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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분명 철쭉색 가방으로 생각했었다. 정말 예쁘고 선명한 빛깔로 알고 산 것이 막상 고향에 와서 보니 어딘지 모르게 칙칙하다. 빛깔 자체가 바뀔 리는 없고 그런데도 전혀 다르게 느껴지니 연유를 모르겠다. 햇볕과 주변의 풍경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라스베가스에서 가방을 산 뒤에 치른 홍역이다. 모처럼 구입한 명품 가방이 썩 마음에 들지 않으니 기분이 영 떨떠름했다. 살 때는 고를 것도 없이 첫눈에 들어왔는데 생각하니 가방을 산 곳은 볕이 쨍쨍하고 야자수가 하늘을 찌르듯 서 있는 아열대 지방의 상가였다. 선글라스를 끼지 않으면 불편할 정도로 강한 자외선 덕분에 유달리 산뜻했던 것이 고향에 돌아와 보니 느낌이 전혀 달라진 것이다. 진짜 멋쟁이는 걸어 다니는 하늘빛까지 고려해서 옷을 입는다던가.

하와이나 싱가포르에서 원색 옷을 입는 이유가 그려진다. 같은 색깔이라도 선명하고 뚜렷하게 비치는 까닭이겠지. 내가 산 가방이 햇빛과 기후가 전혀 다른 곳에서 두 가지 단면으로 드러난 것처럼 아열대 지방 사람들의 원색 행렬 또한 쨍쨍한 볕 때문에 그리 멋있게 보였을 것이다. 라스베가스에 자생하는 꽃을 봐도 어떤 식물은 우리나라의 그것과 아주 흡사한데 빛깔이 훨씬 곱다. 공원해서 본 나팔꽃도 그랬다. 남빛 꽃이 덩굴을 타고 어우러져 별나게 화려했다.

짐작에 누군가 고향에서 꽃씨를 가져다 심었을 텐데 유달리 산뜻하다. 나도 그 나팔꽃을 심은 적이 있고 어두운 느낌이라 싫어했는데 여기서는 뉘앙스가 그리 달랐다. 보라색도 아닌 남색이었건만 쨍쨍한 볕 아래서 산뜻한 코발트빛으로 드러난 것이다. 흔히 볼 수 있는 선인장만 해도 강한 자외선 때문인지 무척 산뜻하다. 물이 귀한 사막에서 살기 때문에 그런 빛깔인 줄은 알지만 볕 때문에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특별한 사실이다.

강남에 심으면 귤이고 강북에 심으면 탱자가 된다. 두말할 것 없이 토질 때문이라면 심는 자리도 중요하다. 재배법에 따라 변형을 주고 바꿀 수는 있되 문제는 뿌리박는 자리다. 돌밭에 모래밭 아니면 기름진 밭에 떨어지느냐의 차이다. 내가 본 선인장과 나팔꽃 등이 탱자와 귤처럼 뚜렷하게 차이는 나지 않았어도 전혀 다른 빛깔은 생소했다. 우리 역시 나름대로 자기를 가꾸며 정진해 가는 자세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좋은 땅에서 싹을 틔운 게 훨씬 양호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되지 않을까.

그렇더라도 어디서나 똑같이 아름답고 차분한 품성이면 좋겠다. 가방을 생각하니 여행 중의 들뜬 기분도 작용했고 태양까지 가세를 한 것인데 여행을 끝내고 돌아와 보니 피곤해서 잠시 그렇게 보인 걸 잊었다.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품성일 때는 별 탈이 없겠지 싶다. 어둠 속에 혹은 절망 속에 있든 마음을 경건히 갖는다면 여건이나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해프닝은 줄어들 것이다.

내가 산 그 가방 역시도 일반 명품보다 훨씬 값진 것이었다면 볕에 의해 달리 보이지는 않았을 거다. 묘목이나 씨앗 같은 경우 뿌리박는 자리에 의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보다 높은 차원을 지향하는 우리로서는 간단히 생각할 게 아니다. 여건에 좌우되는 품격이 아닌 언제 어디서나 흔들림 없는 의연한 품격을 추구한다면 그런대로 성공적인 삶이 될 것이다.

지금 나는 그 가방을 즐겨 갖고 다닌다. 처음부터 마음에는 썩 들었던 물건이니까. 한동안 색깔 때문에 신경을 쓴 것도 무색할 만치 애장품이 되었다. 가방 자체는 그대로지만 때와 장소에 따라 바뀌는 것을 깨우쳐 주었다는 게 소중하다. 얼마 후 모든 게 평소와 같아진다면 빛깔에 대한 의혹도 해소될 것으로 본다. 탱자와 귤의 차이는 별 게 아니지만 뿌리박는 자리만큼은 뜻밖의 여파를 낳는다는 걸 생각해 본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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