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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한밤중 괘종시계 소리에 문득 잠이 깼다. 눈을 뜨니 새벽 5시, 곧 하루가 시작되련만 왜 그런지 어수선하다. 어제와는 뭔가 달라지려니 했다가 어쩐지 실망스러웠으나 기억의 창고에 쌓이면서 아름다운 과거가 된다.

얼마 후에는 그리움의 언덕으로 솟아오른다. 무심코 달려가서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기억을 거슬러 간 바탕화면의 배경. 멀어진 날이 꿈꾸는 모습으로 투영되곤 했다. 오늘은 힘들지만 시간이 지나 과거로 바뀌면 추억이다. 나쁜 기억을 떼어 버리면 한 넝쿨에 얽혀 있던 좋은 기억까지 다치게 된다. 그래서 쌓아 두다 보니 냄새가 나고 벌레가 들끓었다.

하루는 보니 이름 모를 풀이 돋았다. 잎이 무성하고 꽃을 피워도 곧 죽어버리려니 생각했다. 그렇게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예쁜 초원이 되었다. 많지도 않은 단 한 포기 풀꽃이 열매를 달고 씨앗을 퍼뜨리고 난 후였다.

집 앞 빈 터에 공원이 생겼다. 철적은 가을비에 소나무 몇 그루와 회양목 등의 떨기나무가 푸르게 되살아났다. 여름에는 자잘한 꽃이 흐드러졌다. 과꽃이 피면 마음까지 화안해진다. 어쩐지 좋은 일만 생길 것 같고 사뭇 유쾌한 기분이다.

처음에는 무척 지저분했다. 공원 옆이라 오가는 사람들이 먹다 남은 찌꺼기를 버리곤 한다. 심지어 이웃 주민들까지도 쓰레기를 버린다. 그렇게 온갖 쓰레기로 뒤덮여 있던 곳이 시일이 지나 나무가 자라면서 자잘한 풀꽃까지 어우러졌다. 한겨울, 눈이라도 쌓이면 나무 등걸은 백설의 비경을 등에 업고 솟아오른다. 나는 또 스스로도 밟아보지 못한 백설의 언덕을 오르며 꿈같은 풍경에 탄성을 올렸다,

그나마 녹으면서 쓸쓸한 겨울나무로 돌아가곤 했으나 앙상한 그루터기도 눈을 맞아 환상의 풍경이 되듯 찌들어버린 일상도 푸르게 되살아날 것이다. 가랑잎이 썩어 부엽토가 되고 그로써 시원한 그늘과 단풍이 생기는 것처럼.

언짢은 마음에 삶의 한 모퉁이 찔러 두었던 기억이 초원으로 우거졌다. 오물로 뒤덮인 곳이 꽃밭으로 바뀌듯 찌든 삶의 배후에 생겨난 그리움의 언덕. 생각하기도 싫은 기억 때문에 감당이 어려웠으나 기억의 창고에 쟁여져 있던 언짢은 날들이야말로 휴식공간이 되기 위한 전조다. 좋은 것은 거름이 되지 못하고 언짢은 게 오히려 거름이 되듯, 떠올리고도 싶지 않은 기억 때문에 아름다운 영상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해거름에는 그리움의 언덕에 오른다. 첫새벽에는 떠오르는 해가 장엄하더니 지금 물새가 비껴가는 풍경은 드물게 목가적이었다. 켜켜로 쌓이는 어둠 속에서 오늘을 돌아보고 내일을 설계한다. 별이 밝고, 어둠을 잣는 조각달이 기웃대기라도 하면 다가올 하루는 그만치 신비로웠다.

이따금 그 곳은 아늑한 쉼터가 된다.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조차 거북할 때 잠깐 거닐기라도 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딱히 무슨 처방을 받은 게 아닌, 다 내려놓고 쉬는 거지만 그게 삶의 활력이다. 필름을 거꾸로 돌리다 보면 멀어진 영상이 밤하늘의 별처럼 명멸한다. 손바닥 위에 놓고 추억에 잠기면서 무엇 하나 구속 받을 것 없는 안식에 젖는다.

이제 추억의 곳간은 자잘한 일상으로 채워지고 그리움의 언덕 또한 높아지리라. 감당이 어려워지고 고단할 때도 내일을 꿈꿀 수 있어 힘들지 않다. 곰비임비 쌓여가는 나쁜 일도 언젠가는 아름다운 추억의 전신으로 바뀔 테니까. 좋은 기억보다 나쁜 기억이 훨씬 많았으나 그럴 때마다 삶의 한 모퉁이 찔러 두었다.

그게 곧 추억의 발원지가 되었다. 가끔 그 한 자락을 들치면서 환상에 젖곤 했으니 힘들 때의 기억보다 소중한 것은 달리 없을 것이다. 세월에 묻어 사라진 정경은 많았으되 기억의 언덕에서 오롯이 바라보는 행복. 추억의 곳간에서 그리움의 언덕을 동경하며 행복한 창고지기를 자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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