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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개미가 기어오른다. 열람실의 에어컨 바람이 싫어서 나무 밑에 앉아 책을 보는데 그렇게 덤벼든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잠깐 책을 덮었다. 물병을 꺼내 마시려는데 미지근해서 먹을 수가 없다. 다시 떠와야겠다는 생각에 남은 걸 모두 쏟아버렸다.

사단은 거기서 벌어졌다. 물이 엎질러지는 순간 그들은 혼비백산 달아났다. 물에 젖어 우왕좌왕 하는 놈에 풀잎으로 올라가는 놈에 한동안 어수선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한 마리도 없이 사라졌다. 쥐죽은 듯 조용한 게 비상이라도 걸린 것 같다.

개미들 세상으로 들어가 본다. 전대미문의 사건이 벌어졌다고 떠들썩했겠지. 웬만치 사태를 수습한 후 이구동성으로 내뱉는 말도 들렸다. 폭포수 같은 물줄기가 쏟아졌다는 공론이 나왔을 것이다. 그들로서는 뜻하지 않은 사고였고 죽은 개미도 부지기수였을 테니 말이다. 아무렇게나 버린 물이 날벼락인 줄 알았다면 좀 더 주의할 걸 그랬다. 세상은 또 어쩌면 그렇게 상대적인가 싶다. 무심코 버린 물에 침수된 개미들처럼 우리에게도 그런 일이 없다고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가끔 태풍으로 곳곳에 이재민이 속출한다. 수해는 물론 산사태까지 일어나 수많은 피해를 입는다. 그럴 때마다 내가 살고 있는 곳 외에 어딘가 있을 더 넓은 세상을 생각했다. 내가 쏟은 반 되들이 물이 때로는 엄청난 홍수가 되듯, 자연의 순환작용으로 보면 미미할 수 있는 장맛비에 우리도 개미처럼 속수무책이었다.

얼마쯤 지나자 개미들이 또 나타났다. 아까의 사건은 일단락되었는지 저마다 입에 무엇을 물고는 분주하게 오가고 있다. 장마로 논밭이 침수된 후에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우리들 모습 그대로였다.

도서관은 줄잡아 삼천 평이다. 그나마도 건물과 뜰을 합친 것이지만 개미에게는 한 나라 정도의 공간이 될 것 같다. 그런 그들에게 훨씬 더 넓은 세상과 우주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하루살이가 납득할 수 없는 메뚜기의 세상, 그러나 메뚜기 역시 가을 한 철 밖에 살지 못한다면 우리 역시 얼마나 하찮은 존재였던가.

얼마 후 볕을 피해 나무의자로 옮겨 가다가 뜻밖의 광경을 보았다. 굼실거리는 개미를 피해서 움직이다 보면 죽어 버린다. 물을 쏟기 전에도 수많은 개미가 죽었을 텐데 전혀 몰랐다. 바퀴벌레도 죽이지 못하는 내가 무의식적인 살생에는 반응도 보이지 않는 아이러니였다.

청소기의 필터를 갈다가 죽은 개미를 본 적이 있다. 청소기를 돌릴 때 딸려왔다는 생각에 등이 서늘해졌다. 가능한 일은 아니어도 그들에게 잠깐 대피해 있으라는 경고를 내릴 걸 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의도적인 건 아니지만 그 때문에 죽은 걸 생각하니 마음이 불편했다.

이후 나는 청소기를 쓰지 않았다. 기계도 낡은 터였고'마의 삼각 지대'라는 얘기가 떠오른 까닭이다. 버뮤다와 마이애미 푸에르토리코를 연결한 삼각형 모양의 해역인데 비행기나 배가 자주 실종된다. 처음에는 사고로 추정했으나 자꾸만 반복되자 억측이 분분했다. 항로의 중심지라서 사고율이 높다고 했으나 이유는 밝혀지지 않은 터였다.

청소기 같은 유형의 사건으로 생각했다. 고대문명의 도시 아틀란티스가 대서양에 가라앉은 뒤 바다 밑에 거대한 기계가 돌아간다고 했다. 추측이라 해도 정말이라면 비행기나 선박이 사고를 당할 수도 있겠지만 더 이상의 비약은 어려웠다.

살아서 돌아간 개미는 청소기를 보고 괴물체의 습격을 받았다고 했을 것이다. 혹은 이상한 금속음과 함께 증발되었다고 했겠지만, 마의 삼각지대에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못한 우리처럼 그대로 흐지부지 되었을 것이다. 개미에게 우주는커녕 지구조차 설명해 주기 힘든 것처럼 우리를 답답하게 여길 미지의 존재도 떠오른다. 우리는 결국 그런 존재였다. 무한의 우주 앞에 모래알만도 못한 자신을 안다면 교만으로 인한 잘못은 줄어들지 않을까. 인간은 인간 외 그 무엇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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