나를 가장 정확히 알고 있는 것도 수건일지 모른다. 아킬레스건처럼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아 꼭꼭 여미는 내 부족한 부분까지도 수건은 모두 알고 있다. 수건은 흉하거나 지저분하다고 내치는 일이 없다. 머리를 염색하고 까만 물이 묻어나올 때나 종일 동동거리던 발도 수건이 따뜻하게 감싸준다. 우기에 비가 들이치거나 바닥에 물이 쏟아져도 마다치 않고, 삶의 능선에서 힘들어할 때면 말없이 내 눈물을 닦아주며 위로해 주는 것도 수건이다.

박종희 약력

△ 2000년 월간문학세계 수필 신인상으로 등단

△ 제5회 올해의 여성문학상 수상

△ 제 17회 매월당 김시습 문학상 수상 등 다수

△ 저서 '나와 너의 울림' '가리개'

△ 충북여성문인협회 부회장, 충북수필문학회 촘무, 한국산문작가협회 회원, 한국작가회의충북지회 사무국장

△1인1책 펴내기 지도강사

△essay0228@hanmail.net
ⓒ 박종희
수납장에 새 수건을 넣고 돌아서는데 남편이 욕실로 들어간다. 잠시 후 샤워를 마친 남편이 물기가 닦이는 것 같지 않다면서 수건을 바구니에 넣는다. 새 수건으로 바꿔놓아 기분 좋다는 말을 내심 기대하고 있었는데 남편은 두 번째 꺼낸 수건으로도 닦는 둥 마는 둥 하더니 헌 수건을 찾는다. 안방 화장실에서 머리를 감고 나온 딸애의 표정도 마찬가지다. 새 수건으로 머리를 감싼 딸애가 닦아도 물기가 남아있다며 툴툴거린다.

휴일 아침부터 삶고 빨아 놓은 새 수건 때문에 좋은 소리 듣나 했더니 오히려 타박이다. 그런데 남편과 딸애의 말이 그냥 한 불평이 아니었다. 종일 집안일로 동동거리다 늦게 서야 머리를 감고 수건으로 닦는데 이상했다. 꼭, 머리카락에서 수건이 미끄러져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힘주어 닦아도 겉도는 수건 때문에 머리카락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닦던 수건을 펼쳐 봐도 보송보송하고 매끄러웠다. 물방울이 스미지 않고 구슬처럼 흘러내리는 모습이 수건이 물기를 닦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물기가 수건에 달라붙으려 애쓰는 것 같았다.

아침부터 힘들게 빨아놓은 새 수건을 거두고 걸레로 쓰려고 넣어두었던 헌 수건을 다시 꺼냈다. 마지못해 끌려 나오는 것처럼 손끝에 닿는 헌 수건의 촉감이 까칠하다. 오래된 수건은 색깔이 바래 누렇고 어떤 것은 올이 풀려나온 것도 있다. 이 수건들도 처음에는 새 수건처럼 포장도 뜯기지 않은 채 서랍에만 있던 것이라 물을 감당하지 못하던 것들이다. 한데 나와 같이 지난한 세월을 보내면서 어떤 것도 흡수할 수 있을 만큼 수건으로서의 자격을 인정받게 되었다.

하루 등을 돌렸다고 해서인지 어째 더 빳빳해진 것 같다. 처음에는 쉽게 접히지 않고 튕겨져나갈 듯이 오기 부리던 헌 수건이 내 손이 닿자 다시 유순해진다. 마치 내 손의 온기를 기억하고 있다는 모습이다. 저녁에 씻고 수건을 쓰던 남편은 새 수건은 보기엔 좋지만, 쓰기 불편하다며 구시렁거렸다. 남편의 뼈있는 말에 딸애도 새 수건이 제법 몸값을 한다고 했다.

걸레가 될 뻔했던 헌 수건을 수납장에 넣고 새 수건은 다시 세탁기에 넣었다. 한 번, 두 번, 아니, 몇 번이 되든지 빨아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할 생각이었다. 아무리 새 수건이라지만 자기 본질은 잃어버리고 생색이나 내려고 하는 새 수건에 일침을 주고 싶었다.

세탁기 안에서 수건으로 인정받으려고 몸부림치는 새 수건을 보니 마치 나 자신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오래도록 글을 써왔고 문인이라는 화려한 액세서리까지 지니고 있지만, 아직 제대로 된 글 한 편 발표하지 못하는 나와 새 수건이 참, 많이도 닮은 것 같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글 쓰는 사람이라고 기억한다. 아마, 나를 포장해주는 수필가라는 수식어 때문일 게다. 그러나 이제껏 흡족할 만한 글을 쓰지 못했다. 의무감 때문에 책임감도 없이 글을 발표하고 나서 후회한 적도 많다. 다른 작가들이 쓴 좋은 글을 읽고 나면 부러워 가슴에서 내려놓지 못하면서도 돌아서면 금세 잊어버렸다.

내 글 앞에서는 부끄러워하면서도 정작 습작하는 일에는 게을렀다. 글 쓰는 작업은 고통을 연료로 해야 한다는 어느 수필가의 말처럼, 한 편의 글을 잉태하기 위해선 산고의 고통을 치러야 하는 데 마음만 급급하니 늘 겉핥기식 글이 되었다. 이름만 수건인 '새 수건'처럼 나도 무늬만 글 쓰는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아직도 문학이라는 단어가 낯설고 부담스럽다.

방금 남편의 손에서 물기를 말끔히 머금은 헌 수건이 순하게 세탁바구니에 누워있다. 마치 인정받을수록 겸손해져야 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가끔 이렇게 작고 보잘것없는 것들에서 지혜로움을 배운다.

오늘도 수건을 보면서 생각이 많아진다. 나도 헌 수건처럼 내 몫을 다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언제쯤이면 내 안에 고인 내재율을 자연스럽게 풀어낼 수 있을까. 언제쯤이면 자유롭게 언어를 부려 내 글을 읽는 이들의 가슴에 훈훈한 불씨 한 톨 지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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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