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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숯가마 꼭대기에 잡초가 하늘거린다. 풀무질 하듯 피어나는 열기 속으로 방자하게 쳐든 줄기가 푸르렀다. 진열대 앞에도 탐스럽게 핀 꽃이 많았으나 단 한 포기가 높은 곳에서 싹을 틔우고 자란 게 유독 눈길을 끌었다.

맨 처음 본 것은 보름 전이었다. 실 가닥처럼 가냘픈 것이 두꺼운 벽을 뚫고 나왔을 때는 위대한 생명을 보는 느낌이었다. 거기가 어디라고 언감생심 뿌리박은 배짱이 부럽기까지 했으나, 얼마나 갈지는 불안했다. 딱딱한 황토 흙이라 필시 얕게 뿌리박았을 테고 하물며 불 옆이었다는 생각에 다시 또 와 본 것인데 그리 멀쩡했다. 어깨가 아픈 바람에 보름에 한 번 꼴로 왔던 게 이름 모를 잡초가 못 미더워 자주 들른 폭이다.

오늘은 설마 아니겠지 하고 보면 변함없이 푸르다. 볕은 뜨겁고 흙벽은 콘크리트 못지않게 단단해 보이지만, 전혀 문제 삼지 않는 것 같다. 모든 조건을 극복한다 해도 숯을 꺼낼 때 치솟는 열기를 보면 풀 하나 정도는 바람 앞의 등불만도 못했다. 아홉 개 가마 중에서도 첫 번째인 데다가 입구에서 두 뼘도 되지 않는 까닭이다.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어젯밤 문득 숯을 꺼낼 때가 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났다. 자주 다니다 보니 닷새 혹은 열흘 간격으로 꺼낸다는 걸 알았고 그 바람에 서둘러 갔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가 보니 벌써 반 이상이나 꺼낸 뒤였다. 그렇다면 벌써 죽었겠지 싶어 가슴이 철렁했다. 며칠 전부터 옮겨 주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워낙 높아서 방법이 없었다. 단지'좀 더 일찍 올 걸'하는 아쉬움으로 쳐다보는 순간 파랗게 나부끼는 잎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 살아 있었구나. 기이한 마음에 가까이 가서 보니 다친 데 하나 없이 말짱했다. 신기한 생각까지 들었다. 어젯밤 사다리를 타고서라도 뽑아 옮겨 줄 걸 하고 걱정했던 게 무색할 정도다. 이후로는 마음이 턱 놓였다. 숯을 꺼낼 때의 열기도 견딘 것 때문이다. 며칠 간격으로 가 봐도 여전히 살아 있다. 놀라움은 감동으로 바뀌었다. 건드리기만 해도 부러질 것 같은 풀이 1천도남짓 되는 열기를 견디는 건 흔한 게 아니다.

지금도 그 풀은 건재하다. 여전히 빈약하고 볼품이 없지만 문제될 건 없다고 보았다. 축축해진 벽에서 싹을 틔운 것부터가 예삿일은 아니지만, 화상을 입어 군데군데 허옇게 된 걸 보니 힘들기는 힘들었나 보다.

무엇이 그런 의지를 키운 것일까. 들판의 잡초라면 비바람에 단련되었다고 하겠지만, 응달에서 자란 걸 보면 그도 아니다. 성장에 필요한 거라곤 아무것도 없이 어쩌다 비만 들이치는 곳인데 그게 양분이 되었나 보다. 천정에 생긴 틈으로 빗물이 새 들어온 게 참 다행이다 싶지만 의지가 약했다면 열악한 속에서 그나마도 죽었다. 여건은 극복할 나름이다. 하찮은 풀도 제 삶을 꾸려 가는데 엄살이나 하고 살아온 것 같아 부끄럽다.

내 삶은 그래도 황토벽의 풀보다는 괜찮았다. 딱딱한 흙에 뿌리박았는지는 몰라도 불구덩이 근처는 아니었다. 보란 듯 어기차게 자랄 모습도 그려진다. 볕도 들지 않는 만큼 더 이상 자라기는 힘들 테지만 불기운 때문에 살지 못할 거라는 예상도 뒤엎었지 않은가. 꽃은 물론 씨앗까지 달 거라는 추측도 터무니없지는 않다. 가혹한 운명도 악조건도 얼마든지 경건한 삶으로 바꿀 수 있다. 황토벽의 풀도 그렇게 모든 걸 극복하면서 경이로운 존재로 태어났다. 나부끼는 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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